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기업에 기본소득 주문은 '후보 갑질'

기자 입력 2021. 12. 8. 11:30 수정 2021. 12. 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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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여당 대선 후보가 지난 주말 삼성경제연구소를 방문해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을 삼성에서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떠냐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미 말한 바도 있다고 했다 한다.

대선 후보가, 그것도 집권 정당의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기업에 지지 또는 홍보해 달라는 요청은 매우 부적절하며 사실상 압박을 가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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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재명 여당 대선 후보가 지난 주말 삼성경제연구소를 방문해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을 삼성에서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떠냐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미 말한 바도 있다고 했다 한다. 대선 후보가, 그것도 집권 정당의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기업에 지지 또는 홍보해 달라는 요청은 매우 부적절하며 사실상 압박을 가하는 행위다. 그것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징역을 살다가 지난 광복절에 가석방됐고 다른 재판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을 언급한 것은 삼성 사람들에겐 적잖은 압력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역대 대선 중에서 가장 이례적인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 후보 스스로가 현 정부와 기업에 자신의 정책을 수용 실행해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청하는 경우는 민주화 이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해 줄 것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했고, 난색을 표명하는 장관에게 현실을 모른다고 질타했다. 또, 여당 원내대표는 기획재정부를 국정조사 해야 한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사실, 기본소득제가 국민으로부터 별 지지를 받지 못하는데도 이 후보는 정부가 자신의 공약을 뒷받침해줄 정책을 수행해 주기를 빈번히 원했다.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가 특정 후보를 위해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부당하다. 또, 대선 후보가 특정 기업에 자신의 공약 홍보를 요구하는 행위도 용납될 수 없다.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은 상호 자율성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러잖으면 정경유착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력 대선 후보가, 그것도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당의 후보가 기업에 정치 개입을 요구하는 행위는 실정법을 어기는 행위는 아닐지라도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정책은 국가의 고유 업역에 속하며,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시장의 일부에 불과한 기업이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물론 이 후보는 삼성이라는 명망 있는 기업이 기본소득을 말하면 부정적 여론을 호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도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자고 했다며 삼성의 참여를 설득했다. 그러나 이들이 기본소득을 말한 상황과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선거공약으로 말한 게 아니라,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할 먼 훗날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여당 후보로서 삼성의 연구소를 방문해 이러한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 자체가 삼성이 이 후보를 돕느냐 않느냐를 선택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업으로서는 도움을 거절했다가 장차 일이 잘못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은 물론이고 최근 국정농단 사태에서 다수 기업이 법정에 서야 했던 사실만으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국가 권력은 막강하다. 개인은 물론이고 아무리 세계적 기업이라도 국가와 각을 세우면 온전하게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기업은 여당 대선 후보의 권유를 가볍게 다룰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올바른 국가와 기업 관계를 정립하고 지속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업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경제 논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정치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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