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文이 받은 ‘G7’ 초대장, 국민이 받아 든 ‘G7급’ 청구서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2021. 12. 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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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에서 내리꽂은 온실가스 2030 40% 감축
누적 배출량 20위 못 되는데 부담은 선진국 클럽 수준
내년 또 상향하자는데아예 새 정부에 맡겨두길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일 영국 글래스고 유엔기후회의 때 열린 글로벌메탄협약식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글래스고 기후회의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을 약속했다. “종전보다 14%(포인트) 상향한 도전적 목표”라고 했다. 정부는 연말 안에 이를 반영한 상향 국가감축계획(NDC)을 유엔에 제출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계획은 10월에 탄소중립위원회와 국무회의 의결을 각각 거쳤다.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상향 계획’ 제출을 재고하거나 다시 짜보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 파리기후협약에는 ‘후퇴 금지(no backsliding)’ 조항이 있어 한번 제출하면 무를 수 없다.

이번에 채택된 ‘글래스고 약정’은 각국이 내년 연말까지 국가감축계획을 재차 상향해 제출하도록 하는 조항(29조)을 뒀다. 현재까지의 각국 상향 계획으로는 도저히 ‘1.5도 상승 억제’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2015년의 파리기후협약은 5년마다 목표를 상향 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1년 연기된 이번 글래스고 회의가 ‘상향 회의’였다. 일정대로라면 2025년 재(再)상향을 하면 된다. 그런데 2022년에 한 번 더 상향하는 걸로 바뀐 것이다. 예정에 없던 추가 상향 절차가 잡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계획 제출 일정 자체를 뒤로 미루거나 1년 뒤 추가 상향을 염두에 둔 내용으로 조정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제사회에 한 약속은 정부가 바뀌어도 이어받아 지켜야 한다. 결국 임기 말년인 문재인 정부가 계획을 제출하면 그것이 차기, 차차기 정부까지 구속하게 된다. 그럴 바에야 새로 들어설 정부가 계획을 확정한 후 책임을 갖고 이행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국회가 작년 8월 탄소중립법을 통과시켰고 그에 입각해 탄소중립위원회 의결 절차를 거친 만큼, 다음 정부도 이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탄소중립위원회 논의부터 형식 절차였다는 의심이 든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9월 15일 국회 답변에서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로 40% 이상은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국가 체면을 생각해 40%로 정했다는 뜻이다.

그에 앞서 국회는 작년 8월 탄소중립법을 통과시키면서 ‘35% 이상 감축’을 명시해뒀다. 정부 선언이나 계획보다는 입법이 훨씬 확고한 의지로 평가된다. 사실은 35% 감축만 해도 아득한 목표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이걸 40%로 끌어올리면서 “꼭 가야 하는 길이어서 비용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의 탄소 정책은 세계 이익도 보호하면서 국가 이익도 지키려는 고민과 숙고의 결과여야 한다. 명분만 앞세워 국민 부담은 따져보지도 않고 결정한다면 그걸 정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정권 사람들은 이렇게 말로는 숭고한 목표를 내세우면서 다른 구석에선 바다를 메꿔 공항 만든다는 탄소 덩어리 정책을 던진다.

‘2030년 40% 감축’이 한국이 감당해야 할 정당한 몫(fair share)이라고 보기 힘들다. 누적 탄소 배출량에서 한국은 국가 전체건, 1인당이건 세계 20위에 들지 않는다(Carbon Brief). 그런데도 감축 부담은 최고 선진국 클럽인 G7 수준으로 떠안겠다는 것이다. 각국 목표를 우리와 비교되도록 ‘2018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미국은 ‘44.6~46.9%’가 된다. 하지만 미국은 클린턴 정부가 서명한 교토의정서를 부시가 찢어버렸고, 오바마가 성사시킨 파리협약을 트럼프가 발로 차고 나갔다. 언제 또 배짱 튀기고 나올지 알 수 없다. EU는 39.8% 감축으로 우리와 비슷하지만, 27국이 전체 수치 내에서 자기들끼리 감축량을 할당하는 이른바 ‘버블’ 방식이다. 훨씬 유연성을 보장받는다. 세계 3위 경제국 일본은 38.6%다.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작성한 ‘기준 연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감축률’로 봐도 EU는 1.98%. 영국·미국 2.81%, 일본 3.56%인데 우리는 4.17%가 된다. 우리가 과연 최선진국 수준, 또는 그들보다 높은 부담을 져야 하는가.

문제는 결국 문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게스트로 초대됐다. G10 회의 비슷한 모양이 됐다. 그때 청와대는 ‘사진 한 장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위상’이라며 남아공 대통령을 잘라내 문 대통령 위치를 돋보이게 한 정상들 단체 사진을 SNS에 올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톱텐(10)으로 인정받았다”며 흐뭇해했다. 대통령이 ‘톱10′ 위상에 감개무량하는 사이 국민은 ‘G7급’ 청구서를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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