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박근혜 사면, 문 대통령 '홀로 결단'..이재명 부담 줄여주기 위해서였나

곽희양·탁지영·정대연 기자 2021. 12. 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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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스마트강군, 선택적 모병제’ 공약 발표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특별사면 결정을 오롯이 홀로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청와대와 사전에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청와대 비서진 역시 발표 직전까지 사면 결정을 몰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발표 직전까지 전직 대통령 박씨 사면을 홀로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앞둔 시기에 정치 중립 시비를 피하고, 사면 부담을 이 후보와 민주당에 넘기지 않기 위해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여당 의견이나 청와대 참모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이런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낮다는 반론도 있다.

이 후보와 당 지도부는 사전에 박씨 사면을 몰랐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아침에 오다가 (박씨 사면된다는) 기사 제목을 봤다”며 “지금 제가 상황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입장을) 말씀드리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조승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사면 발표 전 청와대와 당·선대위의 사전 상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선대위는 이날 오전 예정된 이 후보의 크리스마스 영상메시지 공개를 오후로 미뤘다.

송영길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씨 사면 과정을) 저도 잘 모른다”며 “(사면 논의를 위해) 청와대 관계자와도 만난 적 없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날 오후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외로운 결단을 했던 것 같고 (오늘) 9시경 이철희(정무수석)로부터 전화 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날 선대위 본부장단 회의를 정부의 사면발표 때문에 30분 늦췄다.

청와대 역시 박씨 사면이 문 대통령의 독자적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전적으로) 대통령이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사면을) 참모들간의 토론을 통해서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근래에 특별히 그것(사면) 관련해 대통령과 의논하거나 상의한 바는 없다”며 “구체적으로 언제쯤 결정하셨는지는 저도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문 대통령의)고뇌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등도 문 대통령의 사면 결정을 미리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청와대와 당의 설명대로라면 박씨 사면 결정은 문 대통령이 고심 끝에 홀로 내린 것으로 보인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1일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박씨 형집행정지 가능성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박씨 사면도 검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단독 결정을 놓고 이 후보와 민주당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씨 사면은 2017년 촛불집회로 탄생한 현 정부의 정체성을 거스르는 셈이어서 일부 지지층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대선을 70여일 앞둔 시점에서 문 대통령의 선거 개입 시비를 차단하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복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문 대통령이 이 후보를 배려하기 위해 사전에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면 여파가 이 후보와 당에 미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청와대와 당 인사들이 문 대통령의 독자적 결단을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청와대가 실제로는 여당과 의견을 나눴지만 공식적으로는 문 대통령의 단독 결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 친문 핵심 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사면 논의는 알았지만 최종 결정된 사안은 몰랐다”고 말했다.

곽희양·탁지영·정대연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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