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너는 언제 사람이 될래?"

2021. 12. 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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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세계 각국의 동화들은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상상의 세계를 펼쳐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적 의미도 크다.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며 읽어 주던 이야기들 가운데 교육동화로 알려진 몇몇 이야기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것도 있었다. 독일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읽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슈트루벨 페터(Struwwelpeter)’라는 교육동화가 있다. 1845년 첫 출판이니 꽤 오랫동안 교육동화로 자리 잡은 이 이야기에서 그림과 함께 등장하는 ‘페터’는 손톱도 깍지 않고, 머리도 지저분하게 기르는 등 한마디로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다. 편식을 하던 아이는 아예 굶어야 해서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무덤에 들어가 있다. 이런 내용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성인이 돼도 동화를 떠올리며 몸서리치기도 한다.

「 전래 교육동화가 가르치는 것들
훈육과 엄벌, 용서와 사랑 엇갈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크고 있나

이와는 달리, 우연한 기회에 독일어로 접했던 이탈리아 동화 ‘피노키오’는 아이가 잠드는 머리맡에서 읽어주며 내가 흘린 눈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피노키오 이야기에서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거짓말할 때마다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코일 텐데, 그 이야기에서 나를 자꾸 눈물짓게 했던 것은 ‘용서’에 관한 것이었다. 제페토 할아버지의 손에서 만들어진 나무인형 피노키오는 온갖 잘못을 저지르고 다니는 말썽쟁이지만, 그때마다 엄한 질책과 그에 따른 처벌보다 끊임없는 용서와 기다림의 시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인내와 용서로 이어지는 기다림 끝에서 피노키오는 더 이상 나무인형이 아닌 사람이 되어 ‘착한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

교육동화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처럼 다양한데, ‘슈트루벨 페터’는 해야 할 것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면 무시무시한 처벌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잘못된 식습관, 나쁜 버릇, 게으름이나 위험한 장난 등은 혹독한 엄벌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원칙을 지키고 규율을 중시하며,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와는 달리 ‘피노키오’는 나쁜 짓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아이지만 용서받고 또 용서받는다는 이야기 속에서 사랑으로 감싸며 인내하는 따스함을 전한다.

우리의 정서는 독일의 원칙주의에 부러운 눈길을 보내면서, 피노키오에서의 인내와 용서를 마음에 담고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교육동화들은 어떤 내용을 전하고 있을까. 더구나 MZ세대라 일컬어지는 요즈음 젊은이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을까. MZ세대를 한두 세대쯤 앞서간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해서 엄격한 훈육을 기본으로 잘잘못을 가리며, 잘못에 대한 훈계와 처벌이 여전히 가당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끊임없는 용서의 시간으로, 마침내 ‘사람답게’ 성장하도록 기다려주는 믿음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까. 말썽꾸러기 아이를 둔 부모들은 간혹 (성인들에게도) “너는 도대체 언제 사람이 될래?”라며 힐책한다. 우리는 나무인형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아동학대 사례들은 듣고 있기조차 버겁고 가슴 아린 소식들이다. 이런 아동학대는 교육목적의 엄격한 훈육을 핑계 삼아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로 보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행동도 서슴지 않는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아이를 무조건 감싸고 용서해주는 마음도 그리 순수하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내 자식만 귀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 태도조차도 가르침 없이 막무가내로 엇나간 자식 사랑의 경우들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머리로는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버르장머리를 가르치며, 올바른 아이로 키우리라 생각하는지 몰라도, 실제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천재’ 소리 듣는 뛰어난 지능과 재능을 지닌 아이며, ‘내 새끼’만은 다른 누구도 혼을 내거나 잘못에 대한 지적질을 해서는 안 되는 ‘금쪽들’로 성역화돼 있다. 이 아이들은 원칙을 중요시하며 법과 규율을 지키는 사람들로 자라나게 될까. 인내와 믿음으로 감싸주던 양육자들의 깊고 따스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자신도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로 성장하는 것일까. 성인(成人)의 의미는 ‘사람이 되다’라는 뜻인데,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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