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각서 썼는데 경쟁업체 이직했다면 퇴직금 토해내야 할까?

박용호 2021. 12.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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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용호의 미션 파서블(18)

최근까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전쟁(영업비밀 침해, 특허권 침해 등 관련 법적 분쟁)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100여명의 인력이 LG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면서 시작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기술과 그 기술을 개발한 핵심인력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해졌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등 관련 법적 분쟁은 LG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100여명의 인력이 이직하면서 시작됐다. 일명 '배터리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핵심인재가 회사를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 핵심인재가 경쟁업체에 취업해서 회사의 핵심기술 등을 마음대로 활용하는 것은 막아야 할 것 아닌가.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바로 경업금지약정이다.


경업금지약정의 의미와 유효성 판단


근로자가 회사를 퇴직하면서 일정 기간 동종업계 또는 경쟁업체에서 근무하지 않겠다고 약정하는 것을 통상 경업금지약정이라고 한다. 근로자와 회사가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경업금지약정이 무조건 유효인 것은 아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경업금지약정이 회사의 영업비밀 등을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지만,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경업금지약정이 헌법이 보장한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심하게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 판단 기준과 관련하여,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여기에서 말하는 ‘보호 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라 함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정한 ‘영업비밀’뿐만 아니라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였더라도 당해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서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이거나 고객관계나 영업상의 신용의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핵심인재가 회사를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인재가 경쟁업체에 취업해 회사의 핵심기술 등을 무단활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때 필요한 법적 수단이 바로 경업금지약정이다. [사진 pixabay]


위와 같이 법원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하고 있는데, 경업금지약정 자체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통상 퇴직 후 1~2년의 범위에서만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경업금지약정이 명시적으로 체결되지 않거나 다른 약정의 일부로 체결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하에서는 최근 이슈가 되었던 사안(경쟁업체 취직 시 명예 퇴직금을 반환하기로 약정하였던 사안)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본다.

퇴직 후 3년 내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하면 명예 퇴직금 반환하겠다고 약정했는데 경쟁업체에 재취업했다면

A 회사는 명예퇴직을 선택한 직원들에 대하여 법정 퇴직금에 가산하여 추가로 명예 퇴직금을 지급하는 명예퇴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A 회사는 명예퇴직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이 예정된 상태에서 명예퇴직하지 않을 것이며, 퇴직 후 3년이 지나기 전에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한 경우에는 일반퇴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인정하고 명예 퇴직금 전액을 조건 없이 반환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된 각서를 제출받았다.

B는 A 회사의 직원으로 40년, C는 A 회사의 직원으로 30년 동안 각 근무하다가 2017년 명예퇴직하면서 위 내용이 기재된 각서를 A 회사에 제출하고, 각 명예 퇴직금을 받았다. B, C는 2018년 A 회사의 경쟁업체에 취업하였다.

전직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의무규정이 포함되지 않으면 경업금지약정으로 보기는 어려워

위 사례는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다234924 판결 사안이다. 대법원은 각서에 퇴직 후 일정 기간 다른 회사로의 전직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의무규정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아 이를 경업금지약정으로 보기 어렵고, 명예퇴직 후 3년 내 동종 경쟁업체에 취직하면 명예퇴직의 효력이 상실되어 수령한 명예 퇴직금을 반환해야 하는 '명예퇴직의 해제조건'에 대하여 약정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회사의 영업비밀 유지, 핵심 인재 유출 방지 등을 위해 경업금지약정의 내용을 사전에 치밀하게 검토해야한다. 이에 더해, 근로자 퇴직 시 경업금지약정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 [사진 flickr]


다만, 대법원은 “각서에서 정한 명예퇴직 해제조건의 성취는 '명예퇴직 후 3년 내 취직한 직장이 A 회사와 동종 경쟁 관계에 있어 A 회사에서 알게 된 정보를 부당하게 영업에 이용함으로써 A 회사에 손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경우'로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다시 말해, 법원은 근로자의 재취업을 제한하는 ‘명예퇴직 해제조건 약정’ 역시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다.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 판단 신중해야
명시적인 경업금지약정이든 경업금지 내용이 포함된 다른 약정이든 간에 근로자의 직업선택 자유, 근로권 등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기에 법원은 그 유효성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따라서 회사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영업비밀 유지, 핵심 인재 유출 방지 등을 위해 경업금지약정이 유효하게 판단될 수 있도록 경업금지약정의 내용을 사전에 치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 퇴직 시 경업금지약정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는 등의 조치도 적절히 취할 필요가 있다.

한편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회사와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한 경우 추후 동종업체 이직 등이 일정 기간 제한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퇴사 후 동종업체 또는 경쟁업체로 이직하는 경우에는 경쟁영업금지약정의 체결 여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 등을 사전에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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