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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웃으며, 안녕! #전세라이프 #플라스틱

전혜진 입력 2021. 12. 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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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21년. 올해를 끝으로 작별을 고하고 싶은 기억과 감정, 추억들까지.. 올해도 무탈하게 자신의 생을 살아낸 이들이 여덟 가지 키워드에 실어 보내온 이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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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내년도 계획을 정리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지금 여기가 내 집이 아니라 빌린 집이라는 사실이. 그 순간 올해를 넘기기 전에 해결해야 할 거대한 미션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금 사는 전셋집의 계약만료일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곤 뒤통수를 서너 번 세게 갈겼다. 미련함을 자책하며 행한 일종의 속죄 행위다. 얼얼한 머리를 부여잡은 채 황급히 ‘직방’을 켰다. 직장 주변의 원룸과 오피스텔을 검색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잔악무도한 서울 집값을 확인하며 지독한 절망감에 푹 절여질 뿐. 전세 대란이라더니 정말 제대로 된 매물이 하나도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가진 돈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집이 전무했다. 전생과 현생, 후생의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는다 해도 감당 불가일 정도로 서울 원룸의 전세금은 어마무시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이 방만 해도 계약한 바로 다음날 1000만 원, 입주한 직후에도 또 1000만 원이 올랐다더니 그 후에도 부지런히 몸값을 불린 모양이다. 서둘러 임대인에게 계약 연장 의사를 밝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그 뒤로 닷새째, 내 생애 가장 긴 1주일이 흘렀다. 월요일 출근시간에 맞춰 보냈건만 여전히 집주인은 기별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하염없이 매만지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어느덧 주말을 맞은 나는 내 것이 아닌 방에 누운 채로 애꿎은 문자 창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 정말로 X된 걸까? 위기감을 온몸으로 껴안고 망상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다시 한 칸짜리 월세로 돌아가야 하나? 그럼 한 달에 55만 원어치의 방값과 공과금은 어떻게 충당하지? 아예 집값이 저렴한 곳으로 회사를 옮겨야 할까? 아니면 이참에 고향으로 내려가버려? 거기엔 마땅한 일자리도 없을 텐데. 서울로 출근할 땐 KTX로 해야겠지? 늦어도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게 살다간 출퇴근길에 과로사로 죽는 게 아닐까….’ 기나긴 고민의 종착지가 죽음에 다다르자, 집주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기로 했다. 애절함이 가득 담긴 문자를 재차 보내려던 찰나 그토록 기다리던 답장이 도착했다.

“연락이 늦어서 죄송해요. 연장하면서 계약금 5% 인상 예정이니 참고 바랍니다.” ‘임차인 파주 씨,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갑시다!’ 그 순간 〈쇼미더머니〉에서 합격 목걸이를 건네받은 신인 래퍼처럼 온몸에 엔도르핀이 돌았다. 보이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저 멀리 경기도 신도시에 있을 자비로운 집주인을 향해 120° 정도 넙죽 숙여 절했다. 감사 표시와 동시에 내 서울살이 연장 성공을 자축하는 퍼포먼스였다. 장문의 문자로 서울에 눌러앉아 지낼 수 있는 시간을 2년 더 벌었다. 계약 연장을 기념하며 ‘오늘의집’ 앱을 켰다. 그러곤 장바구니에 오래도록 박아만 두었던 실용성 없는 조명을 냅다 구입했다. 빌린 것이기는 해도 일단 2년 동안은 내 집이니, 지금 느끼는 안도감을 유형의 무언가로 치환해 집에 장식해 두고 싶었다. 그날 저녁, 전두엽 구석 어딘가에 있을 모래시계를 거꾸로 세웠다. 자신이 조금은 시한부처럼 느껴졌지만 기념일을 기다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앞으로 또다시 2년. 당장 내년에도 무엇을 하고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뭐라도 좋으니 그때는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걸 단 하나라도 가지고 있기를. 든든한 부동산이든 빵빵한 통장 잔고든,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든. 주간 밥벌이 레터 〈풀칠〉 에디터 파주

LIFE #배달 #플라스틱

올해 나만의 룰을 하나 깼다. 지금까지 전화 주문을 선호했던 내가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 것. 밀려드는 인터뷰와 반복되는 편집, 야근의 굴레 속에서 “선배, 뭐 시켜 먹고 할까요?”라는 후배의 한 마디는 거부할 수 없는 속삭임이었다. 그렇게 회사 근처 맛집 검색, 주문, 결제까지 한 큐에 가능한 배달 앱은 내게, 아니 어쩌면 주위 사람 모두에게 엄마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저녁만 시켜 먹는다면 다행. 늘어가는 확진자 속 거리 두기 단계 상향, 모임 금지 수칙 등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팬데믹 상황에서 배달 앱은 점심시간까지 침투했다. 패스트푸드, 치킨, 짬뽕 같은 단골 음식뿐 아니라 패밀리 레스토랑의 크리미한 메뉴까지 배달되는 세상이라니! 한번 발을 들인 배달의 늪이란 넓고도 깊어 쉽사리 발을 뺄 수 없었다. 격렬한 배달과의 사투 뒤에 남는 건 엄청난 양의 1회용 플라스틱 용기. 먹은 사람은 둘뿐인데 남겨진 건 종류도, 개수도 뭐가 그리 많은지. 분리수거 칸에 쌓여가는 플라스틱만큼이나 지방 또한 지칠 줄 모르고 쌓여간다. 무너진 생활 패턴은 덤이다. 이제 배달 앱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할 시간. 2022년에는 이 지구에도, 내 몸과 마음에도 상쾌한 바람이 불기를! 〈더뮤지컬〉 영상 PD 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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