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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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시시각각] '1가구 1주택'이란 환상의 역습

하현옥 입력 2021. 12. 09. 00:39 수정 2021. 12. 09.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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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 논란을 잠재우고 투기세력을 잡기 위해 정부가 다주택자 옥죄기에 나서면서 '어쩌다 다주택자'도 세금 폭탄을 맞았다. 사진은 다주택자를 겨냥한 부동산 추가대책을 발표한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오는 15일은 나라의 곳간이 넉넉해지는 날이다. 최대 8조6000억원이 들어올 예정이라서다. 정부의 곳간을 불려주는 건 지난해(4조3000억원)보다 2배로 늘어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다. 주택분(5조7000억원)과 토지분(2조9000억원)을 거둬들인다. 102만6600명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다.

곳간 지기를 뿌듯하게 할 수훈갑은 뭐니 뭐니 해도 지난해의 3배로 늘어난 주택분 종부세다. 정부의 주장대로면 전 인구의 약 2%에 불과한 94만7000명(개인과 법인)이 내는 돈이다. 법인(2조4000억원)뿐만 아니라 정부 시각으로는 ‘투기꾼’인 다주택자 48만 명(2조7000억원)을 제대로 응징한 덕이다.

다주택자는 괘씸한 존재다. ‘사는(buy)’ 것이 아닌 ‘사는(live)’ 곳인 집을 투기 대상으로 만들어 집값을 끌어올린 원흉이라서다. 2019년 기준 주택보급률(일반 가구 수에 대한 주택 수의 백분율)은 104.8%다. (어떤 집이냐를 논외로 해도) 전체 가구 수보다 집이 많다는 의미다.

산술적으로 가구당 한 채씩 돌아가지만 내 집을 가진 사람은 국민 10명 중 6명에 불과하다. ‘2020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가보유율은 60.6%다. 본인 집에 사는 사람의 비율(자가점유율)은 57.9%다. 10명 중 4명은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집은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집값은 다락같이 올랐다. 30번에 육박하는 부동산 대책은 무효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유가 필요했다. 논리는 이렇게 흘러갔다. ‘1가구 1주택’이 가능했지만 다주택자가 집을 쓸어담으며 가격이 올랐다는 것이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1가구 1주택’이란 목표를 향한 ‘다주택자 잡기 레이스’가 펼쳐졌다. 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하며 유예기간 없이 사업자 등록을 강제 말소했다. 양도소득세 중과에 종부세 강화까지 다주택 투기꾼을 일망타진하려 칼을 벼르고 별렀다.

■ ‘다주택자=투기꾼’이란 프레임에
월세 가속화로 주거 사다리 붕괴
'개수' 집착 종부세, 형평성 사라져


다주택자만 잡으면 집이 쏟아져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는 명징했다. 하지만 ‘1가구 1주택’이란 논리로 재단하기엔 현실의 삶은 더 복잡다단하다. 사회안전망의 미비 속에 노후를 위해 임대소득이라도 만들어 보려 다주택자가 된 이들, 나름의 이유로 함께 살 수 없는 부모나 자식 때문에, 상속 등으로 ‘어쩌다 다주택자’가 된 이들까지 세금 폭탄을 맞았다.

‘1가구 1주택’이란 환상에 사로잡혀 ‘개수’에 집착한 탓에 과세의 형평성도 어그러졌다. 공시가 9억원의 집 한 채가 있으면 종부세를 내지 않지만 공시가 3억원의 집 세 채를 가진 이는 367만원의 종부세를 내야 한다.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해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종부세 도입 취지와도 거리가 멀다.

주택시장 신규 진입자가 곧바로 집을 사기는 어렵다. ‘월세-반전세-전세-매입-상급지 이동’이란 사다리를 밟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 임대인의 존재는 필수다.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공공임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가구 중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8%(170만 호)다. 무주택 임차인(731만 가구)의 23%만 커버할 수 있다. 다주택자가 임대주택 10채 중 8채를 공급하는 셈이다.

다주택자를 조준한 세금 폭탄은 전세의 종말을 앞당겼다. 월세화를 통한 ‘주택 임대시장의 세계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양도세 부담에 증여를 택하는 이가 늘며 부의 대물림도 부추겼다. 정부 곳간이 두둑해지는 사이 많은 이는 ‘하우스 푸어’를 넘어 ‘텍스 푸어’로 내몰린다. 무너진 주거 사다리와 사라진 조세 형평성. ‘1가구 1주택’이란 환상이 가져온 지난 4년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완전한 1가구 1주택 사회가 되면 이사는 가능할까. 누군가 죽어야 이사 갈 집이 시장에 나오게 되는 걸까.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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