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살 국내 최장수 식품 브랜드 대표가 말하는 "좋은 식문화"

옥기원 2021. 12. 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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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대째 가업' 박진선 샘표 대표
박진선 샘표 대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2013년에는 발효 전문 연구소인 ‘우리발효연구중심’, 2016년에는 한국의 식생활을 연구하는 ‘우리맛연구중심’을 설립하는 등 연구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샘표 제공

올해로 75살인 국내 최장수 식품 브랜드 샘표. 긴 역사만큼이나 각 세대가 샘표를 기억하는 방법은 달랐다. 1970년대 어머니들은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라는 간장 로고송으로, 2000년대 주부들은 ‘연두해요 연두해요~’라는 연두송으로, 2010년 중반 취업준비생들은 젓가락질 면접을 보는 식품회사로 샘표를 기억했다. 밀키트와 가정간편식(HMR) 판매가 급증하는 식탁 혁명이 한창인 2020년대 샘표는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3대째 샘표를 경영하는 박진선 샘표 대표이사를 6일 서울 중구 샘표 본사에서 만났다.

“매출과 이익 목표치를 물어보지 말아달라”는 박 대표의 당부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매출 같은 단기 실적 지표보다 회사 운영 철학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이 이윤 극대화가 되면 내부 구성원과 상품을 사는 소비자 모두가 불행해져요. 한해 매출 목표치나 영업이익을 정해 놓으면 목표 달성을 위한 편법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점유율을 높이려고 다른 회사와 싸우거나 이윤 때문에 생산단가를 줄이면 순간 매출은 늘 수 있지만 망하는 길로 가는 겁니다.”

박 대표는 식품업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내 집안 사람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창업주 고 박규회 회장 말을 언급하며 “할아버지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기에 샘표가 오랜기간 생존한 것”이라고 했다.

간장 시장점유율 65%의 비결

샘표 부흥의 시작은 1970년대 도시화 시기로 거슬러 간다. 아파트 생활 인구가 늘면서 장을 담가 먹는 문화가 사 먹는 문화로 바뀐 건 샘표에 기회였다. 1958년에 ‘장 전문 연구소’를 만들어 장 제조 연구에 집중했고, 1980년대 후반 장기 발효 기술을 반영한 프리미엄 양조간장을 출시해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간장 같은 식품의 기호가 쉽게 변하지 않는 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질 좋은 제품을 만들면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경영 철학이 반영된 결정이다.

샘표는 매출액 기준 간장 시장점유율 65%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몽고간장 등 지역 간장이 강세인 경남지역을 빼곤 대부분 지역에서 샘표 간장을 먹는다. 식품대기업들이 간장 관련 신제품을 내놓고 마케팅에 집중해도 샘표가 쌓은 점유율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1960년대 샘표 창동 공장에서 연구원들이 발효 장 연구를 하고 있다. 샘표 누리집

‘간장 발효' 외길을 걸어온 샘표가 2010년 이후 미래를 위해 선택한 건 연구개발(R&D) 투자였다. “2000년 전에는 공급이 수요보다 적어 잘 팔리는 상품을 따라 만들면 먹고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진 2000년 이후는 남들과 다른 걸 만들지 않으면 망하는 시대가 됐어요. 빠른 변화 속 세상에 없는 걸 만들기 위해선 연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샘표는 2013년 5월 충북 오송에 300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 발효 전문 연구소인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설립했다. 당시 한해 영업이익 200억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해 연구소를 짓는 박 대표에게 “바보짓을 한다”고 비판한 기업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욕 먹을 땐 반신반의했는데 돌이켜보니 연구소를 짓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인기 상품을 단순히 카피하는 것을 넘어서 연두같은 세상에 없던 상품이 나오잖아요. 연구기술이 축적되니 해외에서도 우리 샘표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고요. 한류와 함께 해외 주요 식품 기업, 유명 셰프들에게 우리 식문화를 알리고 함께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의 길도 넓어졌습니다.”

그 결과 박 대표는 전 세계 시장에 국내 식품 산업의 저변을 확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산업계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고 박승복 회장이 같은 훈장을 받은 지 20년 만이다.

젓가락질 면접을 하는 이유는

샘표는 신입공채 채용과정에서 요리면접과 젓가락질 면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샘표 제공

취업준비생들에게 샘표는 젓가락질과 요리 면접을 보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접시에 담긴 콩자반 열개를 젓가락으로 집어 반대편 그릇에 옮기는 ‘이색 면접’이 알려진 뒤 온라인에선 “젓가락질 못하면 취업도 못하느냐”라는 반발이 들끓었다. 박 대표는 “우리 고유 식문화의 가치를 계승하려는 기업 철학에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입했는데 욕도 많이 먹었다“며 “기능을 보려는게 아니라 문화에 대한 자세와 동료와 협력하는 태도를 보기 위한 목적이라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떨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샘표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 박 대표는 “한국 식문화에 선한 영향을 미친 기업”이라고 말했다. 밀키트나 가정간편식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좋은 식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상품 개발에 집중하고 싶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가정간편식이나 밀키트는 가공처리 때문에 질 좋은 식품이기는 어려워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고유의 좋은 식문화가 사라지고, 굶어 죽지 않으려고 먹는 질 나쁜 식습관이 패스트푸드와 간편식 인기로 이어진 게 안타깝습니다. 연두나 새미네부엌 같은 제품을 만들어 신선한 식재료로 좀더 쉽게 요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경영에서 물러난 뒤에 샘표 덕에 건강한 음식을 먹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족할 것 같습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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