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부작용 없는 코로나 치료제..'비대칭 유기촉매'가 해결사

최동현 입력 2021. 12. 9. 08:36 수정 2021. 12. 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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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매,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물질들 반응 돕거나 제어
요소, 디젤엔진의 질소산화물을
무해한 질소와 물로 바꾸는데 도움
많은 촉매 연구들 노벨상 수상
자연에 '이성질체' 물질 구조 존재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가 달라
약에서 한쪽은 효과를 내지만
반대쪽은 부작용 만들어
비대칭촉매, 효능물질만 만들수 있어
소독하는 보건소 의료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사실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촉매’입니다. 촉매란 뭘까요? 화학에서 촉매(catalyst)는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제외한 다른 물질들끼리 반응이 일어나도록 돕거나 제어하는 물질입니다. 그래서 촉매는 생성물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촉매는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적 아날로지로도 사용됩니다. 어떤 사건의 창발을 촉진하는 인물에 비유하죠. 진정한 촉매는 도움만 돼야 하고, 결과로 나온 이익은 누리면 안 됩니다. 그만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숭고한 역할입니다.

화학 반응에서도 촉매가 없으면 생성물이 잘 만들어지지 않으며 촉매가 생성물에 남으면 불순물로 취급합니다. 촉매의 중요성은 화학의 한 분야로 따로 있을 정도이고 산업은 물론 특히 생화학이나 제약 분야에서 생성물의 결과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촉매의 중요성은 이미 많은 촉매 연구에 수여된 노벨상으로 알 수 있는데, 이번에 다시 촉매에 수여된 것은 더 특별한 ‘비대칭 유기촉매(asymmetric organocatalysis)’라고 합니다.

‘촉매’의 의미는 알고 있으니 이 용어에서 ‘비대칭’과 ‘유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짐작하실 겁니다. 유기(organic)와 무기(inorganic)의 구분은 화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헷갈릴 정도로 여러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주로 탄소화합물을 유기물이라고 하는데, 촉매 역시 무기물과 유기물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촉매는 분자 내부에 충분한 전자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반응은 결국 전자의 교환에 의해 이뤄지니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대부분 무기물 촉매에는 많은 전자가 있는 금속을 이용했습니다. 반응을 빠르게 하고 생성물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화학산업에서 금속 촉매 사용은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화학사의 중요한 사건이나 발견을 다룬 일화에는 금속 촉매가 자주 등장합니다.

반면 유기촉매는 생화학과 약학이 발전하며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대사과정을 화학의 영역으로 옮기며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효소(Enzyme)가 바로 유기촉매인 셈이죠. 금속 촉매에 비하면 거대한 크기의 유기물질입니다. 하지만 유기촉매 분야도 그리 새로운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이미 인류가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많이 다뤘으니까요.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비대칭’이 노벨화학상의 핵심일까요.

사실 비대칭이라는 용어도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자연에 이성질체(isomer)라는 물질 구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러한 현상도 공교롭게 요소를 합성한 뵐러가 발견했군요. 이성질체는 분자에 들어 있는 원소라는 재료는 같지만, 원자의 연결방식이나 공간배열이 같지 않은 화합물을 말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원자가 배치되느냐에 따라 성질이 달라져 마치 다른 물질처럼 존재하게 됩니다. 포도당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전분과 셀룰로스는 포도당(glucose·C6H12O6)으로 구성됩니다. 형태로만 보면 포도당 수천 개가 길게 늘어선 것이 전분이고, 셀룰로스는 아주 촘촘하게 얽힌 형태입니다. 전분과 달리 단단한 셀룰로스는 분해가 어렵습니다. 소나 염소가 종일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초식동물 중 반추위를 가진 동물은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 씹는 특성이 있죠. 지구 생명체 중 셀룰로스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박테리아도 그중 하나고, 반추위는 그런 박테리아의 창고인 셈이죠. 물론 반추위가 없는 초식동물도 있으며 사람도 그중 하나입니다. 초식을 하는 코끼리는 반추위가 없습니다. 결국 종일 음식을 먹어야만 먹는 양의 일부인 당즙과 전분을 섭취할 수 있죠. 코끼리가 먹고 소화되지 않아 그대로 배출된 어마어마한 양의 식물 사체를 보고 놀랄 게 없다는 얘기입니다. 반면에 전분은 소화가 잘 됩니다. 이유는 전분과 셀룰로스를 구성하는 포도당 모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 물질을 구성하는 포도당은 분자식이 같지만 비슷한 모양의 이성질체인 셈이죠. 이 둘을 알파(α)와 베타(β)로 구분합니다. 알파 글루코스끼리 결합하면 ‘나선구조’를 형성하는 전분이 되고, 베타 글루코스끼리 결합하면 그물구조의 셀룰로스가 됩니다. 하나는 단맛이 나고 다른 하나는 소화도 안 됩니다. 분자에 존재하는 사소한 배열 차이로 완전히 다른 물질이 된 셈이죠. 이런 이성질체 중에 많은 물질이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가 바뀐 모습의 분자로 존재합니다. 이를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하고 여기에 ‘비대칭’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죠. 마치 좌우 양쪽 장갑의 모습처럼 서로 닮았지만 분자로만 보면 겹쳐지지 않아서 비대칭이라고 한 겁니다. 각각의 용어를 보면 새삼 새로운 것도 없지만 이 용어가 엮이고 싹을 틔운 원동력은 자연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아미노산도 거울상 이성질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비로운 사실은 몸에 있는 아미노산은 거울상 이성질체중 한쪽만 있다는 겁니다. 왼쪽이라는 의미의 L(레보)-아미노산만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거죠. 그러니까 오른쪽인 D(덱스트로)-아미노산은 거의 없다는 거죠. 인류는 아직 이런 자연의 비밀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연이 한 방향의 분자로만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바로 약 때문입니다. 약물로 치료한다는 의미는 결국 외부 물질이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일인데, 이 말은 좌우 거울상 이성질체 물질에 따라 몸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겁니다. 왼쪽 방향 아미노산은 결국 한쪽 약물에만 효능이 있으니까요. 가령 해열진통제인 이부프로펜에는 두 거울상 이성질체가 같은 양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효과를 내는 물질은 D-이부프로펜뿐입니다. 나머지는 부작용이 생기는 거죠. 이런 이성질체의 존재를 몰랐던 시절에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가 탈리도마이드라는 약물 의료사고입니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20세기 중반에 약효 없는 거울상 이성질체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나타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1만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약을 만들 때 아예 효능 있는 한쪽만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직 자연을 완벽하게 흉내 내지 못하기에 물질을 합성하면 양쪽 이성질체가 전부 만들어집니다. 지금은 두 방향 물질을 모두 만들고 어렵게 한쪽을 걸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마저 그리 쉽진 않지요. 그런데 비대칭 유기촉매로 한쪽 물질만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기존에 다루기 어려웠던 효소 촉매처럼 큰 분자가 아니라 천연물임에도 간단한 유기물이며 독성도 없고 합성도 쉬워 대량 생산으로 경제성까지 있는 것이죠.

2000년 논문이 처음 발표된 후로 유기촉매라는 학문 분야의 ‘황금기’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거의 하루에 두 편 이상 논문이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약 분야에서 이 촉매를 활용했죠.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도 비대칭 유기촉매로 한쪽 효능 물질만 만들고 부작용을 나타내지 않게 했습니다. 앞으로 등장할 코로나 치료제도 이 촉매의 덕을 볼 겁니다. 이런 영향력과 의의로 노벨상이 수여된 겁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누구인지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성과가 수상자의 전유물이 될 수 없겠죠. 촉매와 이를 연구하는 모든 과학자가 주인공입니다. 이들이 한 걸음씩 자연의 비밀을 벗겨 나갈 겁니다.

또 미래의 과학자는 오늘의 과학자 연구를 토대로 노력과 지식을 더할 겁니다. 과학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도전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이자 체계니까요. 어쩌면 여기에 기여하는 모든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진정한 촉매가 아닐까 합니다.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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