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아인, 판타지를 현생으로 만드는 특별함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1. 12. 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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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유아인, 사진제공=넷플릭스

유아인은 주어진 것을 그냥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주어진 것에 자신의 시선을 더해 연기하는 배우다. 또 작품을 바라볼 땐 거시적으로, 배역을 바라볼 땐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전체적 흐름과 찰나의 집중을 잘 이끌어내는 그런 배우다. 그래서 그의 연기를 볼 때 순간적인 몰입에 정신이 혼미해졌다가, 비로소 갈무리가 되는 순간 작품의 의도로 생각을 넓히게 된다.

최근 출연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극본 연상호 최규석, 연출 연상호)에서도 마찬가지다. 예고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 속에서, 유아인은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 초대 의장 정진수로 등장한다. 유아인은 자신만의 강한 신념과 사상의 집념을 가진 정진수를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모습으로 형상화하며 작품 안에 독특하고 묘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지옥'에서 유아인은 여느 때처럼 강렬하고, 격동적이다. 허나 절대 넘치지 않는다. 마치 곧 넘칠듯 가득찬 맥주잔 속 일렁이는 거품처럼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하며 고도의 몰입감을 자아낸다. 그래서 정진수 의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실제 사이비 교주의 매혹적인 언사를 듣는 것처럼 홀리듯 시청자를 매료한다. 만약 '유아인교'가 있다면 1열에 서겠다는 이들이 떼를 이룰 것 같은 압도감이다. 유아인은 그렇게 자신의 얼굴에 피워낸 정진수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대중을 설득해낸다.

이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응어리진 대사들은 점진적인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지옥'에서 그와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양익준이 "유아인의 연기는 인간의 신념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고 한 말을 오롯이 실감하게 한다. 유아인이 아니었다면 그저 허공의 판타지처럼 느껴졌을 이 캐릭터는, 그의 설득력있는 연기와 만나며 현실성을 갖는다. 그래서 살에 닿는 지옥과도 같은 현생을 마주하게 하며 연기 그 이상의 물음을 시청자들에게 내던진다. 

유아인, 사진제공=넷플릭스

'지옥' 초반을 끌어가는 역할이라 고심이 컸을 것 같아요.

"어떤 작품보다 긴장을 많이 했어요. 주인공들 중에서도 출연 분량이 가장 적음에도 초반 몰입감을 끌어나가야 하다보니까 한 신 한 신 무게가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어요. 신마다 주어진 미션과 목표같은 게 있는데 매 순간 적절하게 성취하지 못하면 정진수라는 인물이 무너져 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신들을 다 긴장하면서 찍었어요. 에너지는 강하지만 겉으론 크게 드러나지 않고 내재된 상태로 조금씩 새어나오면서 미스테리하게 갇혀있는 식으로요."

광기와 이성을 오가는 연기가 무척 인상 깊었어요. 연기를 하는 데 있어 가장 힘을 준 부분이 있다면요.

"최종적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목표로 삼고 있으면서도 정작 표현에 있어선 굉장히 소극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나긋나긋하고 나지막한 느낌을 주기 위해 힘을 많이 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간 들려드리지 못했던 톤이나 인물의 소리 같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정진수라는 역할에 배우 스스로도 굉장히 매료돼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매료됐어요. 최초로 고지를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20년 전에 가장 먼저 받은 걸로 나오잖아요. 20년의 시간 동안 그 인물을 쉽게 추측하기 어렵지만 고통과 번뇌 속에서 살아온 유일한 삶의 결 같은 것들이 이 인물을 어떻게 괴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그런 걸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작품에서 보여준 얼굴이 굉장히 다단했어요. 가장 몰입됐던 장면과 반대로 연기하기 어려웠던 장면이 있다면요.

"먼저 어려웠던 장면은 뉴스에 출연해 '새로운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대사를 하는 부분이요. 그 대사가 형상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레이어드를 다 표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또 의외로 연기하기 어려웠던 게 민혜진 변호사(김현주)와 만남에서 농담을 던진 장면이요. 대사를 현장에서 바로 받아서 소화했는데 그 부분이 정진수라는 인물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지함 속에서 엉뚱하면서도 그로데스크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좀 어려웠죠. 당연히 가장 몰입한 신은 3회 엔딩에서의 진수의 고백신이요. 아주 깊게 완전히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유아인, 사진제공=넷플릭스

'지옥'에서의 지옥이 시사하는 바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어요. 

"지옥에 실제로 다녀와 본 사람을 평생 만나보지 못했거든요. 그만큼 모두가 추측하는 판타지적인 이미지가 있죠. 죽어서 가고 고통 받는 곳. 끊이지 않는 고통을 지옥의 개념과 연결시키죠. 지옥 속의 지옥은 많은 분들이 느낀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있는 곳을 떠난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펼쳐질 수 있다는 거죠. '지옥'이라는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믿음과 신념에 따라 천국이 될 수 있고 지옥이 될 수있는 현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진수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개인적으로 변화의 지점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선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지금도 변화의 과정에 있거든요. 정진수라는 인물을 지나오면서 저도 그 순간 순간 스스로를 감시하면서 느꼈던 건 여전히 제가 떠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좀 더 의식이나 생각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고 느꼈어요. 뭔가 마구잡이로 수면 위로 드러났던 것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 것 같아요."

첫 OTT작이에요. 배우로서 플랫폼의 변화에 따른 차이가 있는지요. 

"최근 시상식에서 이정재 선배님을 만났어요. 선배님께 '요즘 어떻냐'고 물어봤더니 '너네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일하게 될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오징어 게임' 이후 그런 걸 체감하신 듯해요. 아무래도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변화된 환경 속에서 전과는 다른 피드백들이 주어지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어오던 연기 방식을 갑자기 바꿀 순 없는 거고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좋은 연기를 연구하고 쌓아가고 표현해 나가고 관객들에게 던지면서 살피고 더 좋은 답을 끌어내는 것 밖에는 다른 마음가짐은 없는 것 같아요."

작품마다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배역에 대한 접근이 궁금해요.

"연출자의 요구를 따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요. 작품마다 배우에게 요구되는 것이 다르니까요. 장르를 떠나 배우의 연기를 통해 극적인 효과를 만들고자 하는 작품도 있고, 배우가 배경처럼 묻어나길 바라는 극도 있고요. 어느 하나가 좋은 연기라고 단정할 순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비교적 선호하는 연기 방식은 영화 '완득이'의 완득이나 드라마 '밀회'의 선재에 가까워요. 연기하면서 딜레마가 꽤 컸어요.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데 제가 하나도 안보였다는 평가를 해주신 분들도 있었어요. 결국엔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연기를 하는 게 아닌 작품에 따라 적재적소의 연기를 하는게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박정민 배우는 배영재가 부활하지 않는다는 연상호 감독님의 단언을 들으셨다는데, 혹시 정진수 부활에 대해 연감독님과 나눈 이야기가 있다면요.

"어마어마한 시즌2의 6부작 떡밥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죠.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감독님과 나눈 이야기는 있지만 비밀에 부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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