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참회한다"더니 곧바로 공항 간 골프장 회장 아들..긴박했던 5시간

이문현 2021. 12. 2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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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장하드'를 들고 나타난 익명의 제보자‥"무비 폴더" 열었더니

'돈 많은 남성이 여성들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촬영했다. 피해자만 수십 명이다.'

지난 6일. 믿기지 않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잡았습니다. 그는 '노트북을 꼭 갖고 오라' 신신당부 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외장하드'를 내밀었습니다. 열어 보니 남성이 정리한 '무비 폴더'에 문제의 동영상들이 무더기로 들어있었습니다.

각각의 동영상 파일에는 촬영 날짜와, 여성의 이름, 나이가 적혀있었는데, 총 62개였습니다.

제보자는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자신의 방에 소형 불법 카메라를 설치해 여성들과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찍었다고 주장했습니다.

'n번방 사건'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이 남성은 과연 누굴까.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영상을 찍어 보관한 것일까.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날짜와 여성의 이름들, 그리고 하트와 장미

남성은 서울 서초구의 한 40평대 신축 아파트를 별장처럼 사용했습니다. 제보자에 따르면 한 달 월세만 6백만 원인데 2년치를 한 번에 낼 정도로 재력가라고 합니다. 불법 동영상도 주로 이곳에서 촬영했습니다.

남성은 영상뿐만 아니라, '다이어리 폴더'에 자신이 만난 여성들의 사진과 만날 날짜, 이름, 나이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놨습니다. 그런데 일부 여성의 이름 옆에 '하트'나 '장미'가 표시돼 있었습니다. '4월 4일, 김OO 03 ♡' 이런 식입니다.

제보자는 이름 뒤 숫자는 여성의 출생년도, 그리고 하트와 장미는 각각 성관계와 불법 촬영 여부를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장미 표시가 된 여성의 이름과 동영상 제목을 대조해 보니,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일정표를 모두 정리해보니, 미성년자도 수두룩했습니다. 03년생이 6명, 그리고 04년생이 1명이었습니다.

범인은 놀랍게도 유명 골프장 회장·기독교계 언론사 발행인의 아들

이 남성은 경기도의 한 유명 골프장의 등기이사 권 모 씨 입니다. 권 씨의 아버지는 골프장 회장이면서 한 기독교계 인터넷 언론사의 발행인이기도 합니다.

MBC 취재진은 지난 12월 8일, 영상을 촬영한 목적과 유출 여부를 묻기 위해 권 씨의 별장으로 사용된 서초구 아파트를 찾아갔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권 씨의 첫 발언은 "녹음하시고, 다 하셔도 됩니다" 였습니다. 너무나 당당한 권 씨의 반응에 오히려 저희가 당황했습니다.

인근 카페로 취재진을 안내한 권 씨는 "동영상을 찍은 적이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악의적 제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증거를 들이밀자 조금씩 말이 바뀌었습니다.

'놀다가 그랬을 수 있다'고 한발 물러난 권 씨는 "동영상 62개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히자, 그제서야 모든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권 씨/골프장 회장 아들] "나쁜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개인 추억 소장용으로 했다고 하면‥저도 (영상을) 절도당한 상황이거든요."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했고, 일부 여성들은 촬영 사실을 알지 못 했다고도 시인습니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도 인정했습니다. 다만, 성관계를 하기 전 미성년자인지 알지 못 했고, 영상을 유포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권 씨/골프장 회장 아들] "유포할 이유가 없죠. 제가 문제가 되는데, 여성들도 인권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권 씨는 먹이면 잠이 들게해 이른바 '데이트 성폭력'에 자주 쓰이는 것으로 알려진 케타민이라는 약물을 본인이 사용했다는 점도 순순히 시인했습니다. "합법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범행 아지트로 사용한 서울 강남 아파트에서 이 전자담배기기로 액상 형태의 '케타민'을 피웠다는 겁니다. 다만 여성들에게 몰래 쓴 적은 없고 일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흡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권 모 씨/골프장 회자 아들] "(여성들이) 모르고 (케타민을) 한 적은 없죠. 다 알고 동의 '해볼게' 이런 거죠. 저 (권유) 그런 거 진짜 안 한다니까요. 제가 무슨 뭘 타고 그런 거 전혀 없어요."

"죄송하다. 참회하겠다"더니‥몇 시간 만에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죄송하다. 모든 영상을 지우겠다. 봉합하겠다. 참회하고 살겠다. 살 길을 열어 달라."

권 씨는 인터뷰 중 이 얘길 여러차례 반복했습니다. 취재진은 낮 12시쯤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보도를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기사를 쓰기 전, MBC는 불법 촬영물이 담긴 외장하드와 그동안의 취재기록, 그리고 권 씨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 오디오 파일까지 취재 자료 일체를 서울지방경찰청에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갑자기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살 길을 열어 달라'던 권 씨, 인터뷰를 마치고 곧장 인천국제공항을 향했다는 첩보가 경찰에 들어온 겁니다. 확인해보니 당일 저녁 7시 40분에 미국 LA로 출발하는 표까지 이미 끊은 상태였습니다. 권 씨는 미국 국적자로 외국인 신분이라 별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미국에 입국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MBC로부터 자료를 넘겨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다급해졌습니다. 권 씨가 미국 국적자이다 보니 신원 특정에도 문제가 생겨 출국금지 조치도 지연이 되는 상황. 만에 하나라도 권 씨가 도주에 성공한다면 다시 붙잡기 힘들어 질 수 있기 때문에, 경찰과 취재진 모두 난처할 수밖에 없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취재진은 곧장 인천공항으로 갔고, 경찰도 수사관들을 현장에 급파했습니다. 경찰은 권 씨의 사진을 들고 승객들을 한명 한명 대조하며 수색했습니다. 취재진도 경찰의 요청에 따라 영상 취재를 잠시 중단했습니다. 권 씨가 카메라를 보고 숨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수색 작업 2시간이나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마침내 권 씨를 붙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출국 불과 2시간 전이었습니다. 붙잡힐 당시 권 씨는 공항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회사 관계자들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잡고 보니 권 씨의 람보르기니 차량엔 컴퓨터 본체 3대가 있었습니다.

각종 서류 뭉치와 명품 짐가방들도 차 뒷자리에 널려 있었습니다. 권 씨뿐 아니라 권 씨와 함께 서울 강남 아파트를 들락거리며 불법 동영상 촬영을 했던 권 씨의 비서 역시 이날 지하주차장에서 경찰에 함께 붙잡혔습니다. 권 씨가 미국으로 도주하는 순간에도 챙기려했던 컴퓨터엔 무엇이 숨겨 있었던 건지 경찰이 수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후 곧장 미국 LA로 출국하려던 권 씨. 지난 11일 영상실질심사를 위해 법정에 출두할 때 다시 마주친 권 씨는 "경찰조사에서 혐의 인정 다 하셨습니까? 왜 도주했습니까?" 라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제보를 받은지 단 5일만의 일이었습니다.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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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현lmh@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27009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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