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참위 "세월호 피해자 배·보상 미숙했다"..생존자·유가족 '재심의' 요구키로

강은·조문희 기자 입력 2021. 12. 8. 06:01 수정 2021. 12. 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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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한 실종학생의 귀환을 기원하는 등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서성일 기자


윤길옥씨(56)의 양쪽 발에는 발등을 완전히 덮는 흉터가 있다. 왼쪽 발등은 2도 화상, 오른쪽 발등은 3도 화상을 입었다. 25년 경력의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그는 2014년 4월16일 화물차와 함께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 참사 당시 그는 배 앞머리 쪽 매점에 있었다. 배가 갑자기 기울면서 쓰러지는 전기온수통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뜨거운 물이 발등에 쏟아졌다. 아픈 줄도 몰랐다. 같이 매점에 있던 학생들부터 밖으로 대피시키고 윤씨는 마지막에 탈출을 시도했다. 참사 이후 7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약 없이 잠들지 못한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더욱 짓눌렀다. ‘4·16세월호참사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배보상심의위)가 일실수입, 치료비, 위자료 명목으로 지급한 1억여원의 배상금은 참사로 무너진 윤씨의 삶을 재건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사고 이후 용기를 내 새 화물차를 마련했으나 할부금을 감당하지 못해 빚이 수억원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결국 법원에 개인파산신청을 냈다. 지금은 일용직 운송 노동자로 주말 없이 일하며 간신히 생계를 이어간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 배상금 신청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사고 나고 한동안 병원에만 있었고, 자살 시도도 수십 번 하고, 너무 경황이 없어서…. 서명도 아내가 했는지, 내가 직접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배·보상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조사결과 보고서를 내고 배보상심의위에 “직권재심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국가조사기구가 세월호 배·보상 과정의 문제점을 공식적으로 지적한 것은 처음이다. 윤씨를 비롯한 세월호 생존자와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등 160여명은 오는 9일 사참위 조사결과를 근거로 배보상심의위에 ‘직권재심의’를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한다.

사참위의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정부가 피해자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배·보상을 추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배·보상 지원 신청 기간이었다. 2015년 3월 시행된 4·16 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피해지원법)에는 배·보상금 지원 신청 기간이 법 시행일로부터 6개월 이내로 한정돼 있어(제10조) 피해자들이 신청 여부를 급하게 결정해야 했다. 신청 기한이 지난 후 드러나는 병증에 대해서는 배·보상액이 제대로 산정되지 못했다. 당시 제주대병원, 고대안산병원 등에서 피해자들에게 발급한 후유장애진단서에는 ‘두부, 뇌, 척수항의 장해평가는 외상 후 최소 2년 이상이 이상이 경과한 후에 판정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 시점은 외상 후 1년 2개월이 지난 시점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주 세월호 생존자들을 대리하는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불완전한 후유장애진단서가 배상의 근거가 되면서, 치료예상 기간에 해당하는 3~5년 동안 발생할 소득의 30~40% 정도만 배상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했다.

사참위는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배·보상 신청을 유도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참위는 정부 관계자들이 ‘국가가 기회를 줄 때 배상받는 게 낫다’, ‘정부 배·보상과 (손해배상) 소송의 배상금 차이가 없을 것이다’는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회유했다는 진술을 조사 과정에서 다수 확보했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한 아버지가 시간의 흐름으로 낡아버린 노란 리본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세월호 참사로 60대 어머니를 여읜 김영주씨(46)는 “일부 시신은 수습도 안 된 상황에서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이 유가족들에게 지금 배상금 신청 안 하면 나중엔 더 힘들다, 다른 유가족들은 이미 신청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란을 조성했다”면서 “가족을 잃은 마당에 돈을 따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화물차와 함께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가까스로 생존한 한승석씨(45)도 “나만 살아나왔다는 죄책감에 1~2년은 아무것도 못 하고 술만 먹으면서 폐인으로 지냈다”면서 “빚이 불어나 신용불량자까지 갔는데 재촉하는 말을 들으니 조바심이 났다. 당시엔 내가 얼마 받을지도 몰랐다”고 했다. 당시 전체 생존자와 유가족의 75%(348건)에 이르는 이들이 정부 ‘배상금 등 동의 및 청구서’에 서명했다.

배상금 산정기준과 추진과정 모두 허술한 점이 많았으나 동의서에 서명한 이들은 한동안 문제를 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일종의 ‘이의제기 금지규정’ 때문이었다. 해수부는 동의서 별지 서식에 “4·16 세월호참사에 관해 어떠한 방법으로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합니다”는 문구를 넣었다. 2017년 6월 해당 규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으나 그때는 이미 배상금 지급까지 마무리된 뒤였다.

사참위는 “일상이 무너지고 심리적 고통이 극에 달한 시기에 신청기간과 배·보상 기준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졌고, 짧은 기간 내 신청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부담 속에서 피해자들은 배·보상 신청 독려를 받았다”며 ‘결과적으로 기간 내 배·보상 신청을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불안감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봤다.

당시 배·보상금을 신청한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한 이들보다 더 적은 배상을 받았다. 2018년 7월19일 법원은 일부 유족들이 국가와 청해진 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희생자 1명당 위자료 2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배·보상 신청을 한 유족들이 받은 위자료는 희생자와 유족분을 합쳐도 1억원이었다. 당시에는 세월호 참사의 특수성과 국가책임이 인정되지 않아 일반 교통사고를 기준으로 위자료가 책정된 탓이다. ‘이후 소송을 걸어도 배상금을 더 받진 못할 것’이라는 정부 안내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단원고 2학년8반 고 이호진군의 아버지 이용기씨(52)는 “그 많은 아이들이 희생된 상황에서 정부를 믿은 사람과 정부를 믿지 않은 사람 간에 결론이 이렇게 달라지면 그 누가 정부의 행정을 믿고 따를 수 있겠냐”고 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유가족들은 본인이 당시에 배·보상 신청을 해버려서 같은 죽음인데도 다른 판정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차별’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처음부터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달라고 하는 게 이번 직권재심의 요구의 취지”라고 밝혔다.

배보상심의위에 ‘직권재심의’를 요구하는 신청서에 이름을 올린 유가족과 생존자, 법률대리인 등은 9일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강은·조문희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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