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선 노인 "노동청 신고해봤자 허사..블랙리스트 감수하며 소송" [내막노:내 마지막 노동일기]

이혜리·강한들·고희진 기자 입력 2021. 12. 1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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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노인도 싸운다

[경향신문]

LG트윈타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3월 집단해고에 반발하며 빗자루로 만든 ‘고용승계 해고철회’ 글자판을 들고 거리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청소는 경비와 함께 노인의 대표적인 일자리로 분류된다. 김기남 기자
빌딩 청소하다 갑자기 해고 통보
“6년간 시말서 한 장 안 썼는데…”
계약 갱신 기대권 주장 소송 제기
홍대·LG트윈타워 집단해고 등
계속 반복되는 청소노동자의 싸움
“어려운 길이지만 소송 택한 이유
비상식적 행위, 기록 남기기 위해”

“법이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우리는 순경만 봐도 무서운데요. 법은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여기까지 오기가 너무 힘들었고, 사실은 지금도 무서워요. 그런데 너무 억울하잖아요.”

살면서 소송에 휘말릴 일도, 법정이라는 곳에 가본 일도 없었던 노인 노동자 4명이 지난해 8월 법원을 찾았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대형 빌딩을 청소해온 이들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회사로부터 ‘일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고, 부당 해고이므로 무효임을 확인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서도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노인 노동자들이 이처럼 소송을 내는 일은 이례적이다. 이들은 왜 어려운 싸움을 시작했을까. 소송의 원고인 임순영(64·가명), 최명자(69·가명), 신현철(73·가명)씨를 지난달 24일 만났다.

청소는 경비와 함께 노인의 대표적인 일자리로 분류된다. 어느 건물에나 그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가 있지만, 이들은 사람들 눈엔 잘 띄지 않는다. 신씨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공기업 성격의 기관에서 청소를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이쪽 빌딩으로 재취업을 했다. 모아놓은 재산은 없고, 기초연금 30만원과 국민연금 30만원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청소 일을 계속한다. 임씨와 신씨는 2014년부터, 최씨는 2019년부터 이 빌딩에서 일했다. 면적은 3300㎡(1000평) 가까이 되고 화장실만 10개가 넘는 1개층을 청소노동자 1명이 담당했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월급은 170만원가량이었다.

빌딩 청소는 빌딩 측과 용역업체가 용역계약을 맺고,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는 구조로 돼 있다. 계약기간은 1년. 별다른 일이 없으면 매년 계약이 갱신됐지만, 계약을 연장할 주도권과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가진 관리자와 노동자들 사이에선 갈등과 충돌, 갑질과 괴롭힘이 벌어진다. 노동자들이 명절 등에 돈을 상납하기도 하고, 힘든 것을 견디지 못해 일을 그만두기 일쑤였다고 임씨 등은 말했다. 대학이나 병원 등 규모가 큰 사업장에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있지만, 개별 빌딩엔 노조가 없는 곳이 태반이다. 임씨 등도 노조 소속이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과 담당 구역이 계속 바뀌어 힘들었다는 최씨는 “(관리자가) 말할 때 말대꾸하지 말고 ‘예’만 하라고 했다. 무조건 항복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용역업체 쪽 관계자는 “관리자들도 연세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다툼이 있을 수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에선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용역업체는 지난해 8월 근로계약 기간 만료 10일 전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이들에게 통보했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관리자에게 재계약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답변은 듣지 못했다. “(관리자도) 할 말이 없겠죠. ‘나는 잘릴 이유가 없는데 내가 잘못했으면 나갈 테니 잘못한 사유를 적어달라, 왜 맨손으로 왔느냐’고 말했지만 고개를 푹 숙이면서 미안하다고만 하고 자리를 피하려 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자르는지…. 그날 밤 속상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못 잤어요.”(임씨) “6년을 있으면서 시말서 한 장 쓴 게 없고 별 탈 없이 지냈거든요. 그런데 별안간 나가라고 하니까 힘이 들더라고요. 전체가 나가느냐고 물었더니 전체가 아니고 몇 사람만 나간다고 했어요.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나가야 되느냐고 했더니 이야기를 못했어요.”(신씨) 다수가 여성·노인·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은 10년 전인 2011년 홍익대학교의 집단해고 당시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지만, 올해 LG트윈타워 집단해고 사태까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임씨 등은 노동청에 신고해봤자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예 소송을 내기로 했다. 소송을 내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문제를 제기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청소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했다고 했다. “하나, 둘이서는 못해요. 비용도 문제이고 (소송에) 매달려야 되고요. 힘을 합치니까 가능했던 것이지, 나만 있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꿈도 못 꾸죠. 그냥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죠.”

소장은 임씨 남편 박수환씨(가명)가 썼다. 원고 4명이 30만원씩 총 120만원을 모아 인지대 비용을 내고, 변호사는 선임하지 않았다. 박씨와 임씨 등이 대리인 변호사 없이 법정에 나가자 재판부가 소송 구조를 권했다. 소송 구조는 자금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 소송 비용을 내지 않고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다. 소송 구조를 통해 임씨 등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리고 변론기일이 열릴 때마다 임씨 등은 빠지지 않고 매번 법정에 나갔다. 복잡하게 오가는 법률용어들을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절실한 심정을 법정에서 표현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계약직 노동자이더라도 지속적으로 계약이 갱신돼왔다면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노동자에게는 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용역업체에선 근로계약이 기간 만료에 따라 종료된 것이고, 임씨 등의 정년이 지났기 때문에 계약 갱신에 관한 정당한 기대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의 1심 재판부는 임씨 등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용역업체가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갱신해왔기 때문에 신뢰관계가 형성됐고, 노동자들에게 계약 갱신에 대한 기대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체 노동자 50여명 중 10여명만 근로계약 갱신이 거절됐고, 갱신이 거절된 노동자들의 근무태도가 불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점도 감안했다.

임씨 등을 대리한 김건하 변호사는 “형식적으로 계약기간이 1년이니까 계약기간 만료라고 하면서 사실상 해고를 하는 것”이라며 “(임씨 등 노인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회사의 부당한 행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촉탁직이나 정년 이후의 계약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계약 갱신 기대권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다.

1심 판결은 소송을 낸 지 1년 만에 받은 것이지만,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용역업체는 항소했고,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심에서 용역업체는 관리자가 계약 해지를 말했지만 관리자에게 그러한 권한은 없었고, 도리어 노동자들이 일터에 복귀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부당 해고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씨와 신씨는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이후 일을 쉬고 있는 상태다. 최씨는 쉴 수 없어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 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바라느냐고 물었더니 억울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씨의 말이다. “첫차를 타보신 적 있으세요? 첫차를 탄 사람의 90%는 청소노동자예요. 그런데 이들의 실상을 보면 열악하다 못해 처참합니다. 서울의 수많은 빌딩을 이분들이 다 감당하고 있어요. 청년들이나 사정이 나은 사람들은 선택권이 있잖아요. 여기서 잘려도 다른 데 가서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이요. 하지만 노인들은 아니에요. 업체들도 대동소이하고요. 우리가 소송을 한 것은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상식에 못 미치는 행위들이 당연하게 이뤄지는데 항변도 제대로 못하는 구조로 만들어놓고 일을 시키거든요.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기를 원했어요. 다른 분들도 이런 기록을 보고 한 발씩 한 발씩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을, 어쩌면 그분들한테도, 저희한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되겠다 싶어서 소송을 택한 거예요. 어려운 길이지만요.”

노년유니온·빈곤사회연대 등 21개 단체로 구성된 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 회원들이 2019년 3월25일 서울 경복궁역 앞에서 ‘줬다 빼앗는 기초연금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후 폐지를 수거하는 리어카를 끌며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인은 받기만 하는 존재? 이젠 주체적으로 바꿔나가야”…노조 설립 등 변화의 바람

당사자 요구 전달·사회 참여 원해
노년유니온 등 노조·단체 결성도
“보수 꼰대 부정적 인식 바꿔야…”
은퇴 이후 ‘퇴직자 노조’ 논의 중


노인 인구가 늘고 일하는 노인의 수가 많아지면서 노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단체를 결성하거나 퇴직자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인 당사자들의 요구사항을 한데 모아 정부에 전달하고, 사회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 노인과 관련된 대표적인 단체는 전국에 조직을 갖고 있는 사단법인 대한노인회가 있다. 노인의 권익 신장과 복지 증진, 사회 참여 촉진을 국가가 돕는다는 취지의 ‘대한노인회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대한노인회는 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는다. 최근엔 대한노인회의 독점적 지위를 비판하며 대안 세력으로 한국노년단체총연합회가 만들어졌다.

노후희망유니온·전국시니어노조·노년유니온·대한노인체육회 등 노인이 중심이 되는 세대별 노조·단체들이 결성한 것이다. 전대석 노후희망유니온 사무총장은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높지만 노인문제와 관련해서는 투쟁 주체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며 “노인단체들도 열악한 상황이었는데 노인들이 자주적으로 일어나 연대를 하는 게 중요하고, 요구사항을 모아 정치권에 제시하자는 취지에서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노인 하면 정치적으로 보수이고 꼰대라는 부정적 인식이 많은데 다른 생각을 수용하는 노인, 노년 세대만이 아니라 후세대 청년을 생각하는 노인으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노인들의 목소리 내기를 설명했다. 또 다른 노인단체인 노년알바노조의 허영구 준비위원장은 “노인들이 ‘무슨 이 나이에 노조를 하냐’ ‘노조는 빨갱이 아니냐’ 같은 반응을 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노조가 다루는 고용 안정과 임금, 산재뿐 아니라 노동문제와 복지문제, 생활노조로서의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하기 위해 출발했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노인빈곤 해소와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면서 민주노총 안팎에선 퇴직자 노조를 만들자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당장은 서울교통공사와 현대자동차처럼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사업장 중심으로 설립한 뒤 향후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그동안 노인들은 일자리든 복지든 정부와 사회로부터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노인들이 주체가 돼 요구하고 바꿔나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퇴직자 노조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좋은 삶은 물론 좋은 죽음과 사회 기여까지 퇴직자 노조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퇴직자 노조가 만들어질 경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남은 과제다.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통상의 노조와 달리 퇴직자 노조는 그러한 회사가 없기 때문에 누구를 대상으로 요구를 할지 등의 문제가 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지난 6월 올해와 내년 퇴직 예정인 조합원 2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퇴직자 노조의 필요성은 가늠할 수 있다. 응답자의 61.9%는 공사가 50세 이상에게는 재취업 지원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고령자고용촉진법 내용을 모른다고 했다. 또 응답자의 65.6%가 퇴직자 교육 중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교육으로 ‘재취업을 위한 직종, 자격증 및 채용시장’을 꼽았다. 공사와 노조가 퇴직자를 위해 지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도 ‘재취업 알선 및 교육, 정보 제공’이 가장 많은 답변으로 나왔다.

이혜리·강한들·고희진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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