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클래식] '수녀원 스캔들'과 영화 '베네데타'

김성현 기자 2021. 12. 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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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영화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김성현 기자가 최근 개봉한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테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팝엔터테인먼트

뒤늦은 고백부터 해야겠습니다. 1992년 폴 버호벤 감독의 ‘원초적 본능’이 개봉했지요. 당시 서울 시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다음 상영 때도 몰래 자리에 앉아서 같은 영화를 다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표는 한 장만 사서 두 번 보았으니 분명 반칙이지요. 지금처럼 실시간 전산망이 정착하기 이전에 가능했던 꼼수입니다. (요즘엔 그런 생각이나 시도를 하시면 큰일납니다~.) ‘토탈 리콜’이나 ‘로보캅’ ‘스타십 트루퍼스’에도 거듭 감탄했지만, 언젠가부터 버호벤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가슴 설레는 일은 조금씩 줄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베네데타’를 보면서도 실은 반신반의한 심정이었지요.

이번 신작 ‘베네데타’는 17세기 이탈리아 수녀원에서 일어났던 스캔들이라는 실화에 바탕한 영화입니다. 미국 역사학자 주디스 브라운 웨슬리언대 명예교수의 ‘수녀원 스캔들’(푸른역사)이 원작이지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이라는 책의 부제가 보여주듯이 원작 역사서는 두 차례에 걸친 종교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이탈리아 페샤의 수녀원장이었던 베네데타 카를리니(1590~1661)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실존 인물인 베네데타는 ‘예수의 성흔(聖痕)이 자신의 몸에 생겼다’ ‘예수와 심장을 교환했다’ 같은 주장으로 성녀의 추앙을 받고 결국 수녀원장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유럽에서 성인이나 성녀의 탄생은 도시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관심사였지요. 책의 이런 구절은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짐작하는 데 톡톡히 도움이 됩니다.

“베네데타가 진정한 종교적 환영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녀가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수녀원 역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녀가 신에게 선택되어 그녀가 받은 은총을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자신의 특별한 시녀로 베네데타를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수녀원 자체를 가호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후 몇 세기에 걸쳐 공개적으로 표현되었던 이와 같은 생각은, 신의 특별한 인정을 받는다는 수녀원 자체의 주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었다.”(주디스 브라운 ‘수녀원 스캔들’ 105~106쪽)

주디스 브라운의 '수녀원 스캔들'. /푸른역사

하지만 베네데타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었으니 룸메이트였던 수녀와 여성 동성애 관계라는 점이었지요. 이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뒤늦게 드러나면서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사건이 흥미로운 건 성녀와 악녀, 신비주의와 광기 같은 주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과연 베네데타가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말들은 진실일까요, 허언일까요. 만약 사실이라면 그의 말은 신의 계시일까요, 반대로 악마의 유혹일까요. 이런 쟁점을 놓고서 당시 조사관들도 선뜻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베네데타의 말에도 일관적이지 못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여성 동성애라는 주제가 겹쳐 있느니 대단히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결국 베네데타는 성녀에서 악녀로 추락하고 35년간의 옥살이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요.

주디스 브라운의 ‘수녀원 스캔들’은 최근 역사 연구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17세기 수녀원에서 일어난 여성 동성애처럼 예전 역사학에서는 주변으로 밀려났던 주제들을 과감하게 화두로 삼았다는 점에서 흥미롭지요. 더불어 역사와 소설을 넘나드는 듯한 극적인 전개 방식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프랑스 중세 기사들의 목숨을 건 혈투를 그렸던 ‘라스트 듀얼’처럼 최근 역사서들은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도 크게 사랑받고 있지요.

하지만 아뿔싸, 폴 버호벤 감독은 이렇듯 흥미진진한 주제를 손에 쥐고서도 정작 장인의 솜씨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듯해서 줄곧 안타까움이 남았습니다. 종교적·철학적 관점에서 베네데타의 신비 체험에 접근하기보다는 관능적 시선에서 바라보는 바람에 진지함은 사라지고 ‘원초적 본능’만 남았다고 할까요.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집요하게 종교적 신념의 주제를 물고 늘어졌던 뤽 베송 감독의 ‘잔다르크’와 비교해도 많은 아쉬움이 있었지요. 1938년생인 폴 버호벤 감독도 어느새 여든을 훌쩍 넘었습니다. 스크린의 악동도 언젠가는 노년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쓸쓸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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