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민들 "중국어 말고 모국어 쓰자"..중 권위주의 압력에 '언어'로 저항

박하얀 기자 2021. 12. 2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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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만 타이페이 거리. 게티이미지


세 아이의 어머니인 라라 신(35)은 지난 겨울부터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만 모국어인 호키엔어로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우리 모국어를 말하는 것이 점점 더 독단적인 중국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백신”이라고 말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첸 슈팅(39)은 2014년 중국과의 무역 협정에 반대하는 시위 이후 집에서 호키엔어만 쓰기로 규칙을 정했다. 어렸을 때 말하지 않았던 언어를 성인이 돼 배우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는 그는 하루에 한 시간씩 6개월 넘게 공부한 끝에 지난해 중급 호키엔어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모국어 사용이 “우리 세대가 억압과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만에서 중국의 권위주의에 대항해 중국어 대신 모국어를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언어 독립’이 대만을 자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중국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호키엔어는 대만에서 쓰이는 현지 언어 중 하나다.

대만 고유 언어에 대한 대만인들의 관심은 뜨겁다. 호키엔어 등 토착어 능력 시험에 응시한 이들은 2012년 1만6000명을 밑돌았으나 지난해 4만5000명가량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호키엔어 교사인 탄 킴 초아는 “이번 여름에 교회, 세 곳의 커뮤니티칼리지, 간호 학교와 여러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했다. 1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호키엔어를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WSJ에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끼면 서둘러 배우게 된다”고 덧붙였다.

대중문화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만 인디 록밴드가 낸 호키엔어 노래 뮤직비디오는 9개월 만에 3400만 뷰를 돌파해 올해 대만에서 가장 높은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했다. 호키엔어 대사의 멜로 드라마는 지난해 대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해 700만달러(약 83억원)의 수익을 냈다.

현재 대만인구의 95%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1662년 처음 중국의 지배를 받을 당시만 해도 지배적인 언어는 호키엔어였다. 1949년 중국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주석이 대만으로 도피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당 정부는 대만에서 현지 언어로 된 노래를 금지했고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학교에서 중국어만 사용하도록 했다.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대만은 이후 수십년 동안 중국어를 주 언어로 써 왔다.

2016년부터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집권하면서 언어 독립에 시동을 걸었다. 대만 정부는 2018년 위축된 모국어를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국가 언어 개발법을 통과시켜 대학 수준 이하의 모든 학교가 교과 과정의 필수 과목으로 토착 언어를 가르치도록 명시했다. 게다가 최근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모국어를 사용 노력은 상당한 추진력을 얻게 됐다.

다만 중국어가 이미 지배적인 언어로 자리잡은 상황이어서 모국어 부활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 신한 국립 타이중 교육대학 언어학·문학 부교수가 7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집에서 더는 모국어를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언어학자들은 영어와 중국어 사용이 늘면서 전 세계 6000여개 언어의 절반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대만은 아일랜드, 마케도니아 등과 함께 이 같은 흐름에 역행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꼽힌다. 호 교수의 조사에서 80% 이상이 ‘부모 세대에게 모국어를 배우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밝힌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호 교수는 “중국이 군용기 수백대를 대만 근처에 정기적으로 동원하는 등 군사·외교적 압력을 강화하면서 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 뒀던 언어를 다시 검토하게 됐다”며 “종종 언어는 독단적인 문화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무기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호키엔어로 쓴 다섯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는 대만 작가 텐 순총은 “이 언어는 중국과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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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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