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중가요, 그 시절 한국처럼 세계 들끓도록

정혁준 2021. 12. 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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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민주주의 노래' 만든 서울민예총]
국외에 한국 민중가요 알리려
임을 위한 행진곡·바위처럼 등 10곡
영어 자막과 함께 유튜브에 올려
손병휘·문진오 등 민중 가수 참여
‘케이 민주주의 노래’ 영상 제작을 위해 참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맨 왼쪽이 손병휘 서울민예총 이사장이다. 이흥렬 사진작가 제공

“홍콩에서, 미얀마에서 우리 저항가요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느낀 바가 큽니다. 한국 민주주의를 세계 사람들과 나누고자 민중가요 노랫말을 영어로 번역해 영상으로 만든 이유입니다.”

손병휘 서울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 이사장은 ‘케이(K) 민주주의 노래’ 영상 기획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0일 공개한 영상은 유튜브 서울민예총·손병휘티브이(TV) 채널에서 볼 수 있다. 1993년 대학생 노래패 ‘조국과 청춘’으로 활동을 시작한 손 이사장은 솔로 활동을 포함해 지금까지 정규 앨범 8장을 발표한 대표적인 민중가수다.

그는 먼저 한국 민주주의의 우수함을 설파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사회 시스템이 선방하고 있는 것은 산업화 못지않게 민주화를 이룩하며 쌓아온 우리 사회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한다고 들었습니다.”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케이팝과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케이콘텐츠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 지금, ‘케이 민주주의 노래’를 내세운 이유다.

서울민예총이 ‘케이 민주주의 노래’ 영상을 찍고 있다. 서울민예총 제공

영상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 ‘타는 목마름으로’ 등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10곡이다. 손병휘·문진오·류금신·손현숙·연영석·송순규·아카시아가 불렀으며, 가사를 번역한 영어 자막도 나온다. 노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랫말에 맞게 춤·그림·사진·시가 더해져 울림을 더한다. 배우 김경락·장용철이 김남주·신동엽의 시를 낭송하고, 춤꾼 이삼헌·양혜경이 춤사위를 펼친다.

영상 첫 장면은 미얀마 학생들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미얀마 시민을 잔인하게 짓밟는 사진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사진으로 이어진다. 서울민예총은 지난 2월 수십명의 가수와 배우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응원하는 뜻을 담아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영상을 미얀마에 보낸 바 있다. 이번 영상에는 우리나라에서 유학하면서 고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미얀마 유학생들이 참여했다.

연대가 필요한 현장에서 자주 불렸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도 민주화시위 현장의 추억을 반추하는 데 요긴한 기제로 작동한다. 일본의 ‘일어서라 합창단’이 우리말로 이 노래 첫 소절을 부른다. 합창단의 야마다 히로키 사무처장은 “한국 민주주의는 언제나 우리의 희망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한국 분들과 함께 노래하겠다”고 얘기한다. 손 이사장은 “‘일어서라 합창단’은 한국과 일본의 저항가요를 중심으로 연주하는 합창단으로, 저와 오래 전부터 교류한 인연으로 부탁했다”고 말했다.

‘케이 민주주의 노래’ 영상에서 일본의 ‘일어서라 합창단’이 코로나 극복 의지를 담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한국말로 부르고 있다. ‘케이 민주주의 노래’ 영상 갈무리

‘타는 목마름으로’에선 배우 김경락이 김남주의 시 ‘편지’를 낭독한다. “그 노래 자체가 1970년대 유신 시절에 나왔던 시를 가사로 삼았던, 비장미가 살아 있는 노래입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대처로 떠난 젊은이들이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뒤로하고 고난의 길을 걸어갔는데, 특히 마음에 걸린 분이 어머니였겠죠. 김남주 시인도 감옥에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자주 썼다고 합니다. 시인과 시의 정서, 고백의 대상(어머니)이 잘 어울리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광야에서’에는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 낭독이 나온다. “위대한 시인입니다. 분단의 모순을 떨쳐버리고, 좁은 시야를 깨고 거칠지만 광활한 광야로 나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춤도 등장한다. ‘간절히’가 나올 때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번 승강장에서 양혜경이 진혼무를 춘다. 2016년 5월 20대 비정규직 청년이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 세상을 떠난 곳이다. ‘청계천 8가’에선 이삼헌이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춤을 춘다. “‘간절히’를 만들고 부른 연영석은 노동 현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내 일하는 만큼 받는 세상’ 등의 가사에 그 절절함이 잘 묻어 있죠.”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자주 불렸던 ‘나란히 가지 않아도 2’는 손 이사장이 직접 불렀다. “제가 처음에는 촛불집회에 바치는 송가로 구상했는데 반전 평화의 메시지까지 담아서 만들게 됐습니다. 이 노래는 일본인들이 번역해서 일본 곳곳에서 부르고 있어요.”

이청산 민예총 이사장, 신원철 서울시의원, 정길화 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 이원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등이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신원철 의원은 “홍콩 민주화시위 때 티브이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노래가 가진 힘은 시공간을 뛰어넘고 동질감·연대감을 키우는 문화적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이사장은 “남미의 민주주의 노래인 ‘누에바 칸시온’은 수억명이 쓰는 스페인어 노래였기에 전세계에서 널리 불렸다”며 “‘케이 민주주의 노래’도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전세계 많은 이들이 불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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