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된 세월호 엄마들, 울지 않고 무대에 서기까지

월간 옥이네 입력 2021. 12. 2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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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딛고 빛을 향해 가는 '기억여행'..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옥천 공연 현장

[월간 옥이네]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옥천 공연 현장
ⓒ 월간 옥이네
 
"노란리본, 파이팅!"

예행연습이 한창인 공연장. 빈 관객석 앞 무대에 배우들이 섰다. 두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한 작품. 대사와 동작은 더 크게, 동선은 물 흐르듯이. 곧 채워질 객석을 생각하며 연습한 만큼 잘 해보자 다짐한다. 물론 사이사이 농담과 웃음도 빠지지 않는다.

여느 극단과 다르지 않은 풍경.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배우 이름 앞에 붙는 '누구누구 엄마'라는 호칭이다. '세월호 엄마'들로 이뤄진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이 11월의 어느 날 충북 옥천군청소년수련관을 무대로 연극 '기억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연극은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과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이 4.16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 지난해 옥천 공연이 계획됐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된 후 1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된 공연이라 반가움도 두 배. 빈 객석이 하나, 둘 채워지고, 이내 공연의 막이 오른다.

"2014년 어느 봄날, 누군가 나를 불러냈습니다. 작은 메모장에 저를 그리고는 기도했죠. 제발 돌아오게 해달라고요." 오늘 여행의 가이드는 노란리본. "오늘 우리는 엄마들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여행을 함께 할 겁니다. 우리가 되돌아볼 시간 속엔 당신도 함께였겠지요."

[#장면1] 2019년 4월 봄날의 안산, 5주기 기억식이 있던 날

5번째 기억식 현장, 한쪽에선 생명안전공원 조성 반대 시위도 있었다. 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약속이다. 누구나, 언제든 찾아 아픔을 기억하고 변화를 다짐하게끔 도와야 한다. 그렇기에 공원이 자리할 곳은 깊은 산 속이 아닌, 우리 일상 가까이다.

그러나 '집값 하락'을 이유로 공원 조성을 반대하는 사람들. 그중엔 희생자 학생이 자주 가던 음식점 사장님도 있다. '엄마'는 그들을 몰아세우고 탓하지 않는다. 그저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내어준다. 그 온기는 깨달음을 전한다. 세월호 참사는 '이웃'의 이야기이자, 곧 나의 이야기임을. 이날의 커피 한 잔은 그 어떤 투쟁보다 힘이 셌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세상과 싸우는 법을."

[#장면2] 2017년 3월의 마지막 날, 목포신항

두 엄마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치과야." 한 엄마가 사랑니를 빼러 혼자 치과에 들어가던 딸의 모습을 떠올린다. 옆에서 듣던 엄마도 시험 전 피시방에 갔다 들킨 아들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그리고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세월호가 보입니다. 3년 만에 수면 위로 올랐습니다. 엄마는 마음이 아픕니다.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용기를 내야 한다는 걸요."

"할 일이 많아, 이제부터."
"응, 해내야지."

[#장면3] 2015년 4월, 안산-광화문 1박2일 도보행진 현장

세월호 참사에 대한 혐오 발언이 정치인의 입에서, 인터넷 뉴스 댓글창에서 쏟아진다. 댓글을 읽던 '엄마'는 이내 걷는 일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윽고 여러 사람이 행렬에 따라붙었다. 국민의 이목에만 신경 쓰는 정치인도 있고, '걷지 말고 리무진 타자'고 권하는 사업가도 있다. 허울뿐인 사람들이 떠나자 노란리본이 엄마에게 묻는다.

"다들 떠나네요. 이제 어쩌죠?"
"뭘 어째. 우리는 갈 길 가야지."

한편 묵묵히 따라온 사람도 있다.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을 남겼지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며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은 순간 부끄러워졌어요. 이 아이를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걱정됐죠." 그렇게 목적지가 같아진 그들은 함께 걷고 또 걷는다. "도보행진을 마치며 알았습니다. 우리가 마침내 도착해야 할 진짜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우리가 함께 걸어야만 하는 이유를요."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옥천 공연 현장
ⓒ 월간 옥이네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옥천 공연 현장
ⓒ 월간 옥이네
 
[#장면4] 2014년 5월 경찰과 대치 중인 광화문 광장

"위에서 비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위가 어디인데요?"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한 가족들을 막아선 무장경찰. '명령'을 따를 뿐이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뱉는다. "왜 우릴 막는 걸까? 우린 그냥 알고 싶을 뿐인데. 왜 구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농성은 계속된다. 화장실도 못 가게 막는 경찰병력. '시민'이 아닌 '명령'을 지키는 허수아비다.

지친 엄마들은 노란리본에게 묻는다. "이거 언제 다 끝나?" 노란리본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답한다. 광장과 거리에서 더 많은 날을 보내게 되고, 싸워야 할 적도 늘어날 거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 목소리가 단단해질 테고, 싸우는 법도 알게 될 거란 답도 잊지 않는다. "결국 알게 될 거예요. 어머님들이,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이 이 세상을 바꿔냈다는 걸."

[#장면5] 2014년 4월 15일, 여행을 앞두고 들뜬 아이들과 통화하는 엄마들

"양말은 다 챙겼어?"
"연락 자주 할 필요 없어. 꼭 필요할 때만 하면 돼. 도착했을 때, 자기 전에, 맛있는 거 먹을 때, 맛없는 거 먹을 때..."
"잘 다녀와!"
"엄마 걱정하지 말고 재밌게 놀고 와."

[#장면6] 2021년 11월 13일, '기억여행'을 마친 옥천

기억여행을 끝낸 배우들이 함께 모였다. "관객분들 호응이 좋아서 기뻤어." "맞아, 맞아." 그렇게 연극 속에서 극을 마무리한다.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면서. "이것으로 모든 기억여행지를 다 돌아보았습니다.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편의 연극, 모두의 마음에 노란리본을 달다

노란리본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간다. 원래는 함께 바리스타 수업을 듣던 모임. 교육이 끝나고, '이대로 그냥 두면 다시 집에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 연극이었다.

"사회에서 세월호와 비슷한 맥락의 일이 자주 일어나잖아요. 그걸 보여주기 위해 첫 공연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를 주제로 했습니다. 언젠가 우리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했죠." (김명임 단장)

노란리본은 2016년 10월 '그와 그녀의 옷장'을 시작으로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2017), '장기자랑'(2019), 올해 '기억여행'까지 총 4편의 극을 전국을 순회하며 펼쳤다. 그 횟수만 벌써 220회 정도. 단장을 맡은 김명임씨는 창단 때부터 함께해왔다. 초기에는 실수도 많이 했지만, 열심히 연습하며 공연은 더욱 탄탄해졌다.

"처음엔 객석이 아니라 허공이나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했어요. 외운 대로, 연출님이 알려주신 대로 했지요. 그런데 무대에 익숙해지고 점점 시야가 넓어지면서 관객들이 보이는 거예요. 정말 틀리지 않고 잘해야겠구나, 다짐하죠."

노란리본 극단 곁에는 함께 무대를 꾸려온 '컬처75' 운영진이 있다. 안산의 사회적협동조합 컬처75는 지역 예술인의 정착과 활동을 위한 환경을 마련하고, 모든 주민이 일상에서 쉽게 문화생활을 누리도록 여러 문화기획을 펼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문화활동을 통해 사회적 공감과 연대를 이루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안산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었어요. 우리 지역의 일이었죠." (김태현씨)

컬처75 대표이자 노란리본 연출가인 김태현씨는 처음 연극 수업을 맡을 때부터 마음을 다해 극단을 이끌어왔다. 배우들에게 그는 '대본을 울지 않고 읽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이야기를 듣고 다독여준 고마운 존재. 2014년 4월 16일 당일 저녁, 30여 명 주민이 단원고등학교에 모여 '무사 귀환'을 바라며 촛불을 들던 자리에 그도 함께였다. 그때부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해왔기에, 노란리본과의 만남은 의미가 깊다.

"노란리본 어머님들은 연극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세요. 연습 과정에서 지난 아픔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을 다 이겨내시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신 거죠. 내년까지 '기억여행' 공연이 계속될 텐데, 추가되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후년에는 새 작품을 만들 예정이에요. 많이 응원해주시면 좋겠고, 공연 기회도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 노란리본 '기억여행' 배우들 박유신(2-3 정예진 엄마), 박혜영(2-3 최윤민 엄마), 김명임(2-7 곽수인 엄마), 이미경(2-6 이영만 엄마), 최지영(2-6 권순범 엄마), 김순덕(2-1 장애진 엄마), 김도현(2-7 정동수 엄마)
ⓒ 월간 옥이네
공연장을 떠나서도 함께하겠다는 약속

벌써 6년 차가 된 노란리본 극단. 전국을 찾아 웃음과 눈물을 전하던 시간은, 아픔을 아픔으로만 두지 않을 용기를 선물했다.

"사실 길 가는 학생들을 못 쳐다봤어요. 그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분향소에 와서 인사하고 가도 못 만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안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우리 극단을 초청해주셨어요. 공연하며 객석을 봤는데, 그 아이들이 다 울고 있더라고요. 마음으로 느껴서 같이 울어주는 거잖아요. 우리는 연습하면서 충분히 울고 나서 무대에 올라요. 우리의 그런 마음을 느껴주고, 의도를 알아줘서 고마웠죠. 그 순간을 못 잊겠어요." (김명임씨)

노란리본에게 옥천에서의 공연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함께 울고 웃던 순간은 무대 위 배우에게도, 객석을 채운 주민들에게도 울림을 전했을 테다.

"오늘 관객분들 중에 청소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어린 나이였을 텐데, 이 참사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한다고 해도 공연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이미경씨)

함께하겠다는 관객들의 약속은 노란리본을 무대에 계속 오르게 하는 힘이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주민 정원석씨도 "이번 기회로 더 알아보고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소중한 약속을 전했다.

"세월호가 한참 화두일 때는 세부 사안들을 찾아보고 활동도 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잘할 거라는 기대감과 무언가 해결되는 느낌에 구체적으로 살펴보진 않았어요. 그런데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는 걸 오늘 다시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 정부에 요구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계속 살펴볼 생각입니다."

또 다른 관객 박정호씨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늘 함께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연극을 보면서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진상규명을 제대로 이루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을 세월호 참사 가족에게만 맡기지 않아야 해요. 이제는 국민 모두 더는 가만있지 않고 함께 투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픔을 아픔으로만 두지 않는 용기

"저희가 전부 다 겪었던 일이에요.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겪은 일을 극으로 표현한 거죠."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7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연극 '기억여행'은 그 과정에서 겪은 일을 되짚는다. 결코 쉽지 않은 시도였다.

"이번 '기억여행' 작품을 하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너무나 아프고 힘든 공연이었거든요. 그러니 더 힘이 되어주려 하고, 더 다독이게 되고 보듬어주게 됐지요. 엄마들이 서로 배려하고 더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물론 아픈 과정이었지만, 그 아픔을 견디는 노력을 많이 했기에 훨씬 더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미경씨)

고통을 다시 꺼낼 때 마주하는 또 다른 고통. 하지만 함께할 서로가 있어 견딜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렇게 아픔은 한 편의 연극이 되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희망이 되어 세상과 만난다. 그들의 용기는 누군가의 안전한 삶을 위한 길을 내고 있다.

"진상규명이 어떤 쪽으로 이뤄질진 모르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에게 이롭고 미화된 진실이 아니에요. 왜 그랬는지 있는 그대로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이죠." (김명임씨)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라는 건 오직 '진실'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 어려운 요구일까. 숨기는 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무엇일까. 아직도 '진상규명'을 외치게 만드는 답답한 현실. 그러나 노란리본은 그 어둠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의 손을 잡고, 빛을 향해 나아간다. 그 빛 아래, 아픔은 그 모습을 바꾼다. 힘 있는 외침으로, 관객과의 연대로 말이다.

"저희가 여기 오기까지 스스로 혼자 걸어온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발걸음이 함께 했지요. 넘어지지 않을 수 있게 지탱해주신 동행자들 덕분이었어요. 앞으로도 잊지 말아 주시고, 끝까지 힘을 내봅시다." (김명임씨)

*노란리본 '기억여행' 배우들 : 박유신(2-3 정예진 엄마), 박혜영(2-3 최윤민 엄마), 김명임(2-7 곽수인 엄마), 이미경(2-6 이영만 엄마), 최지영(2-6 권순범 엄마), 김순덕(2-1 장애진 엄마), 김도현(2-7 정동수 엄마)
 
 노란리본 '기억여행' 배우들과 단체사진
ⓒ 월간 옥이네
 
월간옥이네 통권 54호(2021년 12월호)
글·사진 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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