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을 보장하라.. 대통령 선거전의 세 가지 흐름 [소셜 코리아]

장지연 입력 2021. 12. 2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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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기본소득? 소득기반 보편적 사회보험이 답이다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장지연]

후세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혼돈과 격변의 시대라고 일컬을 것이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산업 영역은 이미 요동을 치고 있음이 틀림없다. 피터 디아만디스(Peter H. Diamandis)는 인공지능(AI)의 의미를 다루는 콘퍼런스에서 기조 발제를 통해 "다음 10년 안에 우리는 지구 상의 모든 산업을 재창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빨라졌을 뿐 아니라 피해 갈 여지가 없는 거대한 물결임을 확인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일자리가 감소할지는 불확실하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겠지만, 다른 한편에서 생산성 제고와 신규 시장 창출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일자리는 지금보다 불안정해지고 일자리의 양극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에는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격변의 시대, 확실한 한 가지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현상은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나 플랫폼 노동자의 증가 현상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기업은 가능한 한 노동자를 적게 고용하려고 한다. 노동 과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고도 결과물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면 기업은 그 과업을 회사가 고용한 근로자에게 부여하지 않고 외주화 한다. 내부 노동시장은 부품을 시장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기업 내에서 노동자를 위계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지만, 이제 그 필요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용어가 대두되기 이전, 정보화와 전자상거래의 확산만으로도 레미콘 기사와 화물운송, 방문판매, 학습지 교사 같은 일자리가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약어로 특고)라는 이름으로 외부화 되었다. 

특고는 개인사업자의 자격으로 도급계약을 하기 때문에 임금노동자에 비해서 노동과정의 자율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특정 회사와 집중적으로 거래하는 특징이 있다. 하나의 회사가 지급하는 금액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 회사가 일감을 주지 않으면 실업자가 된다는 의미에서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회사와의 관계에서 결코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용보장은 물론이고 최저임금, 근로시간, 작업환경 안전과 같은 근로조건에서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디지털 기술이 더욱 발전하다 보니,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자의 증가가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이다. 플랫폼 노동은 온라인 웹이나 앱을 통해 일거리를 구하는 노동이다. 웹이나 앱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를 한데 모아 거래가 이뤄지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 일자리의 불안정성은 어느 형태보다 높지만 기존 사회보장 제도의 보호 밖에 놓여있다.
ⓒ 셔터스톡
 
플랫폼에 접속하는 행위 자체는 매우 쉽다. 그래서 부업으로 일하는 사람, 초단기로 일하는 사람,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N잡러가 많아진다. 일을 얼마만큼 할지 내가 선택할 수 있고 특정 회사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사례도 드물다. 다만,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시장이기 때문에 보수의 단가가 낮게 형성된다. 일하는 시간과 일의 양을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자기 착취의 기제가 작동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플랫폼 노동은 특고보다 불안정성이 더 높은 일자리다.

계약직이나 일용노동자에 더하여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자까지 새로운 유형의 노동이 확대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자리의 불안정성과 사회보장제도의 보호 밖에 놓이기 쉽다는 점이다. 디지털 전환은 이런 유형의 노동을 더욱 늘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전환을 멈추거나 지체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제도를 개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과 부의 소득세가 대안?

일자리 불안정은 곧 소득 불안정이고, 나아가 소득격차의 확대를 의미한다. 과도한 소득격차는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국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소득보장제도를 발전시켜왔다. 국가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소득보장제도 개혁에 관해 백가쟁명이 이뤄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세 가지 흐름이 눈에 띈다.

첫째, 기존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비판을 기초로 일부 논자들은 '부(負)의 소득세'라는 오래된 개념을 복원시켰다. 

둘째,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불안정성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 일자리 소멸까지 우려하게 되면 '보편적 기본소득'이 대안이 된다. 

셋째,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안으로 '전국민 고용보험'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라는 계기를 통해 대두되었다.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대로 모두 추진해보자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위의 세 가지 흐름은 각각 공공부조, 데모그란트(demogrant), 사회보험이라는 소득보장 원리를 대표하는데, 각각의 원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최대치를 표방한다. 복지국가는 이 세 가지 소득보장 원리를 각국의 처지에 맞게 혼합하여 구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제도를 각각 최대치로 가져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다.

'부의 소득세제'는 소득이 전혀 없는 경우는 일정 수준의 최저소득을 보장하고, 기준소득 이하이면 일정 비율로 급여를 지급한다. 기존 공공부조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빈곤 인구를 모두 포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보충급여 방식이라서 근로의욕을 낮추고 탈수급률이 낮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현행 제도 역시 근로장려금제도(EITC)를 보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근로 인센티브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근로장려금제도는 미국에서 1960년대에 '부의 소득세'를 여러 경로로 실험한 끝에 선택한 제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각지대 문제는 주로 부양의무자제도와 자산을 소득으로 환산하여 적용하는 데서 발생한다. 부양의무자제도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으니 논란거리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영업자의 불안정한 소득 문제가 더 불거졌고 그 대안으로 보편적 사회보험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사진은 지난 12월 16일 오후 경남도청 맞은편 도로에서 열린 '코로나19 피해 실질 보상 촉구, 정부·여당 규탄대회'
 
소득지원제도에서 자산을 고려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요즘처럼 자산 격차가 사회문제가 되는 시기에는 더욱 어렵다. '소득은 있으나 자산은 없는' 계층으로부터 '소득은 없으나 자산은 있는' 계층으로 소득 이전이 발생한다면 제도의 사회적 수용성이 낮아질 수 있다. 

필자가 계산해 본 바에 따르면, 가구 단위 '부의 소득세'와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 근로장려금제도'는 단위 사회지출액 당 재분배 효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언급해 두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수혜대상을 전체 인구의 절반까지 확대하는 부의 소득세가 검토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지 의문스러울 뿐 아니라, 소득을 은폐하거나 축소신고하는 폐단 역시 극대화될 것이 우려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예산제약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언제나 해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현실에서 정책은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문제다. '모든 이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주는 것보다 급한 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의료, 교육, 돌봄을 받게 해주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보편적인 서비스가 우선하는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사각지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현금급여제도라는 것을 잘 알지만,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국가권력이 보편적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재원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험 개혁의 방향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고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경계가 희미해져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자리 소멸의 시대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상황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과제는 사회보험제도의 개혁이다. 우리는 이미 상당히 발전된 사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운영 원리가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체계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자영업자는 보호범위가 좁고 스스로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크다.

임금노동자 자격으로 사회보험 적용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고용주가 자신을 피용인이라고 선언해주는 '신고' 절차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순수자영업자뿐 아니라 특고나 플랫폼 노동자 같은 중간지대 노동자도 보호 범위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용자의 의무를 회피하는 고용주를 만나거나 여력이 없는 영세사업주를 만난 근로자들도 결과적으로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초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는 경우도 사회보험 적용대상에서 누락되기 쉽다.
 
 우리는 이미 상당히 발전된 사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운영 원리가 임금노동자와 자영자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체계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 문제다.
ⓒ 셔터스톡
 
사회보험 개혁의 핵심은 임금근로와 자영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며, 위에 말한 '신고' 절차를 폐지하는 것이다. 사회보험원리를 적용하여 보호하고자 하는 소득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다. 따라서 보험료는 모든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 일정 비율로 부과한다. 

보험료의 징수는 현재 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에서 국세청으로 일원화하면 효율적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발생한 소득은 그것을 준 사람에게는 비용이기 때문에 국세청에 신고할 유인이 된다. 이런 관계를 이용하면 국세청의 소득파악 기능이 강화된다. 소득파악 주기를 단축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런 행정 인프라 투자는 필요하지만 제도운영의 원리는 복잡하지 않다. 어떤 이가 고용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한 경우를 상상해 보자. 국세청 기록으로 근로이력과 실업 이전의 소득수준이 확인되므로 수급자격 여부와 급여액이 결정된다. 취업알선이나 직업훈련 같은 고용서비스와 함께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덴마크나 프랑스의 개혁사례를 참고할만하다. 

근로연령대에 사회보험을 통한 소득보장제도가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는 ▲실업 ▲출산·육아 ▲산업재해 ▲질병·부상으로 인한 소득 단절 위험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을 특고, 프리랜서 자영업자를 모두 포함하는 전체 취업자로 확대하고, 건강보험에는 상병으로 인한 소득단절에 대응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요컨대, 모든 취업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회보험제도란 종사상 지위와는 무관하게 모든 취업자가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발생할 때 국세청에 세금 내듯이 보험료를 납부하고, 이것이 소득활동의 증빙자료가 되어 소득이 단절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고용주 신고 시스템의 한계

어떤 이는 특고나 프리랜서에까지 확대적용할 제도를 만들기 전에 이미 있는 제도라도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종사자에게 잘 적용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용주가 근로계약이 성립했다는 사실을 사회보험공단에 신고하는 것으로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시작되는 현행 시스템은 한계에 도달했다. 

새롭게 제안하는 취업자 사회보험은 초단기로 일하면서 여러 사업장을 돌아다니는 노동자나 사회보험료 부담의 책임을 회피하는 나쁜 고용주를 만난 근로자에게도 현실적인 보호막이 된다.

언젠가 일자리 소멸이 가시화되는 시점에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이라면 '보편적 사회보험'을 우선적으로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근로장려세제의 미세조정 과정은 필요하겠으나 '부의 소득세'라는 급진적인 실험을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장지연은 미국 메디슨 소재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소득불평등, 복지국가, 일·생활 균형, 여성노동시장이다.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의 확산, 사회보험제도의 개선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함께 펴낸 저서와 연구보고서로 <글로벌화와 아시아 여성>(2007), <노동시장구조와 사회적보호체계의 정합성>(2011), <다중격차 1, 2>(2016, 2017), <디지털 시대의 고용안전망>(2020)이 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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