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190이면 탄다' 포르쉐 산 20대 쪽박찬 과정
카푸어(Car poor·본인의 경제력에 비해 비싼 차를 구매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가 있기 전에 ‘딜러’가 있다. 통상 중고차 금융은 금융사가 중고차 딜러를 거쳐 소비자들에게 돈을 대주는 구조다. 딜러는 구매자와 금융사 사이에서 핵심적 매개체 역할을 한다. 소득이 없는 20대 청년들에게 일부 딜러는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 주는 존재가 된다.
제1금융권 대출이 제한되는 청년들은 비교적 문턱이 낮은 제2금융권으로 눈을 돌린다. 일부 비양심적인 딜러들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해 연 금리가 20%에 달하는 제도권 밖 시장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구매자가 제도권 금융에서 멀어지고, 빚을 더 큰 빚으로 갚는 고금리 대출의 악순환에 갇힐 수도 있다. 판매 노하우를 묻자 “시승 한 번이면 다 끝난다”고 말하는 딜러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현재 시중은행 오토론은 나이스 기준 개인신용점수 840점 이상(옛 신용등급 기준 3등급)의 고신용자가 대상이다.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의 대표 오토론 상품의 최저금리는 지난 24일 기준 우리은행이 연 3.34%로 가장 낮고, 국민은행이 5.33%로 가장 높다. 고신용자는 4% 내외 금리로 큰 부담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차량 구매를 원하는 중·저신용자 청년이 시중은행 대출을 받을 때 감액 요소가 크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대출이 쉬운 저축은행, 캐피털, 파이낸스 등 제2금융권을 찾는 이유다. 금융사마다 소폭 차이는 있지만 소득이 없더라도 보통 신용점수 630점(옛 6등급) 이상의 군필 남성이면 2금융권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2금융권 차량담보대출은 중고차 시세 80~100% 수준에서 한도가 책정된다. 한도와 금리 확인부터 승인까지 모든 대출 과정은 당일 완료되는 경우도 많아 청년 수요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금융권 오토론 금리는 연 6~20% 수준에서 다양하게 산정된다. 대출자 신용점수와 차량 가치, 근저당설정 금액 등이 금리와 한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같은 차량이라도 소득, 기대출, 신용 상태 등에 따라 금융사별로 한도와 금리가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인 근저당권 설정 비율은 50~70% 수준이다.
캐피털업계 관계자는 26일 “통상 연식 10년 안쪽의 주행거리 20만㎞ 이내 차량이면 차량담보대출의 기본 조건은 갖췄다고 볼 수 있다”며 “최근 시중은행이 오토론 상품을 공격적으로 내놓으며 2금융권에서도 6%대의 저금리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박승규(가명·25)씨는 지난해 3월 2015년식 포르쉐 박스터를 60개월 할부로 7000만원에 구매했다. 박씨는 신용점수가 낮아 3금융 소속 대부업체의 연금리 18.9% 상품을 선택, 차량 시세의 70%까지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보험료와 유류비를 포함해 월평균 차량 관련 지출은 190만원이었다.
하지만 구매 후 4개월 만에 차량 엔진부에 문제가 발생해 수백만원의 수리비가 청구됐다. 박씨는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처분을 결심했으나 저당이 걸려 있어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차량 운행도, 처분도 못 한 채 대출금만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박씨는 불어나는 빚과 이자를 바라보며 허탈함과 절망감에 빠졌다.
이처럼 저신용자 청년들이 고금리 대출을 받은 뒤 반복된 미납·연체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3금융권은 평균 대출금리가 연 17% 이상인 데다 법정 상한선인 20%에 달하는 곳도 다수다. 일부 딜러는 고금리 상품을 소개하며 구매를 종용하기도 한다.
수도권의 중고차 매매시장 딜러 성민수(가명·29)씨는 “고급 외제차 구매를 원하는 20대 초중반 친구들이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꽤 있다. 그중 채무 이력이 있어 2금융권 대출이 불가하거나 나와도 한도가 적은 분도 있다”면서 “그분들께 ‘이런 방법도 있다’는 식으로 3금융권 소개는 해준다. 위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줘도 고객의 구매 의지가 뚜렷하면 딜러는 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성씨는 “에어컨 부품 하나 교체하려고 해도 국산차면 10만원이지만 포르쉐면 80만원, 희귀 브랜드면 그 이상이다. 독일차는 외제차 가운데 부품값이 싼 편이다. 차량 수리비나 부품 교체비 등으로 예상 지출금액 이상 내야 하는 경우가 반드시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나는 건 최악의 경우다. 월 할부 내기도 빠듯해 전액 할부로 구매한 사람이 수리비 폭탄을 감당할 수 있겠나”면서 “그러다 차량 매각하면 감가로 큰 손해를 보고 빚을 떠안게 된다. 내야 할 돈은 불어나는데 대출할 곳이 없어 결국 불법 사채까지 가는 경우도 봤다”고 덧붙였다.
아예 처음부터 3금융 대부업체 상품을 소개해주는 곳도 있다. 안산 중고차 매매시장에서 7년째 딜러로 일하는 조남성(가명·31)씨는 “20대 초중반 무직자면 소득 증빙도 되지 않고 신용거래 미비자일 가능성이 크니 3금융권에 연계해주면 편하다”고 밝혔다.
조씨는 “몇몇 딜러는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20대 초중반 남성 고객을 외제차 운전석에 앉히고 시승시켜주면서 설득한다”고 했다. 외제차 시승 시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을 직접 확인해본 고객들은 열이면 열, 모두 구매하기로 마음을 굳힌다는 것이다.
구매 의지를 굳힌 고객들에게 딜러들은 적극적으로 방법을 제시한다. 조씨는 “차를 살 돈이 없을 테니 부모님을 대리인으로 두고 공동명의로 대출을 유도한다”고 했다. 또 그는 “분할 대출하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4800만원이 필요하면 대부업체 3곳에 1600만원씩 빌리는 식이다. 분할 대출을 하면 원금과 이자 관리가 힘들어져 그만큼 구매자의 파산 위험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구매자의 파산을 기다렸다 이자 감당이 불가능해지면 감가된 가격에 차를 다시 매입하는 사례도 있다. 조씨는 “할부금을 제대로 내든 말든 캐피털과 구매자 사이 문제”라며 “딜러는 팔고 그냥 수수료만 챙기면 된다”고 말했다. 구매자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차량을 압류당하거나 파산하더라도 딜러가 져야 할 도의적 책임은 없다는 얘기다.
일부 딜러는 신용조회 기록이 대출 심사에 반영되는 관행을 악용한다는 폭로도 나왔다. 인천에 있는 중고차 매매업체 딜러 장석준(가명·34)씨는 “구매자가 고금리 상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도록 ‘과다 신용조회’를 하도록 유도하는 업체도 있다”고 귀띔했다. 신용정보를 단기간에 여러 차례 조회하면 제도권 금융사에서 대출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금융사들은 차주의 상환 능력을 살피고 중복 대출을 차단하기 위해 연체 이력 정보와 신용조회 내역 등을 한국신용정보원을 통해 공유한다.
‘작업 대출’ 사기 역시 중고차매매 시장에서 한동안 성행했다. 작업 대출은 위변조된 재직증명서나 소득 증빙자료를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업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특정 기업에 재직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은행 대출심사를 통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장씨는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재직증명서를 전문적으로 위조해주는 업체가 있었다. 그만큼 작업 대출이 꽤 많았다”며 “최근 금융 당국의 감시가 강화되며 금융사들이 검증에 나서면서 사그라든 분위기”라고 전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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