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데타 42주년..사죄 없이 떠나고 '잊힌 죽음들'

임상범 기자 2021. 12. 1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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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가 일으킨 12·12 쿠데타가 오늘(12일)로 42년이 됐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사죄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쿠데타로 목숨을 잃은 세 장병의 유족들이 느낄 회한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두환/1989년 국회 청문회 : 12·12 사태는 시해 사건의 수사 도중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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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신군부가 일으킨 12·12 쿠데타가 오늘(12일)로 42년이 됐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사죄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쿠데타로 목숨을 잃은 세 장병의 유족들이 느낄 회한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임상범 기자입니다.

<기자>

1979년 12월 12일.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신군부는 여세를 몰아 정병주 특전사령관 연행에 나섰고, 홀로 사령관을 지키던 김오랑 중령은 반란군의 총탄에 맞아 절명했습니다.

[김충립/12·12 당시 특전사 보안반장 : 지금 (사령관 잡으러 옵니다) 그러더니 실탄을 장전하더니 일어서서 사령관 집무실로 들어가면서 안에서 (문을) 잠그니까 그때부터 M16으로 들이 쏴대니까..]

제대를 3달 앞두고 국방부 초소를 지키던 정선엽 병장도, 영문도 모른 채 계엄사령관 연행에 동원됐던 박윤관 상병도, 그날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서슬 퍼런 군사정권 아래 세 사람의 죽음은 묻혀버렸습니다.

[김준철/김오랑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 (순직이라고 써 있네요?) 쿠데타라는 거는 사실은 반란하는 상황이니까 반란군에 대항했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이거는 전사와 맞먹는 예우를 해줘야 되지 않느냐..]

쿠데타를 제압하지 못했던 패장들의 삶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강제 전역당한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은 줄곧 12·12의 부당함을 알리려 애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장태완/12·12 당시 수경사령관 : 이거 뭐 개죽음 밖에 더 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헌신했노라 하는, 순국했노라 하는 위안의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2·12에 대한 단죄는 없었고,

[전두환/1989년 국회 청문회 : 12·12 사태는 시해 사건의 수사 도중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끝내 사죄 없이 떠난 전두환·노태우 씨의 죽음 앞에 유족들은 다시금 절망했습니다.

[정훈채/고 정선엽 병장 친형 : 용서라는 것이 잘못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해야 성립이 되는 거잖아요. 마지막 이렇게 죽는 걸 보고 정말 안 됐다..]

[김태랑/고 김오랑 중령 친형 : 안 풀립니다. 죽을 때 그냥 묻힌 그대로 가슴에 묻은 그대로 갈 거예요. 안 될 것 같아요. 갈수록 더 커집니다. 가슴에서 더 커지고 있다고요.]

(영상편집 : 김초아, VJ : 김초아·정한욱, 작가 : 김유미, CG : 홍성용·성재은·안지현·전해리·조현서)

임상범 기자doong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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