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윤석열 '약자' 행보 수상하다

장슬기 기자 2021. 12. 1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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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서 성소수자 부정, 시혜적 관점 드러내며 장애인 차별…반노동 발언 등 망언들도
사회적 약자 중 범죄피해자만 강조…노태우가 꺼냈던 '범죄와의 전쟁' 주장의 위험성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산하 '약자와의 동행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선후보가 약자를 챙기겠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윤 후보가 약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윤 후보가 생각하는 '약자'의 개념이 다수가 합의한 사회적 약자의 개념과 다른 모습들이 발견되고 있다. 약자에 대한 정의는 향후 정국운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이기도 하다.

윤석열 선대위의 첫 행보는 '범죄 퇴치'였다. 선대위 출범 다음날인 지난 7일 윤 후보는 범죄 피해 트라우마를 지원하는 스마일센터를 방문했다. 5대 강력범죄 피해자 지원을 약속했고 오후에는 서울경찰청 112 종합상황실을 방문해 '치안'을 강조했다. 이날 밤 윤 후보는 일일 자율방범대로 참여했고, 인천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 관련 “경찰이 전부 무술 고단자라고 할 수 없고 적절한 진압장비를 상황판단에 따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테이저건 등 무기사용을 언급했다.

▲ 지난 7일 홍익자율방범대 활동에 참여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국민의힘 선대위

다수 매체는 첫 행보를 '약자 향한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약자는 범죄 피해자를 뜻한다. 물론 범죄 피해자도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지만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생각하는 '약자'가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을 뜻하는 '사회적 약자'의 범위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사회적 약자'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이나 수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신체·사회·문화적 특징이나 정체성을 이유로 주류나 다수 구성원에게 차별받고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며 누구나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각자가 느끼는 약자로서 정체성이 다를 수 있다. 만약 '재벌가의 성소수자'가 재벌 정체성을 주로 느끼고 산다면 약자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도 어느 순간 특정 상황에 놓이면 사회적 약자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지녀야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성소수자·장애인 등 부정하거나 몰이해

윤 후보의 '치안' 행보 다음날인 지난 8일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JTBC '썰전 라이브'에 출연해 선대위 약자와의동행위와 차별금지법을 함께 언급하며 진행자가 '성소수자도 약자 아니냐'고 묻자 “성소수자가 약자인가요”라고 되물었다. 허 수석대변인은 선대위의 약자 개념에 “성소수자를 뺄지 안 뺄지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하는 인사들을 선대위에 최근 영입하는 모습을 볼 때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한 '사회적 약자' 개념을 부정한다고 평가할 만하다. 게다가 윤 후보도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모습은 수차례 발견됐다. 그동안 '주 120시간 발언', '손발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최저임금제 부정' 등 반노동 발언 역시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없는 노동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다.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을 먹을 수 있게 해야한다는 발언 역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13일 “복지도 개인별 맞춤형으로 나가야 한다”며 선대위 장애인복지지원본부 행사에 참석한 윤 후보는 “이종성 의원과 함께하는 장애우들”이라고 말했다. '장애우(友)'는 장애인들이 거부한 표현이다. 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뿌리깊은 장애인 차별의 역사가 있는데 갑자기 친구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지 않나. 또한 장애우는 장애인이 스스로를 지칭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타자화한 표현이다. 앞서 8일 윤 후보는 비장애인을 '정상인'이라고 불러 논란이 됐다. '정상인'들이 높은 위치에서 비정상인인 '장애우'들을 챙겨주겠다는 생각 자체가 차별이다.

▲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과 동행하는 안내견 '조이'를 만지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노컷뉴스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의 안내견을 함부로 만진 것도 마찬가지다. 안내견은 자신의 반려견이 아니다. 사전 허락 없이 안내견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일 등을 하지 말라는 경고는 수차례 언론에 나왔고, 심지어 김 의원이 지난해 국회 등원할 때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내용이다.

약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윤 후보는 범죄와의 전쟁을 다시 강조했다. 17일 “내가 대통령이 되면 흉악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며 “26년 간 검사로서 형사법집행을 해온 전문가로서 내가 국민의 안전을 확실히 지키겠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경찰력만으로는 충분히 범죄 예방이 되지 않는 만큼,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제대로 된 범죄 예방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했다.

검찰공화국 우려받지만 범죄와의 전쟁 강조

범죄와의 전쟁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약자가 있는데 범죄와의 전쟁만 강조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범죄 피해자,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가난한 사람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윤 후보의 발언이 있었지만 이중 윤 후보가 가장 강조한 대상은 범죄 피해자뿐이다. 약자의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하고 폭 넓은 사회적 약자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출신으로 이미 캠프를 꾸렸을 때부터 '검찰공화국'이 우려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그 우려는 더욱 커진다.

'범죄와의 전쟁'의 원조는 노태우 정권이다. 노태우씨는 대통령에 취임해 전두환 정권을 주도했던 군 출신을 숙청하고 대신 검사들을 요직에 채워넣었다. 검사 출신 정해창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서동권 안기부장, 정구영 민정수석 등이 대표적인 인사다. '보통사람'을 표방한 노씨가 군부 색채를 빼면서도 강력한 공권력으로 사회통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렇다고 노태우 정권이 노동자나 장애인, 서민 등의 평범한 이들을 위한 정책을 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여전히 공안정국이 이어졌고,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죽어나갔다.

▲ 1990년 10월13일 당시 대통령 노태우씨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진=KBS 갈무리

국면전환, 공안정국 강화, 검찰공화국 시작

1990년 10월13일, 노태우 정권이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은 오히려 다양한 약자들의 사회적 요구를 잠재우기 위한 쪽에 가까웠다. 같은달 4일 윤석양 이병이 육군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민간인사찰을 폭로한 직후 위기에 처한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검찰을 범죄 수사에 투입했고 1년여만에 경찰 1만6000여명을 충원해 방범부서를 확충했다. 자율방범대를 조직하고 예비군의 방범활동 동참, 금융기관의 자율방범기능 등 치안 기능을 강화했다. 윤 후보가 선대위 출범 직후에 방문한 곳들이 연상된다.

이는 도덕성과 정당성이 부족한 정권이 써오던 방식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사회정화사업, 범죄자·부랑인·성매매종사자 등의 대대적인 단속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이었고, '삼청교육대'로 상징되는 전두환 정권으로도 이어졌다.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은 조직폭력배와 유흥업소 단속으로 사회적 지지를 받았지만 검거된 조직원 절반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나 실제론 알맹이가 없다는 평가도 나왔다.

'범죄와의 전쟁'의 문제는 두 가지다. 범죄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범죄 피해자를 유일한 약자로 규정한 정치적 구호는 다른 사회적 약자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효과가 있다. 또한 범죄와의 전쟁이 노태우 정권의 검찰 인사 기용과 연결해 '검찰공화국'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군부독재정권 시절 높았던 경찰의 위상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추락한 탓도 있지만 수사와 기소를 한 조직에 있어 공안정국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듬해 검찰은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대학생 집회에는 '어둠의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공작했다. '총'과 '칼'로 상징되는 '군부'와 '검찰'의 권력 이양 과정에 범죄와의 전쟁이 위치해있다.

피해자의 말할 권리 위축시키며 치안 강화

윤 후보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고통받는 2차 가해 요소 중 하나인 무고죄를 오히려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윤 후보가 보는 공권력과 시민사회의 관계는 선명해진다. 범죄피해구제에서도 피해자의 말할 권리보다 수사기관의 역할에 무게가 실린다.

공권력이 사회의 주인이 되면 장애인·노동자·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들 간의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정치'의 과정이 생략된다. 그 자리는 검찰 등 공권력이 채우고 불법과 합법의 이분법이 공론장을 침해한다. 윤 후보의 '범죄와의 전쟁'을 발언을 전하는 기사 댓글에는 “정치검찰 출신의 검찰공화국”, “공포통치”에 대한 걱정이 등장했다. 연이은 '치안' 행보와 '범죄와의 전쟁' 선언이 위험해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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