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칼럼]신화가 되어가는 중산층

박종성 논설위원 2021. 12.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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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근대 서구사회 변혁의 주인공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제3계급’이었다. 16세기 이후 상업혁명, 산업혁명,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이들은 부르주아(자산계급)와 프티부르주아(소자본가·중산계급)로 분화했다. <자본론>을 쓴 카를 마르크스는 “프티부르주아는 대부분 프롤레타리아(노동자)로 흡수돼 사회는 자산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양분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은 양자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결국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했다.

박종성 논설위원

그러나 프티부르주아, 즉 중산층은 프롤레타리아에 흡수되지 않고 오히려 세력을 확장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서구사회가 사회주의 혁명으로 무너지지 않은 이유로 프티부르주아를 집중적으로 육성한 사실이 꼽힌다.

중산층은 확장을 거듭했다. 19세기 프티부르주아는 중소상공업자, 자영농민, 기술자 등을 말했다. 그러나 사무원과 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외연을 넓히면서 중산층은 다양한 성격의 구성원을 갖게 됐다. 중산층의 변신은 한편으로는 이중성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역동성으로 받아들여졌다. 때론 보수적이었다 때론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가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중산층을 강조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중산층은 안정한 상태에 있는가. 또 코로나19 이후 사회의 변화상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가. 우선 인구에서 차지하는 중산층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 OECD는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할 때 중위소득의 50~150% 범위에 속하는 구성원을 중산층이라고 한다. 한때 80%를 넘었으나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70%, 60%대로 떨어졌다. 코로나19 직전에 있었던 조사(2019년)에서는 58.3%까지 하락했다. 주요한 위기의 시기마다 중산층은 큰 폭으로 줄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중산층의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 국내 조사에서 코로나19로 자영업자 가운데 6만5000명이 중산층에서 하층으로 전락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그리고 코로나19와 부동산 폭등은 중산층 진입 문턱을 높였다. 중산층의 기준은 소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수준을 배경으로 안정된 직업이나 직장을 가지고, 소득이 어느 정도를 넘을 뿐 아니라 주택 구입 등 자산을 마련해 안정된 생활수준과 가족생활을 영위하는 가족집단’(<공생발전과 한국의 중산층>, 한준·이상봉)으로 규정짓기도 한다. 물론 OECD의 기준과는 다르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이 기대하는 중산층의 이미지에는 이 기준이 더 가깝다. 여기에서 초점은 중산층의 기준으로 주택 소유 여부를 따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주택을 소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중산층에 이르는 길이 그만큼 더 멀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중산층을 유지하기는 쉬운 일일까. 중산층이 바라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따라와야 한다. 그러나 교육비, 주택비, 의료비의 증가는 소득 증가보다 컸다. 그 결과가 가계부채 증가다. “더 잘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게 중산층의 현실이다. 내집 마련과 자녀교육 비용이 과중해 안정적인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면 중산층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계층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사그라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에서 일반 서민이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많다’고 응답한 사람은 14.9%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에 그쳤다. 하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4명에 달했다.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대부분 잿빛이었고 젊은층일수록 더욱 어둡게 보았다. 역동성이 떨어진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것이 ‘큰 꿈’인 사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중산층의 복원이라는 담론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중산층에 대한 관심은 ‘기득권층에 대한 보호’라거나 ‘보다 심각한 빈곤층의 문제에 눈감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목소리에 가려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중산층은 집단적 특성이나 정체성을 잃고 신화나 ‘상상의 공동체’로 남을지도 모를 것 같다.

박종성 논설위원 p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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