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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오마이갓] 종교계와 정치계를 평정한 이 차량은?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1. 12. 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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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0일 이임미사를 마치고 퇴임한 염수정 추기경이 카니발 승합차에 오르려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6년, 릭 워렌 목사 “자가용 비행기 없다”

릭 워렌(67) 목사가 지난 2006년 방한했습니다. 미국 새들백교회 담임목사인 그는 당시 ‘포스트 그레이엄’으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 전도사로 유명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 중 한 명으로 꼽히지요. 세계적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이며,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도(祝禱)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2006년 방한 당시 청와대를 방문했고, 상암동경기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10만명이 운집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배 때에도 양복 정장이 아니라 청바지에 셔츠차림으로 설교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방한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4년 전부터 사례금을 받지 않는다”며 자신의 ‘내려놓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인세·강연 등)수입의 10분의 9는 교회에 헌금한다. 14년째 같은 집에 산다”면서 덧붙인 한 마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자가용 비행기도 없다.” 저는 당시 ‘자가용 승용차도 아니고 비행기가 없다는 것이 검소한 건가’ 싶으면서도 ‘과연 미국과 한국은 단위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그린 리프’를 보다가 ‘목사의 자가용 비행기’가 떠올랐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한 이 드라마는 미국 남부에서 대형 교회인 ‘갈보리 교회’를 담임하는 그린리프 목사 집안 이야기를 통해 미국 사회의 단면을 다룹니다. 여기서 그린리프 목사가 전용 제트기를 새로 장만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기존에 쓰던 제트기가 문제를 일으켜 주지사와 약속에 늦게 되자 새 전용기를 마련하겠다고 하지요. 그가 새로 구입하려는 제트기는 알고보니 다른 목사가 타던 비행기입니다. 드라마에선 그린리프 목사의 에피소드가 다소 속물적으로 그려지지만, 저는 미국 목회자의 전용 비행기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하게 됐습니다. 사실 여러 지역을 다녀야 하는 종교인에게 이동수단은 어쩌면 필수품일 것일 수 있겠지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지난 10월말 원행 스님이 노태우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카니발 승합차에서 내려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1년, ‘카니발 전성시대’

지난 11월 30일 낮 서울 명동대성당에선 염수정 추기경의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미사가 열렸습니다. 미사와 환송식이 끝난 후 성당 입구엔 카니발 승합차가 서있었습니다. 혜화동 주교관으로 떠나는 염 추기경이 탈 자동차였지요. 카니발 승합차를 보면서 문득 ‘이제 정치계를 넘어 종교계도 카니발 승합차가 대세구나’ 싶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경우, 교구장 차량이 김수환·정진석 추기경 시절엔 ‘그랜저’였습니다. 김 추기경 시절엔 소나타를 타다가 주변에서 강권해서 그랜저로 바꿨다지요. 후임 정 추기경도 김 추기경이 타던 그랜저를 이용했습니다. 한동안 불문율로 김 추기경의 그랜저가 기준이 됐습니다. 다른 교구장이나 서울대교구의 사제들도 그 이하 배기량의 자동차를 이용했지요. 염 추기경 역시 서울대교구장 착좌 후엔 전임 정 추기경이 이용하던 그랜저를 타다가 최근 카니발로 바꾸었답니다.

그런데 ‘승합차 전용’은 천주교만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모든 종교를 통틀어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타는 차가 카니발입니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 모두 지도자들 차량은 카니발입니다. 가히 이 승합차 혹은 미니밴 차량이 대세입니다.

개신교 단체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낸 소강석 목사가 카니발 승합차에서 내리고 있다. /새에덴교회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지난달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했습니다. 이때 이용한 차량이 카니발 승합차였지요. 개신교 목사님들도 이 차량을 애용합니다. 조계종 총무원장이 승합차를 이용한 것은 자승 스님(재임 2011~2017년) 때부터입니다. 개신교의 경우, 12월초로 올해 임기를 마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공동대표회장이 세 분입니다. 그런데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예장합동)와 이철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장종현 예장백석 총회장 세 분의 차량은 모두 카니발입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도 카니발을 이용하는 등 개신교계에서도 승합차가 대세입니다. 교계 행사가 있을 땐 주차장에 카니발 승합차가 그득하지요. 대부분 검정색입니다.

종교인 뿐 아니라 정치인들의 차량도 대세가 카니발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요즘 TV뉴스를 통해 많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모두 카니발에서 내리고 타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자주 나옵니다. 대선후보 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카니발 사랑이 유명합니다. 정치인, 종교인 모두 카니발을 애용하는 것이지요.

◇종교계·정치계 만남엔 승합차가 그득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두 후보 모두 카니발 승합차를 이용한다. /이덕훈 기자

그러다보니 종교인과 정치인이 만나는 자리엔 카니발이 그득합니다. 지난달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각각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입주한 한국기독교회관을 예방했을 때가 그랬지요. 두 후보가 각각 방문했을 때 한국기독교회관 주차장과 앞 도로는 ‘카니발 전용 주차장’ 같았습니다. 저는 이재명 후보가 다녀가는 모습을 봤는데요, 후보가 떠나자 한꺼번에 대여섯대의 카니발이 움직이더군요. 후보가 떠난 후엔 목사님들 카니발도 떠났지요.

종교계에서 카니발 승합차가 이렇게 대세가 된 것은 대략 10년 전쯤부터라고 합니다. 키워드는 ‘실용성’입니다. 카니발은 7~11인승으로 실내가 넓습니다. 의자를 뒤로 젖히면 누울 수도 있습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종교인들로서는 이동 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설교·강론·법문 자료를 챙기면서 준비할 수도 있지요. 움직이는 사무실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또다른 장점은 탑승인원이 6명 이상일 땐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행기를 타야하는 미국 목사님들만큼 먼 거리는 아닐지 몰라도 한국 종교인들 역시 지방 출장이 잦습니다. 그럴 때 승합차는 약속 시간 지키기에도 유리합니다.

정치인들 역시 같은 이유로 승합차를 즐긴다고 합니다. 단적으로 지난주 이준석 대표를 만나러 울산으로 이동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나는 비행기나 기차보다는 자동차가 좋다”고 말했다지요. 공항이나 기차역까지 이동해서 기다렸다가 탑승하는 것보다는 한 지점에서 바로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는 승합차가 편리하다는 뜻이었습니다.

한때 종교인들의 차량 문제가 구설에 올랐습니다. 고가(高價)의 수입차를 이용해서지요. 국민들이 종교인들에게 기대하는 수준이 있지요. 그 중 하나는 ‘보통 사람보다는 청빈(淸貧)했으면 좋겠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반 신자들도 널리 이용하는 승합차는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과거 ‘보여주기’식 과시형에서 실용성으로 바뀌는 모습도 좋은 변화의 시작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본질이겠지요. 종교인들의 승합차 애용이 단순히 실용성, 편리성에 머물지 않고 일상 생활 전반에서 신자들의 모범의 되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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