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COP26 톺아보기 (하) 매일 가라앉는 나라, 배출권 파는 나라

박상욱 기자 2021. 12. 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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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08)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결정된 내용들 살펴보기, 마지막 순서입니다. 2주에 걸친 총회 끝에 나온 결과물은 글래스고 기후 합의문만이 아닙니다. 당장 우리나라가 눈여겨봐야 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들도 나왔습니다.

COP26 연설에 나선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교장관 (자료: UN Climate)

#귀_귀울여야_할_목소리들
COP26에서 모두가 주목했던 장면 중 하나는 바로 미국과 중국의 만남, 그리고 그 만남 결과 도출된 합의문이었습니다. 무역분쟁으로 시작해 수년간 이어진 G2의 갈등 속에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와 셰전화 중국 기후특사가 만난 것이죠. 이들의 만남에 국제사회가 주목한 이유는 그저 두 나라의 영토가 커서도, 경제 규모가 커서도 아닙니다.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서도 '글로벌 TOP2'에 해당하는 두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두 나라가 서로 강력한 감축을 위한 환경기준 등 규제 시스템을 만들고, 청정에너지 전환 등 탈탄소 정책 전반에 걸쳐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단순한 구두 합의가 아니라 합의문을 내놨죠.

그런데 과연 COP26에선 이런 덩치 큰 나라들의 목소리만 중요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뿜어낸 온실가스가 딱히 많은 것도 아닌데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옴팡 뒤집어쓴 나라들은 이번 COP26에서 큰 목소리를 냈습니다. 바로, 군소 도서국(SIDS, Small Island Developing States)의 이야기입니다.

투발루의 외교부 장관은 사전에 야외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연설을 대신했습니다. 그저 바다를 배경으로 한 것 같았던 장관의 모습. 그런데 카메라가 조금 움직이자 모두가 놀랐습니다.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서 수트를 입고 연설에 나섰던 겁니다.

COP26 연설에 나선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교장관 (자료: UN Climate)
투발루는 적도 부근 남태평양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아홉 개의 섬으로 구성된 이 나라의 면적은 26㎢에 불과하죠.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해봤자 해발 4m에 불과합니다. 안 그래도 적은 면적이다 보니 해수면의 상승은 곧 '나라의 침몰'과도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약 1만 2천명이 발 딛고 설 땅이 사라지는 겁니다. 코페 장관은 “투발루에서 우리는 해수면 상승이라는 기후변화의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우리를 향해 매일 같이 다가오는 해수면에 다른 많은 대표들의 연설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기후 대이동이라는 문제는 가장 시급히 다뤄야 할 문제”라며 “내일의 생존을 위해 오늘 우리는 당장 과감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겪고 있는 곳은 비단 투발루뿐이 아닙니다. 막판 뒤집기가 벌어진 COP26 폐막식에서도 도서 국가의 외침은 이어졌습니다.


#국제탄소시장_그_규칙이_정해지다
군소 도서국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지만 당장 우리나라가 눈과 귀를 집중해야 하는 내용은 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막 감축목표를 이야기하고, '그거 어떻게 줄여야 하는 건데?' 이야기하는 사이, 국제사회는 이번 COP26에서 감축의 결과를 활용하는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파리협정에서 이야기 나왔던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의 룰 북(Rule Book), 바로 이행규칙이 완성된 겁니다. 우린 아직 내부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이해도, 공감대도 아직인데, 어느덧 국제사회는 감축의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룰을 완성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① 협력적 접근법과 ② 지속가능발전 메커니즘(SDM)을 규칙의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협력적 접근법을 통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진행한 감축사업의 성과(실질적인 감축량)를 서로 나눠 각국의 NDC(온실가스 국가감축목표) 달성 과정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감축량은 ITMO(International Transferred Mitigation Outcomes)로 불립니다. 또한, SDM을 통해 현재 한 국가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은 글로벌 차원으로 스케일이 커지게 됩니다. 지금은 국가가 감독기구 역할을 하고, 거래제 내에서 개별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고파는 상황이라면, 앞으로 국가 대(對) 국가, 서로 다른 국적의 기업 대 기업, 국가 대 기업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그 객관성을 인정받게 되는 ITMO는 어떻게 산출될까. 지난 11월 19일, 한국기후변화연구원이 주최한 COP26 결과 공유와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박순철 생산기술연구원 탄소중립실장은 “ITMO는 실제적이고, 검증되고, 추가적인 감축실적을 의미한다”며 “실제로 온실가스 감축이 일어나고, 집계가 가능해야 하고, 그 양을 자의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COP26 결과 공유와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발언 중인 박순철 생산기술연구원 탄소중립실장 (자료: 한국기후변화연구원)
ITMO의 경우 우리나라가 경로방식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평균방식을 따를 것인지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박 실장은 “경로방식을 선택한다면, 사전에 2021~2030년까지의 배출경로를 제출하고, 해마다 실제 배출량과 제출한 계획의 차이를 살펴봐야 하고, 평균방식을 선택한다면 2030년에 필요한 ITMO의 양에 10년(NDC의 이행기간)을 곱한, 10배의 양이 필요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2030 NDC에 따르면, 2030년 한 해에 해외 감축분(ITMO)의 양은 3350만톤에 달합니다. 즉, 우리가 NDC에 “2030년 해외감축분 3350만톤”이라고 설정했다면, 2030년까지 총 3억 3500만톤을 ITMO로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결코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배출권센터장은 같은 세미나에서 이러한 배출권 거래에 대해 “내가 줄이는 것이 비싸면 다른 사람이 좀 더 적은 비용으로 줄인 것을 사 와서 달성하거나 내가 좀 더 적은 비용으로 많이 줄여 시장에 배출권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또한, 해외 감축의 경우 감축의 과실을 우리나라와 우리가 감축사업을 진행 한 나라와 나눠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나라 NDC에 100을 해외감축분으로 설정했다면, 실제론 최소한 200만큼은 줄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2030년까지 우리가 3억 3500만톤의 ITMO를 확보하려면 최소한 6억 7000만톤의 감축 성과를 내야 한다는 거죠.

COP26 결과 공유와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발언 중인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배출권센터장 (자료: 한국기후변화연구원)
난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감축사업은 국가 차원에서도, 또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유의해야 할 부분들이 생깁니다. 이 센터장은 “감축 사업을 벌일 대상 국가와 우리나라가 양자협력을 체결해 공동사무국을 구성했는지, 진행하려는 사업이 해외 감축의 범위로 인정한 사업 범위에 포함되는지, 대상 국가에서 ITMO의 이전과 관련된 법률과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ITMO를 가져올 수 있느냐 없느냐의 주도권은 바로 대상 국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감축사업을 진행하고서도 그 성과를 가져올 수 없거나, 가져온다 하더라도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적게 가져오게 되는 상황들이 펼쳐질 수 있는 겁니다. 결국 대상 국가와의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국제탄소시장이 본격화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원자재 가격의 인상으로 어떤 상품의 가격이 비싸지는 일을 우리는 익히 접해왔습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기름값이 낮아지는 것처럼요. 이젠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도 하나의 원자재처럼 비용이 되는 겁니다,

사실 이러한 구조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져있기는 합니다. 한국은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했습니다. 1기(2015~2017년)와 2기(2018~2020년)를 거쳐 이젠 3기(2021~2025년)에 돌입한 상태죠. 그럼에도 아직까지 우리에게 '탄소=비용'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직 거의 대부분의 배출권이 '무상 할당'되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해마다 뿜어낼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배정받습니다. 해당 기업은 배정받은 배출권의 한도 내에서 온실가스를 뿜어내거나, 한도를 넘게 되면 다른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구입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배출권을 처음 배정할 때, 90%의 배출권이 무상으로 할당됩니다. 실제 돈을 지불하게 되는 배출권은 전체 10%에 불과한 겁니다. 시장에 100장의 배출권이 풀렸는데, 이중 90장은 공짜로 뿌려졌고 실제 돈을 지불한 배출권은 10장 뿐이니… 지금까지 일반 시민이 배출권거래제를 체감하기 어려운 것은,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발등의 불'로 느끼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시장이 만들어지고, 배출권의 거래가 국내외 할 것 없이 다층적으로 이뤄진다면 자연스레 지금처럼 거의 대부분의 배출권이 무상 할당되는 일은 점차 어려워질 것입니다. 탄소 가격의 상승으로 제조업의 순익이 감소했다, 무역수지가 악화했다 등등의 뉴스를 접할 날이 머지않은 겁니다. 이렇게 국제사회는 이산화탄소 감축을 넘어 메탄 감축으로, 배출권의 국내 거래에서 국제 거래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과연 정부는, 기업은 얼마나 준비됐을까요. 그리고 이에 따른 파급 효과에 대해 우리 시민사회는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요. 더 이상 '먼 미래'라며 온실가스 감축을 미룰 시간적 여유는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번 주 연재는 COP26 마지막 날, 세베 파에니우 투발루 재무장관의 발언으로 마무리합니다. 여러 외신을 통해 손주들의 사진을 꺼내 보였던 모습이 보도됐던 그의 발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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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고는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약속의 메시지를, 또 의지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를 이행하는 일입니다.


어제 EU 대표단의 한 분이 자신의 손자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저 역시 세명의 손주를 둔 할아버지입니다. 매일 밤, 일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올 때마다 손주들의 사진을 봅니다. 글래스고에서 돌아가 손주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제 집에 돌아가 '글래스고가 너희와 너희의 미래를 지켜주는 약속을 만들어줬단다'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아마도 제가 손주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일테죠.

이제 우리 모두는 글래스고호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1.5℃ 목표를 달성하자는 야심찬 기차입니다. 기후변화는 이제 현실입니다. 기후변화에 정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정치 지도자 여러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에 있어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맙시다. 기후변화 대응은 우리의 생존이 달린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다음 선거에서의 '정치적 생존'에 관한 일이 아니라요. 그러니 모든 국가가 이 글래스고호 기차에 함께 오르기 바랍니다. 이 기차가 계속해서 달려가려면, 또 더 빨리 달리려면, 우린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집트에서 열릴 다음번 총회에 다다를 수 있으니까요. 글래스고에서의 총회는 오늘로 끝나지만, 진짜 해야 할 일들은 이제 시작합니다. 이젠 1.5℃ 목표로 달리는 글래스고호 기차를 움직일 때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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