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칼럼] 가짜 일자리 정부

여론독자부 입력 2021. 12. 8. 07:01 수정 2021. 12. 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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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비대면·플랫폼 노동으로 쏠림 가속
재택근무·화상회의도 제도화 추세
공허한 일자리 공약 경쟁 피하려면
노동시장 변화 먼저 면밀히 살펴야
[서울경제]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세계가 갑작스런 고용 충격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전전긍긍했지만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노동시장은 정상을 회복해가고 있다. 우리도 홍남기 경제 부총리의 호언처럼 고용이 2019년의 99.9% 수준까지 회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고용 사정이 크게 개선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야당에서 99.9% 고용 회복을 주장하는 문 정부는 가짜 일자리 정부일 뿐이라는 공격도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비판은 아니다. 정부가 재정을 퍼부어 알바 수준의 노인 일자리만 만들었다는 비판은 2019년에는 맞지만 코로나 상황에서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빠른 고용 회복의 주된 원인은 풍부한 백신 보급과 함께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어 경기를 빠르게 끌어올린 데 있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했던 문 정부로서는 약간의 고용 회복이라도 자랑하고 싶겠지만 그보다는 노동시장에서 진행되는 전환기적 몇몇 변화에 더 주목해야 한다. 첫째, 대규모의 노동 이동과 일자리 구조 재편이다. 지난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전통적 대면 서비스 업종은 최근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식당과 택시, 판매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던 많은 인력이 비대면 서비스와 플랫폼 노동 쪽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돌봄에 묶여 있는 경력단절여성의 증가나 외국인 노동자의 감소 등도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한 요인이다. 이로 인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빠르게 감소하고 1인 자영업자는 약간씩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도 전통적인 독립 자영업자라기보다 플랫폼 노동자처럼 경제적 종속성이 강한 자영업자의 증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자영업자가 줄고 임금 근로자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고용 구조의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이다. 1990년대 일본이 그랬듯 우리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분기점으로 자영업자의 비중이 25% 정도에서 15% 안팎까지 추세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 문제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이들이 고용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거리 두기 장기화로 빈사 상태에 빠진 자영업자에 대한 과감한 손실보상을 한계 사업장의 합리화와 이들을 위한 고용 안전망 투자와 연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두 번째, 고급 기술 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연봉이 치솟아 소규모 스타트업들이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네이버 같은 대형 플랫폼 기업부터 삼성 같은 제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고급 두뇌 유치를 위한 불꽃 경쟁으로 연봉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SW) 인력만 하더라도 정부는 2025년 35만 명의 인력 부족을 전망하지만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100만 인재 양성을 요구한다. 근본 해법은 교육 개혁이지만 지난 4년간 이를 위해 정부가 한 일은 2018년 초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발표한 4차 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뿐이다. 그마저 지금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일자리위원회를 통한 직업 능력 개발 개혁안도 있었지만 고급 기술 인력 훈련에 대한 투자는 시늉만 했다. 답답한 기업들이 훈련 기관을 설립하고 대학에 계약학과를 개설해보지만 궁여지책일 뿐이다. 정부는 왜 민간 업종 단체와 협력해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비트컴퓨터와 삼성청년SW아카데미의 성공 사례로 볼 때 충분한 투자 가치가 있다.

세 번째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다. 재택근무와 화상회의가 방역을 위한 실험적 조치가 아니라 새로운 근무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직방은 아예 사무실을 없앴고, 판교의 테크 기업들은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제도화하는 추세다. SK와 LG·한화 같은 대기업들도 원격근무와 유연근무를 확대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비스 종사자들이 대거 플랫폼 노동으로 이동하는 이유 중 하나도 경직된 직장 근무보다 노동의 자율성이 더 높고 일한 만큼 소득을 올리는 근무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러 개의 잡(job)을 겸직하는 ‘n잡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턴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들을 기존 노동 규범과 사회보험에 밀어넣을 것인지, 아니면 기존 규범을 손질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서둘러야 한다. 향후 5년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대선에서 공허한 진짜 일자리 정부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도 노동시장의 전환기적 변화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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