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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부터 장난감·라면까지.. 코로나에 쌓이는 재고, 이게 돈이 되네

조성호 기자 입력 2021. 12. 08. 20:33 수정 2021. 12. 0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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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떨이 사서 더 싸게 팔아
반품 파는 '리퍼브'까지 합치면 시장규모 2조, 업체 300곳 호황

지난 7일 오후 재고(在庫) 전문 인터넷 쇼핑몰 ‘리씽크’의 경기 일산 물류센터. 25명의 직원이 일렬로 앉아 데스크톱 컴퓨터 성능 검사를 하고 있었다. 판매 전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피고 정품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곳 1650㎡(500평) 규모의 창고엔 없는 것이 없다. 노트북과 공기청정기 같은 전자 제품부터 어린이 장난감과 라면 같은 가공 식품들이 2만여 박스에 담겨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리씽크 김중우 대표는 “코로나 이후 고객이 급감하면서 미처 팔지 못한 오프라인 매장의 물건을 싼값에 가져와 검사 후 다시 되팔고 있다”며 “최근엔 사정이 어려운 자영업자나 수입이 줄어든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기업이 팔지 못한 재고를 유통하는 ‘재고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소비 심리 위축으로 매장과 창고에 재고가 쌓이자, 이를 다시 저렴한 가격에 유통시키는 시장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단순 재고뿐 아니라 온라인 쇼핑몰에서 반품 처리된 제품이나 전시 상품을 판매하는 리퍼브(refurb)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곳이 채 안 됐던 국내 재고·리퍼브 상품 취급 업체도 최근 300여 곳까지 늘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현재 국내 재고·리퍼브 시장 규모는 약 2조원 정도로 추산된다”며 “코로나로 인한 유통 시장의 침체가 재고 시장엔 호황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7일 재고 전문 쇼핑몰 '리씽크'의 경기 일산 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새로 들어온 재고품 데스크톱 컴퓨터의 하자 여부를 검수하고 있다. 직원들 머리 위로 전자 제품, 식품, 완구를 포함한 재고 상품들이 쌓여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코로나 불경기가 키운 ‘재고(在庫) 비즈니스’

재고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제때 팔리지 않은 신상품, 흠이 있어서 정가에 팔기 어려운 상품, 한 번 반품된 상품이다.

‘리씽크’는 이 중 팔리지 않은 신상품 재고를 주로 들여와 유통한다. 백화점과 마트, 면세점, 편의점이 다 처리하지 못한 재고 상품을 사들여 온라인 몰을 통해 재판매하고 있다. 데스크톱 컴퓨터 같은 경우는 연식이 2년이 넘은 제품부터 재고 전문 업체에서 취급하고 있다. 라면 같은 가공식품은 보통 유통기한이 3개월쯤 남은 제품부터 취급한다. 김 대표는 “코로나가 심화되면서 곳곳에서 제때 팔지 못해 재고가 쌓일수록, 리씽크의 매출은 반대로 올라간다”고 했다. 매출이 창업 첫해인 2019년 100억원에서 2020년 350억원, 올해는 600억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재고 시장을 키운 건 가격 경쟁력이다. 보통 제품 정가보다 40~50% 저렴하다. 가장 큰 고객은 지갑이 얇아져 장사하기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이다. TV 대량 구매가 필요한 숙박업소 사업자, 사무용 비품이 필요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이후 더욱 치열해진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배송 경쟁도 재고 시장의 덩치를 키우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들이 빠른 배송을 위해서 직접 물건을 매입해 자체 물류센터에 보관한다. 하지만 제때 팔지 못한 상품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는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물류센터의 회전을 높이기 위해선 팔리지 않는 재고는 빨리 처리해야 한다”며 “할인을 해도 팔리지 않는 제품은 재고 전문 업체에 넘긴다”고 말했다.

재고 업체들은 기존 유통 채널에도 진입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아웃렛이나 쇼핑몰에 숍인숍(매장 내 매장) 형태로 재고 전문 매장을 들이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괜찮은 물건을 저렴하게 사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다”며 “연식이 오래된 제품이라, 신상품을 판매하는 백화점 매장의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품 늘자 ‘리퍼브 시장’도 호황

온라인 쇼핑이 확산되면서 반품된 상품을 취급하는 리퍼브 시장도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이천점에 문을 연 리퍼브 전문 매장 ‘올랜드’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반품된 상품을 정상가보다 30~70% 싸게 판매한다. 침대나 소파부터 냉장고와 TV, 청소기, 커피머신, 핸드블랜더, 전자레인지까지 있다.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올랜드 관계자는 “사이즈나 색상을 이유로 반품된 제품을 재판매한다”며 “이커머스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리퍼브 시장도 덩달아 성장 중”이라고 말했다.

기존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리퍼브 판매 경쟁에 참전하기 시작했다. CJ몰은 매월 마지막 주 ‘스크래치 위크’ 행사를 연다. 미개봉 반품, 제조 과정 중 흠집이 발생한 제품 등을 30~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티몬은 매월 24일을 ‘리퍼데이’로 정해 기획 상품전을 열고 상시로 리퍼브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리퍼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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