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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이 미는 '종전선언', 美는 굳이 "종전성명" 표현한 이유

박현주 입력 2021. 12. 06. 11:51 수정 2021. 12. 0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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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국 당국자들은 종전 ‘선언’(declaration)이 아닌 종전 ‘성명’(statement)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두 용어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이 굳이 다른 표현을 쓰는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남북미중 종전선언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뉴스1.


美 표현은 ‘성명’인 듯


미국 측이 공개적으로 종전선언을 ‘종전성명(end of war statement)’로 표현한 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의 한ㆍ미ㆍ일 차관협의 후 기자회견에서였다. 그는 “종전성명을 둘러싼 이슈와 관련한 협의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실제 현재 국무부에서는 종전선언을 ‘종전성명’으로 칭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최근 만난 미국 당국자들은 종전선언을 칭할 때 반복적으로 종전성명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기류는 앞서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남ㆍ북ㆍ미ㆍ중 간 종전선언을 제안한 직후와는 다소 달라진 측면이 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문 대통령 연설 이튿날인 22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한 가능성을 논의하는 데에 열려있다”라며 종전선언(end of war declaration)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후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같은 달 30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ㆍ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 전쟁을 끝내려는 (한국)정부의 의지”를 설명하며 ‘선언하다’(declare an end to the Korean War)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ㆍ미ㆍ일 차관 협의를 마친 뒤 홀로 기자회견에 나선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당초 회견은 3국 공동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독도 문제로 일본이 항의하는 바람에 셔먼 부장관만 참석했다. 연합뉴스.


정부 “같은 뜻” 국무부 “덧붙일 말 없어”


정부는 종전선언의 영문 명칭이 선언이든 성명이든 본질은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술적인 표현의 문제일 뿐이라 어떤 표현을 써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미국은 오히려 ‘선언’이라는 용어를 쓴 경우가 드물고, 상대국이 있는 합의는 ‘성명’으로 표현해왔다는 설명도 있다. 실제로 2018년 북ㆍ미 간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성명, 2012년 북ㆍ미 간 2ㆍ29 합의, 2005년 6자 회담에서 도출된 9ㆍ19 공동성명은 모두 영문명이 성명(statement)으로 표현됐다.

다만 미 국무부 관계자는 셔먼 부장관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굳이 종전선언이 아닌 종전성명으로 표현한 이유와 두 용어의 차이가 법적ㆍ정치적 효과의 차이를 뜻하는지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셔먼 부장관의 발언에 덧붙일 입장은 없다. 우리는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념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또 “미국은 대북 관여 정책을 계속 모색할 것이며 북한을 향한 적대 의도도 없다”며 “전제 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으니 우리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화답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등 용어 차이와는 관계없는 기존의 원론적 입장 설명을 반복했다. 한국 정부는 두 용어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했는데, 미 국무부는 이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두 개념이 같은 뜻이라고도 굳이 확인하지 않은 셈이다.
지난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만난 모습. 스트레이츠타임스. 연합뉴스.


전문가 “종전성명, 입장 정리 수준 될 듯”


정부 설명대로 종전선언과 종전성명 간 용어 혼용이 가능하다면 미국이 굳이 한국이 원하는 ‘선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애초에 종전선언 자체가 처음부터 한국이 주도한 이슈인데, 이럴 경우 이를 처음 제안하고 논의를 이끌어가는 쪽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때도 한ㆍ미 간 종전선언 문안에 대한 조율이 이뤄졌는데, 당시엔 협의 과정에서 미 측이 종전성명이라는 용어를 쓴 적은 없다고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종전선언으로만 표현했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무렵 워싱턴 조야를 중심으로 북ㆍ미가 북한의 핵 신고와 종전선언을 맞바꿔 협상 물꼬를 트자는 ‘선언 대(對) 선언’(declaration for declaration) 구상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전문가들은 종전선언과 종전성명 사이에 법적 의미의 차이는 없겠지만, 위상과 정치적 의미 측면에서 미묘하게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전직 교위 외교관은 “성명이든 선언이든 이에 따른 법적ㆍ정치적 의무는 그 구체적 내용에 따라 규정되겠지만, 보통 전자가 후자보다 격이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말하는 종전성명은 종전에 대한 한ㆍ미의 초기 단계 입장을 정리한 수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종전선언이 유엔사령부 등 정전협정 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미국이 종전선언과 종전성명의 용어를 차별화해 쓰려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핵심은 종전선언에 담길 구체적인 문안의 내용이다. 미국이 이를 성명으로 부르더라도 종전선언에 해당하는 내용을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오는 이유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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