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K방역과 J방역의 차이

김현기 입력 2021. 12. 23. 00:38 수정 2021. 12. 23.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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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뜨거운 K방역 과장·자만 이제 그만
왜 국민을 화나고 부끄럽게 하는가
일본이 '신중' 강조하는 이유 알아야


570년 된 일본 교토의 절 료안지(龍安寺). 가로 25m, 세로 10m 정원에는 흰 자갈과 15개의 돌만 있다. 그런데 정원 어느 방향에서 봐도 돌은 14개다. 절묘하게 1개가 숨는다. 관람 각도를 옮겨봐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는 인생의 이치를 상징한다. 영국 왕실이 1975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일에 맞춰 딱 한 곳 다녀갈 명소로 이 작은 정원을 택했던 이유가 있었다. 속세의 자만, 과장의 덧없음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이자 깨달음이다.

일본 교토의 료안지 '돌 정원'


그렇다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지난 코로나 대응에서 뭘 보고 뭘 깨달아야 할까.

장면 1. 청와대는 지난 5월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을 통해 얀센 백신 100만회 분을 얻어냈다며 '백신 외교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효과와 편의성 측면에서 얀센이 장점이 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자문위원회는 얼마 전 만장일치로 얀센을 피하라고 권고했다. 안전성과 효능, 둘 다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결과적으로 '재고 땡처리'였다. 감사하며 얀센 맞았던 예비군·민방위 대원들은 울화가 치밀 일이다.

대조적인 장면이 있다. 한 달 앞선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 이때도 백신 외교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 스가 총리는 "아직 서명하지 않았다"며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회담 후 담당 장관이 "이로써 일본 내 16세 이상을 모두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이 확보된 것 같다"고 했을 뿐이다. 그 결과는 나중에야 '화이자 5000만 회분'으로 드러났다. '얀센 100만 대 화이자 5000만'이란 숫자 차이가 우리 국민을 화나게 했다면, 대통령과 정부의 과장은 우리 국민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장면 2. 지난 5월 정부는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물 백신' 신세가 된 아스트라제네카(AZ)를 고령층에게 집중 투입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세계 최고수준의 접종 완료율을 기록했다"며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를 선언했다. 전 세계를 향한 승리선언이었다. "이 경험을 모든 나라와 적극 공유하겠다"고도 했다. 보이는 수치만 말하고, 정작 AZ를 맞은 이들의 항체량이 화이자의 5분의 1에 불과해 위기가 임박한 사실은 무시했다. 결과는 45일 만의 '거리두기 유턴'. 문 대통령은 비판을 의식한 듯 21일 국무회의에서 "시련이 성공을 만든다"고 했다. 대통령의 자만이 국민의 시련을 만들었는데, 그 대가와 수모를 모든 국민이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데 그런 한가한 소리가 나오나.

또다시 대조적 장면. 일본은 화이자·모더나·AZ를 자국민 대상으로 임상 시험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AZ는 전량 개도국으로 돌렸다. 과학을 우선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코로나 해외 유입과 백신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관리했다. 자랑도, 자만도, 과장도 없었다.

22일 발표된 K방역과 J방역의 하루 성적표를 보자. 신규확진자 7456명(한국) 대 249명(일본), 위중증 환자 1063명 대 28명, 사망자 78명 대 2명. 인구 차(일본이 한국보다 2.34배 많다)를 고려하면 거의 100배에 가깝다. 물론 이 격차만 갖고 한국은 틀렸고, 일본은 옳았다고 규정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 뒤바뀔 수 있다. 더구나 우리가 '코로나 마라톤'의 몇km 구간을 지금 달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보고 싶은 것만 갖고 그만 좀 과장·자만하자.

두 달 넘게 '코로나 청정'이 이어지는데 한마디 소감이라도 말할 줄 알았던 기시다 총리가 21일 국회에서 내놓은 답변은 이랬다. "코로나라는 미지의 위험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 나갈 것이다." 료안지의 가르침이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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