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막이 뚝, 초등학교 교실서 공장 수준 소음..학생들 문제제기에 서울대가 답하다 [현장에서]

김기범 기자 입력 2021. 12. 19. 15:49 수정 2021. 12. 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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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소음에 시야 가리고 멀미까지
가림막 환경오염 문제도 초등학생들이 제기

서울 송중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3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진과 교실 내 투명 가림막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송중초 배성호 교사 제공.

“수업 중 가림막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곤 해요. 테이프로 붙여도 자꾸 떨어져서요.” “친구가 발표하는 소리가 잘 안 들려요. 칠판을 보려면 가림막 너머로 봐야 해서 불편해요.” “코로나19를 막으려면 필요하겠지만, 가림막에 베이거나 긁힌 친구들도 많아요.”

서울 송중초등학교 4학년 1반 학생들이 지난 15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비대면 좌담회에서 밝힌 교실 ‘투명 가림막’에 대한 경험담이다. 좌담회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진이 지난달 실시한 가림막 관련 소음·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가림막으로 인해 겪고 있는 불편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교사·전문가, 아름다운재단 등도 참여했다.

■초등학생 학급회의가 ‘시민과학’으로 이어지다

사회현상이나 정책에 관련된 과학적 연구 대부분 정부 용역이거나 과학자들 주도로 시작되는 것과 달리 이번 가림막 연구·조사는 송중초 학생들이 “정말 가림막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 방역상 가림막의 필요성을 토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불편이 터져나왔다.

‘유자학교(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학교)’ 활동을 하고 있는 배성호 교사가 학생들이 겪고 있는 불편을 듣고,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과학적 연구·조사를 요청하면서 소음 및 인식 조사가 실현됐다. 시민 요구를 과학자가 받아안고, 시민과 함께 연구·조사해 그 성과를 공유하는 방식의 ‘시민과학’이 송중초와 서울대 사이에서 이뤄진 것이다. 유자학교는 초등 교사들과 아름다운재단, 사단법인 일과건강,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등이 안전하고 건강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캠페인이다.

전국 대부분 학교 교실에는 지난해부터 방역대책으로 플라스틱 재질의 투명 가림막이 설치됐다. 그러나 교육부나 각 시도 교육청에서 가림막에 대한 뚜렷한 지침을 내리지 않다보니 학교마다 재량껏 사용 여부를 정하고 있다. 급식실이 없는 초등학교의 경우 교실 내에서 급식을 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고 식사할 때 방역을 위해 가림막이 필수인 경우도 있다. 반면 급식실이 있는 초·중·고교의 경우 가림막을 아예 제거한 경우도 있지만 실태파악은 이뤄져있지 않다. 탈부착이 간편하도록 테이프나 밸크로(일명 찍찍이)로 부착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쉽게 책상에서 이탈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서울 송중초등학교 학생들이 적은 가림막에 대한 의견과 궁금한 점. |송중초 배성호 교사 제공.


서울대 보건대학원 원장인 이기영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이날 좌담회에서는 지난달 실시한 소음 측정 결과와 학생들의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림막이 바닥에 떨어질 때 발생하는 소음을 측정한 결과, 철로변이나 지하철보다 심한 데다 소음이 심한 공장 내부와 비슷한 수준의 소음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은 책상에서 가림막을 3번 반복해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험 결과 평균 94.1㏈(데시벨) 소음이 발생했다. 이는 철로변 및 지하철 소음 수준인 80㏈은 물론 정도가 심한 공장 내 소음인 90㏈보다 심각한 수치였다. 80㏈이 넘는 소음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청력 장애가 시작된다. 노출되는 소음의 정도가 90㏈이 넘을 경우에는 직업성 난청이 시작되며 소변량이 증가하는 등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학교보건법은 교실 내 소음을 55㏈ 이하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소음의 인체 악영향. |환경부 제공.

■가림막으로 인해 다친 경험, 초등학생 27%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지난달 11~26일 송중초등학교 1~6학년 학생 188명을 대상으로 가림막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시야가 가리는 것과 바닥에 떨어질 때의 소음 등으로 인해 응답 학생 중 절반 가량이 불편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약 48%가 가림막으로 인해 ‘불편하다’고 답했고, ‘보통이다’는 34%, ‘편하다’는 18%로 집계됐다.

가림막이 불편한 이유(복수응답)로는 ‘앞이 잘 안 보여서’가 107명(6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가림막이 바닥에 떨어질 때 시끄러워서’ 89명(57%), ‘가림막 틈으로 이물질(지우개 가루 등)이 들어가서’ 83명(53%), ‘가림막으로 인해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려서’ 79명 (50%), ‘책상 안 공간이 좁아서’ 77명(49%) 등으로 나타났다.

가림막으로 다친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는 약 27%인 50명이 ‘있다’고 답했다. 배성호 교사는 “학생들이 가림막에 긁히거나 베이면서 상처를 입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송중초 학생들이 답한 교실에서 가림막이 불편한 이유. |서울대 보건대학원 제공.

다만 가림막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실에서 가림막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57%, 급식실에서는 92%로 집계됐다. 교실에서는 불편하고 불필요하다는 의견과 필요하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반면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는 급식실에서는 방역상 이유로 가림막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송중초등학교 학생들이 적은 가림막에 대한 의견과 궁금한 점. |송중초 배성호 교사 제공.

학생·교사 등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강민수 학생은 “가림막에 반사돼 칠판이 흐릿하게 보이고, 친구들이 스티커나 그림을 가림막에 붙여서 칠판이 안 보인다”며 “가림막에 손을 안 베이도록 고무로 만들면 안 되냐”는 의견을 내놨다.

좌담회에 참석한 한 천호초등학교 교사는 “뒷자리 학생들은 여러 개 가림막을 거쳐서 칠판을 보기 때문에 시야 가림 현상을 더 심하게 겪는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가림막이 흔들려서 멀미를 일으키는 학생들도 있다”면서 “떨어질 때 나는 소음뿐 아니라 자기 목소리가 울리거나 가림막이 흔들리면서 윙윙거리는 현상도 불편한 점”이라고 밝혔다.

서울 송중초등학교 학생들이 적은 가림막에 대한 의견과 궁금한 점. |송중초 배성호 교사 제공.

학생들이 연구·조사 결과를 본 뒤 만든 학급신문과 의견서에도 “가림막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부터 “그래도 가림막 덕분에 코로나 예방이 가능했다”, “가림막의 단점 중 하나는 환경에 안 좋은 플라스틱이라는 것”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개운초등학교 이진수 교사는 동일한 방식의 인식 조사를 자신의 학급에서 실시한 결과를 소개했다. 더 많은 학생들이 가림막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사에 따르면 ‘소음으로 인해 불편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약 95%, ‘칠판이 잘 안 보인다’와 ‘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응답은 각각 76%와 67%였다. ‘다친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81%로 대부분 학생이 가림막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 의견과는 별개로 학부모는 가림막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교사는 “모둠 활동 때는 가림막이 있으면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사용하지 않다가 학부모들의 우려로 다시 가림막을 사용하는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송중초 학생들이 가림막으로 인해 다친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한 비율. 서울대 보건대학원 제공.

■“학생들 의견 묻지 않은 것 창피한 일”

학교 내 방역대책의 직접 영향을 받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반성이 나왔다. 이번 연구·조사를 이끈 이기영 교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먼저 학생들에게 가림막에 대해 물어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조치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에게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설치한 가림막이 학생들에게 불편을 주고 수업권을 침해하고 있지만 교육당국에는 뚜렷한 가림막 지침이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2020년 5월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학교 방역 기본 대책’에는 ‘수업 시 가림판 치우고 마스크 착용’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별로 가림막이 설치된 곳과 아예 설치하지 않는 곳 등이 혼재돼 있다.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은 송중초 사례처럼 가림막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가림막에 대한 인식조사나 실태조사는 이번 조사 이전까지는 이뤄진 적이 없다.

학교 현장에서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급식실은 가림막이 필요하지만 교실에서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방역 효과가 제한적이지 않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버지니아공대, 존스홉킨스대 연구진 등을 인용해 교실 내 가림막이 공기 흐름을 방해해 오히려 감염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가림막이 비말 차단에는 효과가 있지만 공기 중 입자를 차단하는 효과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서울 송중초등학교 학생들이 적은 가림막에 대한 의견과 궁금한 점. |송중초 배성호 교사 제공.

가림막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도 초등학생들로부터 먼저 나왔다. 송중초만 해도 현재 750g가량 무게의 가림막 1000여개를 보유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종식 이후 이 가림막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좌담회에서는 재활용 쓰레기로 버릴지, 다른 감염병 사태를 대비해 학교에서 보관할지 등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학생은 좌담회에서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에도 가림막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며 “빨리 코로나19가 끝나서 가림막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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