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앙일보

98세 삶을 유머로 채웠다..미국 울린 어느 정치인의 죽음

전수진 입력 2021. 12. 06. 13:27 수정 2021. 12. 06. 14:07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밥 돌(1923~2021) 전 공화당 의원. 로이터=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과 의회에 연이어 조기(弔旗)가 게양됐다. 야당인 공화당의 베테랑 정치인 밥 돌(1923~2021)에 대한 조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조기 게양을 지시한 이는 여당인 민주당의 대통령 조 바이든과 낸시 펠로시 상원의장. 바이든 대통령은 “위대한 세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추모 성명을 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진정한 애국자를 잃었다”며 애도했다. 밥 돌 전 상원의원은 98세를 일기로 폐암으로 사망했다. 유명을 달리한 야당 정치인을 위해 여야가 한목소리가 되는 진경은 그의 마지막 선물이다.

밥 돌은 공화당의 거물이다. 1969년부터 96년까지 내리 27년 동안 고향 캔자스를 대표하는 의원으로 활약했다. 아울러 공화당의 지도부로도 리더십을 펼쳤고, 빌 클린턴에게 고배를 마시긴 했으나 대권에도 도전했다. 공화당에 비판적 성향이 뚜렷한 뉴욕타임스(NYT)도 “충직한 정치인을 잃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일을 해낼 줄 알았던 뚝심의 소유자”라고 그를 추모했다. 미국의 거의 모든 매체가 “영웅의 사망”(USA투데이) 톱기사를 냈다.

밥 돌 전 의원의 사망을 추모하기 위해 조기를 게양한 백악관. AFP=연합뉴스


고인은 뼛속까지 공화당 성향이었으나 상대에 대한 존중과 포용 역시 미덕으로 간직했다. 그가 남긴 대표적 명언 중 하나인 “특정한 하나의 정당이 모든 지혜를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는 여전히 회자된다. 몰락한 밀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은 했을지언정 성적과 스포츠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NYT가 “(캔자스 주의) 러셀고등학교에서 훤칠한 키에 멋진 외모를 가진 우등생 밥 돌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워싱턴의 파워 커플, 밥 돌과 엘리자베스 돌 부부. 1975년 당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그랬던 그는 만 19세였던 42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중상을 입고 만다. 당시 부상이 심각한 나머지 거의 온몸에 마비가 왔고 WP 등에 따르면 한때 사망자로 분류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브론즈 메달과 퍼플 하트 등의 훈장을 가슴에 달고 고향에 돌아온 그는 이를 악물고 재활을 했으며, 이후 정계로 진출한다. 그는 정치인으로 활약하면서도 주말이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전우들을 종종 찾아가곤 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일생일대 꿈은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지만, 이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권 경선에 세 차례 이상 도전했지만 클린턴에게 패배했고, 이후엔 부시 가문에 밀려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때론 실패가 성공의 또 다른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그는 증명해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명연설, 특히 유머 감각은 그에게 강연자 및 저술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줬다. 그는 특히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철학을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유머를 모은 책도 펴내면서 부제를 이렇게 달았다. “나도 이 중 한 명이었으면 좋겠네.”

이혼으로 끝난 첫 번째 결혼 이후 그는 75년 엘리자베스 핸포드와 결혼해 해로했다. 첫 번째 부인과 얻은 자녀 1명에 대해선 별다르게 알려진 바는 없다. 둘째 부인 엘리자베스 돌은 커리어를 가진 여성으로, 출산은 하지 않았으나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교통부 장관으로 활약했다. 남편 못지않은 커리어를 쌓으며 워싱턴의 내로라하는 파워 커플이었던 셈. 엘리자베스 돌 역시 이후 정계로 진출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엘리자베스 의원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발표했다.

2018년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예를 표하는 밥 돌 전 의원. EPA=연합뉴스


밥 돌 의원이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인 건 2018년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었다. 당시 캐피톨 힐에 등장한 부시 전 대통령의 관을 앞에 두고 그는 힘껏 예를 표했다. 병세가 이미 심각해 휠체어에 앉아있었지만 경례를 하는 손가락은 꼿꼿했다.

적수였던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게 '자유의 메달' 훈장을 받는 밥 돌 당시 의원. 로이터=연합뉴스


그가 생전 자랑스러워했던 여러 순간 중 하나는 미국의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이었다. 그 메달을 목에 걸어준 이는 밥 돌의 적수,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5일 트위터에 “밥은 전쟁 영웅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평생을 미국인을 위해 헌신했다”고 추모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