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망부석 되겠다"..애플, 결함 인정하는데 평균 1년

문희철 2021. 12. 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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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전화는 받으면서 부장 전화만 피하는 것 같다고 의심을 하네요.”

서울 마포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A(42)씨의 하소연이다. 지난 10월 아이폰13을 구매하고 LG유플러스로 통신사를 옮긴 뒤 같은 부서의 간부가 자신을 ‘수신 차단’했다고 의심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A씨는 아이폰13로 동료의 전화는 받았지만 상사와는 제대로 통화가 되지 않았다.

애플의 신형 스마트폰 아이폰13을 구매한 일부 사용자가 ‘수신 불량’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애플의 소극적인 대응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지 두 달이 지났지만 원인 규명이나 피해자 구제 대책 등이 없어서다.

애플이 지난 10월 출시한 신형 아이폰13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각종 버그를 신고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뉴욕주 그랜드센트럴터미널 인근 애플 매장. [AP=연합뉴스]

신제품 나와야 기존 제품 결함 인정하는 애플


애플은 과거에도 기기 결함 논란이 불거지면 이를 인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아이폰12를 출시했을 때도 음성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이폰12·아이폰12프로 일부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상대방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현상이다.

그런데 애플이 이 같은 결함을 인정한 시점은 지난 8월 30일이다. 제품을 출시한 지 10개월이 지나서다. 당시 애플은 “음성 결함이 확인된 아이폰12 제품은 2020년 10월에서 2021년 4월 사이 제조했다”고 밝혔다. 소비자 지적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아이폰12·아이폰12 프로 무상 교체를 공지한 애플. 제품을 출시한지 11개월만에 결함을 공식 인정했다. [사진 애플 홈페이지 캡처]


아이폰11 결함 때도 애플의 대응은 비슷했다. 2019년 10월 출시 이후 일부 아이폰11 사용자가 손가락으로 디스플레이를 조작해도 제품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묵묵부답이던 애플이 결함을 공식 인정한 건 1년이 지난 지난해 12월이다. 애플 측은 당시 “2019년 11월에서 2020년 5월 사이에 제조한 일부 아이폰11이 디스플레이 모듈의 문제로 터치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공지했다. 출시 시점에 결함 제품을 산 소비자는 1년2개월을 기다리거나 자비를 들여 유료로 서비스를 받았다.

애플이 아이폰X 디스플레이 반응 오류에 대해 서비스를 공지했던 내용. 애플에선 서비스를 받으려면 모든 데이터를 소비자가 스스로 백업한 이후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사진 애플 홈페이지 캡처]


이 밖에 아이폰X 디스플레이 결함이나 무선이어폰(에어팟 프로) 소음 차단 기능 결함 등이 불거졌을 때도 애플은 제품 출시로부터 1년 안팎이 지나 결함을 공식 인정했다.

공교롭게도 애플이 제품 결함을 인정한 시점은 모두 차기 신제품 출시 전후였다. 가령 아이폰13 국내 출시(10월 8일)를 불과 한 달 앞두고 아이폰12의 결함을 인정했다. 아이폰11 결함을 인정한 건 아예 아이폰12 출시일(지난해 10월 30일) 이후다. 아이폰13 수신 불량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일부 소비자가 스마트폰 커뮤니티에서 “아이폰14 출시 기다리고 있다”고 푸념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신제품이 나오면 구형 스마트폰 수리 대신 신형 스마트폰 구매를 선택하는 소비자도 다수이며, 그 수요만큼 애플은 무상 수리비용을 낮출 수 있다”며 “이 같은 행위는 소비자 지향적인 경영 방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직장인 A씨는 아이폰13 수신 오류가 계속되자 제품을 구입한 LG유플러스 매장에서 유심칩(사진)을 교체했다. 이후 ″예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수신 오류가 계속된다″고 A씨는 말했다. 문희철 기자

결함 확인, 데이터 이동도 소비자 몫


애플의 일방적인 공지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출시일로부터 1년가량이 지나서야 결함을 인정하면서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이런 내용을 게재한다. 소비자가 일부러 홈페이지를 뒤져보지 않는 이상 보상이나 수리 대책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결함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소비자의 몫이다. 실제로 아이폰11 디스플레이 결함을 공지하면서 애플은 “일련 번호 검사기를 사용해 기기가 (결함) 프로그램의 적용 대상인지 확인해달라”고 공지했다. 애플은 기존 결함 발생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기의 국내 판매 물량도 공개하지 않았다.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13 시리즈를 판매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서 고객들이 아이폰13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대응책 역시 ‘제조사 중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폰13 수신 불량을 경험한 소비자가 애플 서비스센터에서 전문가와 상담하려면, 자신의 스마트폰에 있는 모든 데이터를 스스로 백업한 뒤 서비스센터를 예약·방문해야 한다. A씨는 “아이폰13을 사면서 200기가(GB) 가까이 되는 데이터를 옮기는데 반나절이 걸렸다”며 “이 작업을 한 번 더 하라고 하니 황당해서 아직도 서비스센터를 못 가고 있다. 데이터를 이동할 공간도, 옮길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아이폰12 음성 결함 논란 때도 매한가지였다. 디스플레이가 손상·파손된 소비자는 수신기 모듈(수화부·액정) 무상 수리가 불가능했다. 소비자가 유상으로 디스플레이 파손 문제를 해결한 뒤 서비스센터를 찾아가야 무상 수리가 가능했다.

한편 이번 수신 불량 문제에 대해 애플은 8일 “LG유플러스의 일부 고객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슈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신 불량 사태에 대해 애플 측이 공식 코멘트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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