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사저널

세금은 징벌 수단이 아니다 [쓴소리 곧은 소리]

박형수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입력 2021. 12. 11. 14:02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종부세 최고세율, 18년 지속 땐 내 집 다 빼앗기는 약탈적 수준
차기 정권은 주택 수 아닌 보유주택 가격 총액 기준으로 매겨야

(시사저널=박형수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세금을 부과할 때 소득·재산 등 납세자의 지불능력에 따라 부과되어야 한다는 '응능(應能) 원칙'이 매우 중요하다. Tax란 용어도 이용한 거리를 따져서 요금을 내는 택시(taxi)의 어원과 동일하게 taxa(평가하다/부담을 지우다), Taxo(나는 추산한다), Taxare(만져서 평가하다) 등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납세자의 지불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시대에 고가의 유리를 사용하는 창문이나 난로의 개수가 많을수록 담세능력이 클 것이라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부과되었던 영국의 '창문세'나 '난로세'가 이제는 역사 속의 황당한 세금으로 회자되고 있다.

국세청이 올해분 종부세(주택분) 고지서 발송을 시작한 11월22일 한 납부 대상자가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를 통해 종부세 고지 내역을 확인하고 있다.ⓒ연합뉴스

영국의 창문세·난로세…역사에 기록된 황당한 세금들

소득세나 소비세에 비해 재산보유세는 납세자별 부담능력의 차이를 감안해 주는 응능 원칙을 적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재산보유세 부담을 일시에 급격하게 키워 납세자가 세금폭탄이라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세율 수준도 양도차익이 양도소득세로 과세되기 때문에 보유세 세율은 보유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률 범위 이내로 해 재산원본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6%의 최고세율은 임대수익률을 크게 초과해 원본을 잠식하는 징벌적 수준이고, 부유세의 최고세율이 1% 내외(스페인만 3.75%)인 것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높다. 특히 종부세 최고세율 6%가 지속될 경우 18년이면 보유한 모든 주택을 세금으로 국가에 빼앗기게 된다. 재산세까지 감안하면 17년으로 줄어드는 약탈적 수준이다.

불로소득 환수라는 편협한 정책을 목표로 이와 같이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1997년 독일연방최고법원은 재산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재산세는 다른 조세부담 등과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재산의 근간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기대할 수 있는 수익으로 재산세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유세는 그 부담이 과도해지면서 납세의무자의 재산 상태를 손상시키는 점진적 몰수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차기 정권에서는 담세능력 등을 감안해 세율 인하, 공시가격 현실화율 및 세부담 상한의 하향 조정 등으로 세부담 증가 속도를 줄이고,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종부세 합산 배제도 부활시켜야 한다. 종부세가 통상적인 보유세보다는 제한적인 부유세에 가까운 국세라는 점에서 주택 수가 아닌 보유주택 가격 총액 기준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득에 비해 보유세 부담이 과도한 실거주 1주택자나 일시적 2주택자, 상속주택의 경우, 은퇴한 고령자 등에 대해서는 세액 감면 또는 매각·상속 시점까지 납세 이연제도 도입해야 한다. 미국이 시행 중인 '재산세 연기'는 "연령과 소득수준을 결합해 재산세 납부를 연기해 주고, 주택 소유자의 연령이 65세가 되면 재산세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동결"하는 제도인데 우리도 참고해볼 만하다.

종부세는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 제고를 통한 '부의 재분배'와 '부동산 가격 안정 도모'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어느 측면에 집중하며 개선시켜 나가야 할까?

우선 적어도 세 차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손재영 건국대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1989년 노태우 정부의 토지공개념 3법(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도입 이후 10년간 주택가격이 안정된 것은 보유세 강화 정책 때문이 아니라 116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분당·일산 등 5개의 1기 신도시를 건설하고, 서울시 용적률을 기존 200%에서 400%까지 올려 주택을 대량 공급한 덕분이었다.

부동산 가격 안정에 종부세 강화는 모두 실패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2004년 상위 1%만 내는 '부자세'로 종부세를 신설했고, 2006년 과세 대상을 개인별 합산에서 세대별 합산으로 변경하고 과세기준액을 9억원에서 6억원으로 인하하는 등 보유세를 대폭 강화했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실패하고 과도한 세금부담에 여론만 악화되면서 이명박 정부에 정권을 내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2008년 세대별 합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조세원칙과 일반적인 보유세제 원칙에 맞게 대폭 완화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 또다시 여당 주도하에 부동산 가격 급등을 억제하고자 종부세를 완화 이전보다 더 강력한 수준으로 강화했지만 집값을 잡기는커녕 실수요자와 세입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등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실패한 정책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이념에 사로잡힌 아집이거나 다른 목적을 위장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마 토지공개념이란 간판은 달지 않았지만 소득불평등(2019년 시장소득지니계수 0.404)보다 훨씬 더 심각한 소수 부유층에의 부동산 집중 등 부의 불평등(부동산지니계수 0.507, 총자산지니계수 0.542)을 완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금과옥조로 삼고 보유세 부담 강화 정책을 밀어붙였던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의 주장, 이재명 후보의 '국토보유세' 신설의 배경도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종부세는 부유세로서 한계가 많은 세제다. 부동산 외에 주식, 금융자산, 특허권 등 훨씬 더 큰 부자들은 부유세 대상이 아니고, 과세표준을 산정할 때 재산 취득과 관련된 부채도 차감해 주지 않는다. 지난해 부동산 가격공시에 소요된 비용이 국비만 총 1807억원에 달했는데, 부동산 이외 재산에 대한 평가에 조세행정 비용이 추가되어야 한다.

앞으로 재정지출을 철저하게 통제해 나가더라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복지지출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므로 조만간 증세 압박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증세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국민의 강한 조세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기준과 전략이 필요하다. 조세정책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원리로 알려진 효율성과 소득재분배 측면 이외에 많은 납세자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으로 세원 간 부담, 소득계층 간 부담, 세대 간 부담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회복시키면서 증세한다는 원칙을 추가하고, 총체적이고 일관된 세제 개혁을 통해 완만하지만 꾸준한 증세정책을 한국형 복지국가 비전과 함께 패키지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