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에게 보이는 반기문의 그림자..지난 대선 그대로 되풀이되나

임재섭 입력 2021. 12. 31. 06:24 수정 2021. 12. 3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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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방문해 참배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윤석열(오른쪽)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 네트워크 대표에게 빨간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30일 대구 수성구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에서 윤석열을 사랑하는 모임 관계자들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월 30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열린 한미동맹 미래 평화 컨퍼런스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면서, 정권교체론을 등에 업고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던 국민의힘 캠프에 비상이 걸렸다. 선거 초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가 20여일 만에 사퇴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례가 겹쳐 보인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 구도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대세론' 어디 가고…=윤 후보는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정치 행보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외곽을 오랫동안 돌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8월에 국민의힘에 기습 입당, 당을 장악해나가는 리더십을 보이면서 대선 후보로 각인됐다. '미담 제조기'라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0%대 지지율을 목전에 두는 등 기대감을 모았으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면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야권의 시선은 윤 후보에게 쏠렸다. 윤 후보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지지율로 흡수하며 확고부동한 대세로 올라섰고, 이후 여러 차례로 나뉜 경선 과정에도 부동의 1위로 추격자들을 따돌리며 세(勢)를 증명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명낙대전'속에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사이, 윤 후보는 정권교체론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국민의힘이 공공연히 '사지'로 보는 호남을 수차례 방문하며 기존과 다른 후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고, 그러면서도 기존 보수층을 끌어안는 포용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0% 중반대 박스권에 갇힌 이 후보 진영에서 과반을 형성한 윤 후보 진영을 보면서 '4·7 재보궐 선거의 반복'이라는 한숨이 흘러나온다는 말이 여의도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최근에는 윤 후보의 지지율은 이 후보보다 앞선다는 여론조사보다 그렇지 않다는 여론조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NBS는 30일 양당 대진표가 확정된 11월 1주차 조사 이후 처음으로 야당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정권심판론'(정권교체론)과 여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국정안정론'(정권 재창출론)의 비중이 뒤바뀌었다고 발표했다. 이 여론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조사, 지난 27∼29일 3일 동안,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다자대결에서도 이 후보는 39%를 기록, 28%를 기록한 윤 후보보다 지지율이 오차범위 밖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분위기가 여권 쪽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치공학-정체성 사이에서 표류한 尹=이런 윤 후보 캠프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정치공학적 필승법'과 '정체성'이라는 2가지 요소 사이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윤 후보 캠프의 선거 전략은 과거 친박계를 포함한 강성 지지층부터 반문까지 모두 끌어안아 여권 지지층을 박스권에 고립시키고, 동시에 우세한 정권교체론을 표로 치환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로 요약된다. 윤석열 캠프는 이중 반문까지 외연을 확장하는 문제는 정치공학적으로 접근, 호남을 끌어안고 새 시대 준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국민의힘에 들어오지 못하는 인사까지 영입해 중도의 이탈을 막는 전략을 썼다. 동시에 강성 지지층에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등에서 볼 수 있듯 '보수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정체성에서 공감대를 이뤘다. 2개의 다른 축을 활용해 2가지 부류의 지지층 입맛을 잡아내며 과반을 확보한 셈이다. 특히 윤 후보의 경우 경선 막판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의원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역선택'을 우려한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홍 후보보다 중도적인 입장으로 평가받던 윤 후보였으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보다 중도로 확장이 필요하다'는 강성 지지층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표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윤 후보 캠프는 정치공학과 정체성 사이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윤 후보는 대세론을 확보한 뒤 '선거의 변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1등 후보'들이 주로 꺼내드는 '수성 전략'에 손을 댔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 브리핑을 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장면이 카메라에 여러 차례 잡혔고, 이 후보의 토론제안에도 '무용론'으로 대응했다. 아내 김건희 씨 허위 이력 의혹을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기조는 그대로 나타났다. 윤 후보 캠프는 김 씨가 사과할지 여부를 두고 "후보자와 배우자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는 말로 사실상 시간을 허비했다. 사과가 선거의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새시대준비위원회는 당원·지지층과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시점에 연이어 끝없는 외연 확장을 발표하며 내실을 다지지 못한 채 전선을 넓혔다.

결국 지지층이 중도로 확장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유지됐던 '정치공학-정체성'이라는 2개의 축은 "민주당을 못 가 부득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는 전남에서의 실언과 페미니스트까지 외연을 확장하겠다며 야심 차게 추진한 신지예 씨 영입 등을 기점으로 파열음을 냈다. 특히 신 씨 영입의 경우, 국민의힘에서 앞서 이수정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할 당시 2030 남성층을 중심으로 한 차례 반발이 감지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결정타'로 받아들여졌다. 국민의힘에서는 "20대 여성 표도 가져와야 한다"며 애써 봉합하려 했으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새로운 여성 지지층 확보는 거의 나타나지 않은 반면 2030 남성 지지층의 이탈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집안싸움까지…아른거리는 반기문=이런 윤 후보 지지층 사이의 큰 거리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는 윤석열 후보-이준석 대표의 갈등 사태이다. 당초 윤 후보를 위한 3개의 비단 주머니를 준비했다고 말했던 이 대표는 첫 비단 주머니인 '크라켄' 프로그램을 공개했을 뿐, 이후 윤 후보에게 선대위의 쇄신을 요구하며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 넓은 인재 영입으로 여권을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을 품고 있는 윤 후보는 이 대표까지 끌어안지는 못했고, 이 과정에서 보수진영 지지층은 저마다 공감대가 가까운 방향에 서서 서로를 윤핵관·이핵관으로 지목하며 서로를 할퀴며 상처는 깊어갔다. 급기야 '후보 교체론'과 '이준석 탄핵론'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사실 민주당에서도 대표와 후보가 다른 목소리를 낸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파급력은 판이하게 달랐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외연 확장 차원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으나, 이 후보가 "깊이 생각해본 적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논란이 곧바로 정리됐다. 송 대표는 30일에도 거듭 안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으나 민주당에서 대표와 후보의 관계가 논란이 되지는 않고 있다. 유독 보수층에서 갈등이 두드러진 것이다. 심지어 이 후보의 경우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공과 과'를 함께 언급하는 등 철저하게 1등 후보와 '차별점을 없애는' 전략을 고수했음에도 절박한 선거 구도가 잡음을 잠재웠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세를 보였으나 내부서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허무하게 막을 내린 반기문 캠프를 떠올리게 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에도 불구하고 4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록했고, 입국할 당시에는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한 지지자들이 한 데 결집하면서 KTX 서울역을 2층까지 가득 채우는 등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지그룹 내 갈등 속에 확실한 정체성까지 보여주지 못하면서 지지세가 빠져나갔고, 결국 뒤늦게 시도한 바른정당·자유한국당으로 입당 가능성까지 좌절되면서 사퇴로 끝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한 번 갈라진 민심은 단기간에 봉합되지 않았고, 수도권-영남권, 20대-60대 이상 민심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등판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당시 홍 후보는 한 자릿수 지지율에서 시작해 막판 돌풍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30% 선에 다다르지 못했고, 결국 40% 초반대 득표율을 얻은 문재인 당시 후보를 막지 못했다. 최근 지지세가 쪼그라든 국민의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너진 尹 지지율 복원, '安과 단일화'에 해답 있나=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치공학적으로 여권과 이 후보를 포위하는 행보인 동시에 윤 후보의 정체성을 묻고 있는 지지층도 만족시킬 묘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안 후보와 단일화다. 안 후보의 경우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도우면서 보수 지지층과 심적 거리를 상당 부분 좁혔고, 지난 대선을 완주한 만큼 가족 리스크 등에서 자유로운 동시에 중도로 확장의 의미도 지니기 때문에 윤 후보가 안 후보와 단일화하는 결단을 할 경우 지지층이 공감하는 확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떠난 2030 남성 지지층을 비롯한 지지층의 결집을 위한 별도의 퍼포먼스가 함께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꺾이지 않고 목소리를 내온 윤 후보의 과거 궤적을 감안하면 최근 '공수처 통신조회' 사태처럼 강하고 선명한 목소리로 다시 정체성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캠프 내 한 관계자는 "가까이서 지켜본 윤 후보는 일단 상당히 깊이는 있고, 진정성과 리더십도 갖춘 사람"이라며 "다만 준비할 시간이 길지 않다 보니 정치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지는 못했고, 보수가 워낙 한 데 뭉치질 못하고 있어 효과적으로 자신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 현상으로 본다"고 말했다.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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