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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변화가 낳은 노동 부족

한겨레 입력 2021. 12. 06. 09:06 수정 2021. 12. 0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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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l 글로벌 공급 대란
2021년 9월 ‘기름 대란’을 겪은 영국의 세인트올번스시 플램스테드에서 유조차와 트럭들이 주유소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지어 있다. REUTERS

세계가 공급 대란에 놓였다. 각국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어떤 국가는 원자재, 다른 국가는 생필품 부족 현상을 겪는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요소수로 혼란스럽고, 자동차와 휴대전화 등은 출고 적체 현상을 빚고 있다. 미국에선 백악관까지 나서 “크리스마스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모든 것이 부족”

이유가 뭘까? 주요 원산지의 코로나19 유행, 자연재해로 인한 제조능력 파괴, 주요국 친환경 정책 강화로 인한 기름 등 원자재 상품 가격 급등, 무역전쟁의 여파, 인력 부족 등등.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원인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세상의 자원은 급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의 ‘부족’ 현상은 자원의 절대량 부족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 특히 공급망의 균열에서 비롯됐다. 공급망 균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게 있다. 바로 물류시스템 병목 현상이다.

경제시스템은 복잡계다. 금융은 물론 물류 시스템도 복잡한 그물망이다. 현대 경제는 생산, 수송, 보관이 복잡하게 얽혀 정밀하게 작동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물류다. 그것은 세계의 노동이 거미줄처럼 얽혀 결합된 분업 과정의 산물이다. 복잡계는 다른 복잡계와 상호작용한다. 단순해 보이는 제품이라도 생산, 포장, 상차, 운송(때론 대륙이나 대양을 건너야 하는), 하역, 최종 소비처까지 배송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의 모든 단계마다 잘못될 수 있다.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쉽다.

전시가 아닌 정상적인 상황에서 물류시스템 이상은 이례적이다. 이는 금융시스템 붕괴와는 다를 것이다. 어쩌면 더 해로울 수 있다. 현재 발생하는 물류시스템 혼란은 단순히 기술적 원인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 근저에 ‘시대정신’의 변화가 있다. 면밀히 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노동 부족

서구에서 물류시스템 이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국가를 꼽자면 영국이다. 2021년 9월 영국에선 주유소마다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 행렬로 북새통이 벌어졌다. 전국 주유소의 절반 정도가 기름이 떨어져 운영을 중단했다.

원인이 무엇일까? 영국 정부는 저장소에 기름이 충분하다고 한다. 석유 물량 부족 때문이 아니란 것이다.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가 부족하다.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운전사들이 파업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에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이민정책 변화로 운전자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영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미국의 일부 지역 주유소에서도 기름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역시 석유 절대량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운반하는 운전사가 모자란다고 한다. 석유는 충분하나 나를 수가 없다.

핵심은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침체는 수많은 사람을 일자리에서 내몰았다. 이제 회복 국면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다시 일해야 한다. 그런데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재 물류시스템 붕괴에서 가장 큰 원인은 ‘인력 부족’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미국의 2021년 9월 공식 실업률은 4.8%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767만4천 명이 실업자다. 그런데 사람을 구하지 못한 빈 일자리는 7월 기준으로 1천만 개 이상이다. 원한다면 실업자 상당수가 즉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미국의 일자리는 경기회복과 함께 가파르게 늘고 있다. 사람을 구하는 곳은 늘었는데 실업자 감소는 더디다.

이유가 있다.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폭증하고 있다. 지난 12개월 동안 거의 2천만 명이 일자리를 떠났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이상으로 일터를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침체기에 퇴사자가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외려 경기회복기에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회복기나 호황기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그만큼 쉬우니 일을 그만두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이례적이다. 다른 회복기에 비해 일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급증하는 양상을 보인다. 미국에선 지난 20년 동안 최근처럼 퇴사자가 많은 때가 없다. 일터를 떠나는 사람 수가 역사적 고점을 경신해가고 있다. 이런 일이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노동의 시대정신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매킨지는 가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한다. 9월에도 좀처럼 믿을 수 없는 내용의 분기 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목은 <‘Great Attrition’ or ‘Great Attraction’?>이다. 우리말로 옮기기가 어렵다. “대규모 퇴직으로 인한 인원 부족 사태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에게 매력적인 다른 큰 유인을 제공할 것인가?” 정도가 될 것이다.

연구는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싱가포르, 영국, 미국에서 행해졌다. 이들 국가 노동자의 40% 정도가 앞으로 6개월 안에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일을 그만두려 한다는 점이다.

이유가 뭘까? 보고서는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일자리는 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만 많이 받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점차 과거의 유물이 돼가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이 노동자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18개월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 게 있다면 바로 노동자가 인간적 측면에 대한 투자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피곤해하고 있으며, 많은 이가 슬퍼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새로운 목적의식을 원한다. 동료나 관리자들과 사회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연결을 갈망하고 공동체의식을 느끼기를 원한다. 돈과 복지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조직과 관리자에게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돈으로 이뤄지는 단순한 거래가 아닌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원한다.

2021년 10월 임금 인상과 근무환경 개선을 바라는 아마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그동안 모은 청원서를 들고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노동관계위원회(NLRB) 사무소로 들어가고 있다. REUTERS

코로나19는 거대 기업의 독점을 더욱 강화했다. 규모의 경제 가속화는 소기업을 말살했다. 부작용이 많다. 경쟁이 사라지는 게 대표적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부작용도 있다. 바로 인사관리의 어려움이다. 그것이 노동 부족을 낳는 한 요소다.

대기업은 소기업보다 노동자에게 많은 것을 제공한다. 후한 임금과 복지 등등. 하지만 대기업이 절대 할 수 없는 게 있다. 최고경영자는 수만 혹은 수십만 명의 직원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직원 역시 경영진과 인간적 교류를 갖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현재의 노동 부족을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대기업은 분명 노동자에게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지만, 동기부여가 된 열정적 노동자를 길러내고 유지하는 데 최악의 시스템일 수 있다. 관리자는 노동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언지 모르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회사가 자신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고 믿는다. 인간적 교류가 사라진 시스템은 윤활유 없는 기계처럼 마찰을 불러오기 쉽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는 이유다.

코로나19가 준 성찰

사실 노동에 대한 좌절은 수십 년 동안 만들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원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지만 그 혜택은 다른 소수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삶의 목적에 대한 회의를 낳고 일을 그만두는 원인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침체기에 사람들은 강제로 또는 어쩔 수 없이 일자리에서 밀려났다. 반대로 의료진처럼 떠밀려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 대부분은 일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인생에서 진짜로 원하는 게 뭔가? 장거리 트럭 운전은 고되다. 건강에 좋지도 않다. 보건의료직 역시 탈진해 있다. 돈을 많이 벌더라도 직업 전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군중 속에서 일하는 걸 꺼리게 했다. 팬데믹은 전에 없던 부담을 우리 모두에게 지웠다.

임금(돈)은 중요하나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내가 너에게 더 많은 돈을 줬으니 너는 여기서 일해야 한다”는 명제는 과거의 일이 됐다. 현재 일하려는 사람들은 단순한 거래 이상의 어떤 것을 원한다. 즉, 돈 이상을 원한다. 개인적 삶에 초점을 맞춘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그렇다. 그것은 문화적 충격이다.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노동에 관한 시대정신의 변화는 물류시스템 곳곳에서 파열음을 일으키며 연결고리를 끊고 있다. 복잡계의 특정 지점들이 무너지고 있다. 모든 시스템의 핵심은 사람이다. 사람이 없으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우린 그것을 목격하고 있다. 사용자와 정부가 대오각성하지 않는 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인간과 삶에 대한 오랜 질문에 답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대정신 변화로 인한 노동 부족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 노동 투입 감소는 저성장을 의미한다. 장기간의 낮은 성장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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