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주인공 관계설정 또다시 논란 부른 설강화

조준혁 기자 2021. 12. 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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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디즈니플러스 진출한 JTBC 설강화
글로벌 OTT 노린 설강화, 역사왜곡 논란 못 피했다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 설강화, 1화부터 여론 싸늘
1화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원서
1987년 한국서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 그리고 싶었나

[미디어오늘 조준혁 기자]

※이 글에는 JTBC 토일 드라마 '설강화 : snowdrop' 1·2화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해석은 기자 개인 견해입니다.

디즈니 플러스와 계약하며 방영 전부터 글로벌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시장을 노크한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 snowdrop'(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제작 드라마하우스, JTBC 스튜디오). 설강화는 이 같은 호재에 앞서 악재가 먼저 드리우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 폄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미화 등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제작 단계에서 등장한 방영 중지 요청을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 명 동의를 넘겼다.

제작진이 두 차례에 걸쳐 해명을 내놨지만 방영 첫 화부터 여론은 다시 등을 돌렸다. 제작진은 지속적으로 원서를 등장시키며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과 남파 공작원 간의 연결고리는 역사 왜곡 논란에 불을 지피기만 했다.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 snowdrop' 관련 티저 이미지. 사진=JTBC 홈페이지

역사왜곡 논란 속 첫발 뗀 설강화, 결국 논란 재점화

설강화 제작진은 지난 3월 공식 입장을 내며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라며 “남녀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화 초반부부터 극 중 은영로(배우 지수)는 운동권에 호의적 입장을 보인다. 호수여대 기숙사 식당에서 룸메이트인 여정민(배우 김미수)이 '공포의 외인구단' 만화책 속에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를 겹쳐 읽다가 놓치게 된다. 식당에는 순간 정적이 흐르지만 은영로는 빠르게 두 책을 다시 겹쳐 읽으며 태연하게 상황을 넘긴다. 여정민은 뒤에서도 실제 집회에 참여하는 장면이 나온다. 역사학도인 여정민은 운동권을 대표하는 학생으로 그려진다.

은영로는 또 위기에 처할 뻔한 임수호(배우 정해인)를 구해주며 “(친)오빠가 데모하다 잡혀갔었다”고 말한다. 1화 말미에 나오는 장면이다. 해당 장면은 은영로가 남파 공작원 임수호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하는 연출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임수호와 안기부 간 추격전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솔아 솔아 푸른솔아'가 흘러나온다. 남파 공작원이 도망치는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나온 것이다. 굳이 제작진을 변호한다면 임수호가 도망치는 곳 인근이 시위를 하는 곳이다. 집회 장소에서 해당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기는 하다.

남파 공작원이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극우 진영에서 오랫동안 제기됐던 논리다. 설강화 제작 당시부터 이 같은 주장이 드라마 제작 배경에 관여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안기부 미화 우려 역시 설강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있었다.

설강화 1화가 공개되자 여론은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20일 오전 9시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관련 비판 글에는 24만여 명이 동의하고 있다. 해당 글은 첫 방송이 공개되던 지난 18일 오후 올라왔다. 이는 제작 단계에서 올라왔던 국민청원과는 다른 글이다.

JTBC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시청자 게시판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모든 글 제목이 '작성자와 제작진만 열람 가능한 게시물입니다'로 설정돼 있다. 시청자들의 방영 과정에서 실시간 시청 소감을 말할 수 있는 '네이버 실시간 톡'도 닫혔다. 제작진 역시 비판 기류를 감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 snowdrop' 시청자 게시판 모습. 사진=JTBC 홈페이지 갈무리

글로벌 시장 노린 JTBC 도전, 논란 감당 가능할까

논란 속에서도 설강화는 화려한 영상미를 통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기부가 나오는 장면과 호수여대 학생들이 나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전자에선 무채색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후자에선 다양한 색을 활용, 보다 발랄함을 강조한다.

특히 기숙사 장면은 마치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던 호그와트와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 한국 시장을 노리며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1980년대를 재현하기보다 글로벌 시장에 맞춰 전략적 연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올블랙' 의상으로 등장하는 기숙사 사감 피승희(배우 윤세아)를 보고 있으면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던 세베루스 스네이프(배우 故 앨런 릭먼) 교수가 떠오른다. 얼음장 같은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영상미로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2화 초반부에서부터 앞서 언급된 논란적 요소들이 재차 등장한다. 자신의 기숙사 방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임수호를 보고 은영로는 “데모하다가 쫓긴 모양”이라며 룸메이트들에게 “우리가 숨겨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쓰러진 임수호에게 고혜령(배우 정신혜)이 “간첩이라잖아”라고 말하자 여정민은 “간첩은 '짭새'(경찰을 부르는 은어)들이 맨날 하는 소리다. 걸핏하면 우리를 빨갱이로 몰지 않느냐”고 한다. 이에 은영로는 “지난번에 우리 방이랑 '방팅'했던 사람”이라며 “틀림 없이 백골단에 쫓기는 것이다. 방팅했던 날에도 그랬다”고 한다.

2화 중반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은영로가 임수호를 보며 친오빠를 떠올리는 모습이 나온다.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연출로 보인다. 은영로는 “우리 오빠도 누가 도와줬으면 안 잡혔을 것”이라고 한다. 오해에서 비롯된 1987년 청춘 남녀 사랑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남과 북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청춘 남녀 운명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드라마 초반부부터 이를 암시하듯 로미오와 줄리엣 원서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간첩을 운동권으로 오해한 것'은 설강화 제작진에게 '민주화 운동 폄훼'로 인식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설강화에 비판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간첩과 민주화 운동 간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직접 시청하면 달라질 것이라던 설강화 제작진 해명은 화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분노만 야기하고 있는 셈.

현재 상황은 지난 3월 역사 왜곡 논란으로 2화 만에 종영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를 방불케 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드라마 제작 지원에 참여한 기업 불매 운동까지 일고 있다. 몇몇 협찬업체는 벌써 제품 노출 최소화 조처에 들어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구마사는 80% 사전 제작이었다. 100% 사전 제작으로 이뤄진 설강화 역시 회를 거듭할수록 같은 여론에 직면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민주·반민주 세력을 선과 악으로 바라보는 논리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다. 드라마 시장 역시 최근 우리 사회에 등장한 '가치 소비' 풍토를 피해갈 수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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