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새털처럼 가벼운 행복 찾기

입력 2021. 12. 8. 00:20 수정 2021. 12.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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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아침부터 눈비가 섞여 내려 더 춥게 느껴지던 어느 날, 잘 아는 보살님에게서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며 연락이 왔다. 오후에 장례식장에 가니, 핼쑥해진 모습으로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장수하시고 돌아가신 거라 괜찮다고는 했지만, 창백하게 저승길 배웅하는 가족들의 슬픔이야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착잡한 마음으로 염불을 마치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인생이 뭐라고 이리 아등바등 살 일인가, 새털처럼 가볍게 자유로이 살련다 나는.”

「 침울하고 막막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져
순간의 행복 음미하며 살았으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멀리 청룡암의 초라한 지붕이 보였다. 처음 이 절에 왔을 때만 해도 볼 때마다 한숨 나는 절이었는데, 이젠 절 그림자만 보아도 정겹다.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편안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명심보감)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무거운 마음을 툭툭 털고, 절에 도착하니 택배가 와있었다. 도반 스님이 멀리서 사과를 보낸 것이다. 두 박스나 되어 고맙다고 얼른 전화를 걸었더니 “스님 좋아하는 사과니까 많이 먹어요. 때깔도 별로고 못생겼어도 엄청 맛있어요. 부처님께도 올리지 말고, 스님이 그냥 다 먹어요. 하하하” 한다. 큭큭큭, 이 많은 걸 부처님께도 올리지 말고 먹으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났다.

출가한 우리는 뭐든지 들어온 공양물은 부처님 전에 올렸다가 내려야만 비로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스님, 직접 짠 거니까 이건 꼭 스님만 드세요”라며 가져다주는 들기름조차도 부처님 전에 올렸다가 꼭 불공을 올리고 먹는다. 사과야 때깔이 곱지 않으니 부처님께는 올리지 말고 너나 먹으라는 말이었는데, 자기애 충만한 내가 멋대로 해석해서 나를 그리 챙겨주나 싶어 기분이 좋았던 거다. 작은 행복은 역시 받아들임의 자세가 중요한 법이니까. 헤헤.

생각해보면 코로나의 늪에 빠진 답답한 시절에도 미소 지을 일들은 더러 있다. 불교라디오만 하던 내가 최근엔 불교방송에서 ‘원영 스님의 불교대백과’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강의하는 프로그램이라 작가가 자료를 잘 만들어주어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공부해야 하는 나름의 고충(?)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번 주 녹화하러 갔더니, 담당 PD가 글쎄 “스님, 지난번 녹화분이 넘쳐서요. 오늘은 남는 녹화분에 이어서 조금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하는 게 아닌가. “우왕~ 우왕, 행복해라. 지연 피디 고마워~” 애교 섞인 말투로 감사를 표하니, 함께 하는 스태프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행복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마구 나왔지 뭔가. 호호호

3년 가까이 함께 살던 사제(동생) 스님이 이번 겨울에 동안거 수행을 위해 선방에 간다고 떠났다. 절 일이 막막하던 차에 어렵사리 함께 살 스님을 구해 새 스님이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 온 스님은 운문사승가대학 후배인데, 염불도 잘하고 깔끔한 데다가 세상에, 음식도 잘했다.

하루는 방송국에 다녀왔더니, 글쎄 도토리묵을 쑤었다며 내놓는 게 아닌가. 마침 낯선 스님과 함께 살 것을 염려한 도반 스님이 전화가 왔길래, 목청껏 자랑했다.

“새 스님은 우렁각시 같아. 일하고 왔더니 세상에나 묵을 쒔지 뭐야.”

“뭐? 묵을 쒔다고? 우리 도반 중에 묵 쑤는 사람 못 봤는데.”

“그러게 말이야. 아이고 행복해라. 어떻게 사나 그리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우렁각시가 들어왔네 그려. 하하하”

장단 맞춰 실컷 담소를 나눈 도반 스님은 늘 신명 나게 즐겁다. 말 나온 김에 웃픈?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이 도반 스님에게는 궁금한 게 딱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어려서 일찍 모친을 여의고 절에 들어와 태어난 시간을 모른다는 것이다. 시(時)를 찾을 수 있게 누구 용한 사람을 알게 되면, 꼭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역에 밝은 한 선생님을 알게 되어 사정을 말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었다. 선생님은 스님의 성격을 대조해가며 드디어 태어난 시를 찾아냈다. 선생님이 가시고, 궁금해진 나는 도반 스님에게 물었다. “그래, 뭐라셔?” “음, 그게…. 어디 가서 말하지 말래. 그리고 뭔 말인지 모르겠어. 기억도 안 나” “엥? 뭐? 하하하. 그럼 왜 찾았어?”

신축년 마지막 달이 별 희망 없이 답답하게 지나간다. 뉴스를 보면 침울하고 걱정스러운 겨울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싶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세상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니 너무 무겁게 살지 말자.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말고, 매 순간 삶의 기쁨을 음미하면서 살아봄이 어떠한가.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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