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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넘나든 '선거의 남자' 김종인 "나이? 안 중요해"

권호 입력 2021. 12. 06. 21:11 수정 2021. 12. 07.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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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포몽하고 있다. 윤 후보는 빨간색 목도리를 김 위원장에게 둘러줬다. 국회사진기자단

노익장(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좋아진다)이란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있을까. 대통령이라는 권좌를 놓고 다투는 절대 권력 게임인 대선판에 툭 뛰어든 김종인(81) 국민의힘총괄선대위원장을 놓고 하는 말이다.

이립(而立ㆍ30세)을 한참 지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이(불혹·不惑, 40세)를 거쳐 하늘의 뜻을 안다는(지천명·知天命) 50세도 한 세대 전이다. 귀가 순해져 사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이순(耳順, 60세)도 옛말이고, 마음대로 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칠순, 즉 종심(從心)보다도 10년을 더 보냈다.

팔팔한 김종인 위원장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제1야당 윤석열 후보의 총괄선대위원장이 된 6일 “나이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무슨 80 먹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볼 수 있느냐’고들 하는데, 정치적 판단이라는 건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다. 이는 곧, 나이는 팔순이 지났지만 정신적으로는 젊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원톱’이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김 위원장을 대선판으로 끊임없이 당긴 인물은 누가 뭐래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1985년생으로 한국 나이 37세인 이 대표에게 그보다 45세 더 많은 김 위원장은 대선판의 상수였다.

이 대표는 후보 확정 전부터 일찌감치 “(윤석열 후보는) 훌륭한 정치 좌장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데, 그 좌장이 김종인 위원장일 수도 있겠다”(7월, CBS 라디오 인터뷰) 같은 말로 김 위원장의 ‘선대위 원톱 인사’를 기정사실화했다. 최근까지도 “파격적 변화가 없다면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는데, 이 대표가 말한 ‘파격적 변화’라는 건 김종인 위원장의 총괄선대위원장 영입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축적된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한 지난 3일의 이른바 ‘울산 회동’에서의 백미도 '김종인 원톱 영입' 성사가 됐다. 윤 후보는 연결된 통화에서 “김 박사님!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요청했는가 하면, 김 위원장이 이를 수락하자 ‘엄지 척’ 제스처까지 선보였다.

이 대표가 김 위원장을 그토록 당겼던 이유에 대해 정치권에선 말이 많다. “윤 후보 주변의 측근들로부터 배제돼 자칫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뻔한 이 대표가 김 위원장을 방패 삼아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당 관계자의 해석이 그런 말 중의 하나다. 실제로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무 우선권’을 놓고 후보가 먼저냐, 대표가 먼저냐 하는 샅바 싸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미시적인 이슈와 별개로 윤 후보를 향해 “지난 6월 29일, 정치 선언 이후 점수를 까먹기만 했지 생산적인 담론을 만들어낸 게 뭐냐”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반(反) 문재인’이라는 안티 테제를 빼고 ‘윤석열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 후 윤 후보와 만난 다음 기자들에게 했던 첫마디가 “앞으로 공약 같은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당면한 현실 중에 후보가 가장 관심을 갖고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였다. 이는 김 위원장도 윤 후보의 비전에 대해 고민이 크다는 방증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임태희 전 이명박 대통령비서실장이 맡은 총괄상황본부를 필두로 날렵한 선대위를 꾸릴 것이라고 한다. 매머드급 선대위와 별개로 정책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할 별동대를 꾸리겠다는 구상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여야를 넘나 들며 선거 승리에 일조했다. 사진은 2016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그가 20대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당선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 뉴스1

정치권에선 김 위원장을 일컬어 “부적 같은 존재”라고도 한다. 김 위원장의 실제 역할이 어떠했든, 그가 있는 곳은 승리했다는 이유에서다. 노태우 정부 청와대에서 경제수석을 지냈고, 비례대표 의원을 수차례 역임했다지만 그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그런 김 위원장이 정치권에서 급부상한 계기는 2011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으로 합류하면서다.

이듬해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과반 승리했고, 대선 때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은 그가 기치로 내건 ‘경제민주화’가 중도층을 표심으로 끌어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그는 중용되지 못했고, 2016년엔 반대 진영인 민주당의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으로 추대돼 아슬아슬한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때도 김 위원장의 ‘자리’는 없었고, 그는 표표히 자연인의 길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선대위원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게 옛 미래통합당, 현 국민의힘이다. 올 4월 재·보선 때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을 비롯한 압승을 이끌었고 당명도 그가 입안한 ‘국민의힘’으로 바꿨지만, 그 이후 역할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한 야권 인사는 “오랜 세월 지켜온 김 위원장의 정치적·정책적 소신이 워낙 강하다 보니 선거판의 주인공인 후보와 맞서기 일쑤였다”며 “김 위원장의 정책 색깔을 ‘윤석열 선대위’에 어떻게 입히고 조화시킬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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