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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국민가수 6위 고은성 "무료로 노래 가르쳐준 스승께 감사..크로스오버 장르 알리고파"

최보윤 기자 입력 2022. 01. 05. 06:52 수정 2022. 01. 0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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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가수 톱 7 연쇄 인터뷰-6위 고은성>
'뮤지컬 스타'에서 국민가수로 새 도전
톱10과 동료넘어 가족같이 애틋해져
좋은 영향력 미치는 사람 되고 싶어
고은성 / 장련성 기자

편한 운동복 차림에 일명 ‘덮머’(앞머리를 내려 이마를 가린 모습) 스타일의 고은성(32)이 특유의 ‘건치미소’를 지으며 성큼 걸어왔다. 아직 분장 전이라고 했다. 같은 ‘덮머’라도 헤어 제품으로 꼼꼼히 계산한 ‘무대용’이 있다면, 이날은 고개 돌리면 자연 바람에 찰랑이는 ‘자연인 고은성’. 하지만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기엔 별다른 잡티도 눈에 띄지 않았고, 적당히 정돈된 눈썹이나 매끄러운 피부결, 고른 피부톤에서 이미 ‘완성형’이었다.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최종 6위에 오른 고은성의 수려함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다. ‘국민가수’ 이전에도 뮤지컬 무대를 통해 상당수 팬들에겐 익숙한 얼굴이고, 기자에게도 낯선 모습은 아니다. 대전 출신인 그는 2011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해 ‘그리스’의 대니, ‘비스티 보이즈’의 강민혁, ‘노트르담 드 파리’의 페뷔스, ‘그레이트 코멧’의 아나톨 등 뮤지컬 역사 속 고은성의 이름을 차곡차곡 새기고 있었다. 지난해 기준 ‘데뷔 10년차’였던 고은성의 명성은 ‘뮤지컬계’에선 익히 알려져있던 바.

때로는 천연덕스럽게 장난치는 천진난만함으로 가득 찼다가도 어느덧 철학자 같이 깊이 사색에 빠지거나, 미지의 탐험자처럼 방랑하며 세상을 탐구하는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이 고은성이라는 한 사람 안에 녹아있었다. 주로 극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뮤지컬 특성상 그에게 입혀진 이미지도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줄인 ‘곤성’이라는 애칭 있지만, 고은성의 캐릭터 소화력 덕분에 뮤지컬 주인공 이름을 붙여 ‘고대니’(뮤지컬 그리스)를 시작으로 최근작 ‘고몬티’(젠틀맨스 가이드)까지 고은성을 통해 생명을 입는 캐릭터들이 그의 분위기와 합쳐지며 힘을 받기도 한다. 오디션이 방송된 3개월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지만 그의 이러한 다층적인 모습을 드러내기엔 짧은 듯 하게도 느껴졌을 정도니 말이다.

◇내 삶은 국민가수 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마지막까지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다”는 그를 보며 가장 먼저 생각난 단어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역경이나 시련을 잘 견디는 능력을 뜻한다. 그의 삶을 줄곧 지켜본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그렇게 ‘보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의 연기력이 뛰어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의 전체 인생에 반추해보면 ‘찰나’의 시간 속에 드러난 말과 태도, 행위, 표정에서 느껴지는 고은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내면의 강건함과 대담함을 바탕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경연 중 개인적으로는 힘든 상황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경연자 고은성으로서 프로그램에 참가한 시간은 저에겐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 자체가 즐거움이자 저를 향한 채찍질”이었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프린스 고은성. 고은성의 '국민가수' 출연이후 그의 '새로운 팬'이 돼 뮤지컬 공연을 보러가게 됐다는 '인증'이 크게 늘었다. /TV조선

-’국민 가수’라는 게 가수에게 붙는다는 건 영광스러운 호칭일 것 같아요. 그렇게 불릴 수 있는 전설적인 분들은 손에 꼽히니까요. 경연에 임하는 자세도 달랐을 것 같아요.

“‘국민가수’는 뮤지컬 경연대회가 아니잖아요. 몇몇 분들은 ‘이미 알려졌는데 왜 나왔느냐’ 혹은 ‘평가가 안좋으면 어떡하냐’며 걱정도 해주셨어요. 저는 경연을 치르면서 마음이 편했거든요. ‘국민가수’라는 무대가 기성가수들에겐 어쩌면 무서운 곳일 수도 있어요. (아직 정식 데뷔를 안해) 아마추어라고 불리시는 실력파들과 같은 선상에서 겨루면서 냉정하게 평가받고 그걸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그 무거운 채찍질을 잘 이겨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굳어져버린 나쁜 습관 같은 것도 고쳐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면 이처럼 좋은 기회가 어딨겠어요. 저는 제 삶이 국민가수 도전 이전과 그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장련성 기자

‘이미 알려진’이란 건 양가적(兩價的)이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려졌기에 그에 대해 요구하거나 바라는 수준이 더 견고하고 고도화될 수도 있고, 그만큼 기대감과 위험도도 커지게 된다. 그가 경계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점이었다.

-왜 나오고자 했나요? 알려진 분이기에 그만큼 부담이 적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여기서 무조건 무얼 해내겠다”라는 건 없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엄마의 메시지 영향이 컸어요. 카톡으로 ‘국민가수’ 포스터를 보내주셨거든요. ‘아들을 위한 프로그램같아’라면서요. ‘팬텀싱어’(2016)를 통해 뮤지컬이나 성악과 록, 같은 다른 장르가 결합된 다양한 음악을 노래하면서 저만의 장점을 보여드린 것도 물론 있죠.

그런데 당신께선 ‘여기서 그동안 못 보여줬던 네 많은 모습을 더 많이 알릴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셨죠. 처음에 엄마한테 안나갈 거라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보통 제 얘기엔 다 믿고 수긍하시는 편인데, 이번엔 조금 다르시더라고요. ‘엄마도 그냥 포스터 보니 아들이 떠올라서…, 자주 못보는 데 TV에 우리 아들 나오는 거 한번 보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신경쓰지 말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이러시는데 흔들리더라고요. 또 뮤지컬 데뷔 10년차에, 제대한 뒤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밟으면 튀어오르는 스펀지 같은 사람…크로스오버 장르를 알리고 싶었다.

-’뮤지컬 프린스 고은성’이라는 애칭답게 뮤지컬 무대를 호령하던 고은성을 기대하던 분도 많으셨는데요.

“‘국민가수’ 나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던 게 바로 이 지점이에요. 정말 도전 하면 할수록 ‘뮤지컬 배우’라는 프레임이 덧 씌워지는 기분이었어요. 이러다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달가…. 타협과 도전이라는 숙제를 두고 전 타협과는 절대 손잡을 순 없었죠.

‘뮤지컬 배우 고은성’으로 나온 게 아니었거든요. 물론 뮤지컬 배우였기 때문에 제가 신인인 분들에 비해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점한 건 알아요. 심지어 제가 무대를 너무 즐기는 것 같다며, 간절함이 안보인다는 분들까지 계셨어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오랜 팬분들도 많이 있었죠. 하지만 ‘뮤지컬 배우’라는 정형화된 이미지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저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데, 무얼 해도 뮤지컬 같다는 말씀도 있으셨고, 뮤지컬에서 잘했던 걸 내세우면 점수도 높게 받을 텐데 왜 안하냐는 말씀도 있었거든요. 제 목표는 ‘뮤지컬 배우 고은성’을 알리는 게 아니었어요. 이렇게 노래해온 고은성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고, 또 여러 장르를 시도해보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드리면, 제가 좋아하는 장르도 ‘국민’들께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어떤 장르인데요?’

“‘크로스오버 뮤직(crossover music·어떤 장르에 이질적인 다른 장르의 요소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음악)’이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힘이 돼 줬던 장르죠.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당신이 날 일으켜 주시네)’을 부른 크로스 오버 가수 조쉬 그로반을 생각하시면 돼요! 영혼을 깨우는 노래죠. 제가 국민가수에서 선곡한 노래를 두고 ‘의외’이라고 말씀주셨 분들도 계셨어요. ‘열린 음악회’이나 ‘복면가왕’에서 보여줬던 노래나 혹은 팬텀싱어 (흉스프레소팀) 올스타전 같은데서 불렀던 노래로 사람들을 놀래킬 수 있을텐 데, 또 뮤지컬의 명곡들을 불러도 높은 점수 받을 텐데 쉬운 길을 괜히 돌아간다면서요.

아마 제가 뮤지컬 스타일 곡을 선택했다면, 호평이 있었을 지는 모르지만 ‘저것 밖에 못하나’라는 평도 달렸을 거에요. 그럴 바엔 제가 나아가고 싶고,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길을 노래를 통해 말씀드리는 거죠. 설사 이번에 잘 안됐더라 하더라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전하는 거죠. 뮤지컬은 아직도 제가 정말 사랑하고 놓을 수 없는 장르이고, 제가 열심히 해온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저의 ‘이런 모습도 있다’는 계획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제 선택에 충분히 만족해요.”

고은성이란 이름을 뮤지컬 팬에 이름을 제대로 알린 뮤지컬 ‘그리스’(2012) 출연 당시 인터뷰를 보자. 연출은 그에게 “스펀지 같은 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통 ‘스펀지 같다’고 말하면 주어진 것이나 주변 상황을 빠르게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수사로 쓰이는데, 여기선 좀 다르다. “밟고 또 밟아도 다시 올라온다”는 뜻. “자다 일어나서도 부를 정도”라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좋아하는 노래의 여러 가지 버전에 따라 구강 구조 등을 다 보면서 연구한다는 것. 자신에게 안 맞는 것은 버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포인트를 흡수해서 ‘고은성 만의 고은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레전드 미션에서 그의 노래를 들은 윤민수 레전드는 “노래에 두성(머리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 흉성(가슴, 폐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고은성이다”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외국어 노래를 잘하는 것 역시 수없이 듣고 반복하고, 급기야 학원에 등록해 정식으로 배우기도 했다. 국민가수에서 무쌍마초 팀으로 나섰을 때 선보인 루이스 마리아노의 ‘Maman, La Plus Belle Du Monde’로 샹송 무대를 펼친 것도 경연에서 쉽게 듣기 힘든 무대였다. 고은성만의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도 당당했다…무료로 1년간 노래 가르친 최현규 스승님 덕

-어린 시절 하고픈 걸 못하게 되면 무언가 삶이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버지 사업이 IMF(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너무 힘들어지시면서 저희 다섯 식구가 반지하 단칸방에 살았어요. 제가 그때 초등학생 때였죠? 중학교, 고등학교 지나면서 그다지 나아지는 살림은 아니었어도 저는 기죽지 않았어요. 엄마 아빠도 노력했지만, 잘 안된다는 걸 이해했었고, 그렇기에 당당했죠.

엄마는 항상 저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게 굉장히 힘이 되더라고요. 제가 무언가 할수 있다는 의지가 된달까. 제가 이 세상에 와서 어떤 쓰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런데 막상 공부도 하고 학원도 가려니 이게 또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부모님이 그렇게 노력하셔도, 저도 아르바이트 해야 한달 학원비 벌고, 한달 배우면 그 다음달 그만두고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죠.”

-그래도 노래로 인생 방향을 정했어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인복은 있는 거 같아요. 열여덟에 뮤지컬을 보고 소름이 끼쳐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할 수는 있을지 몰랐거든요. 근데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더라고요. 제가 검정고시하면서 대입을 위해 학원을 알아보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달 학원비를 벌고, 또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을 때, 대전에서 음악 선생님을 만났거든요.

최현규 선생님이라고. 뮤지컬 오페라 이런 학원을 운영하시는 분이셨어요. 제가 제 몫의 벌이(생계)를 하면서 배우려 하니 부담이 되더라고요. 제가 한달치 학원비를 내고 두달 째에 그만두겠다 말씀드렸더니 그런데 선생님이 그냥 1년간 무료로 가르쳐 주셨어요.”

-그때가 언젠가요?

“18살에서 19살 때? 대전에서 선생님 댁이랑 저희 집이랑 가까운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저 태워서 학원에 데려주시고 저는 종일 연습하고 선생님이 시간 날 때마다 가르쳐주시고, 그걸 1년 내내 해주신거죠. 그땐 (지금에 비해) 어렸으니까 선생님의 은혜와 배려가 얼마나 큰 건지 상상을 못했죠. 저는 그 어린 시절엔 너무 좋은 선생님 만나고 노래 배운다는 생각에 너무 들떠서, 그게 얼마나 큰 혜택이고 행운인지까지 헤아리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어요.”

◇피자 배달원으로 마주하게 된 선생님

-최현규 선생님이랑 자주 뵐 기회가 있었나요? 데뷔 뒤엔 바빴을 것 같은데.

“데뷔하고 스물 두세살 때 뮤지컬 주연을 따 낸 거에요. 얼마나 기뻤겠어요. 세상을 다 얻은 듯 했죠. 그런데 제 생활은 어땠는 줄 아세요? 대전에서 반지하 생활이 서울로 오니까 신림동 반지하에요. 그냥 지역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도 없고, 주연을 따냈다고 해서 제가 대단해진 것도 아니고, 삶이란 게 그런거죠. 남들이 볼땐 뭐라도 된 듯 하지만 그 사람이 살아갈 때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게요?”

그의 질문에 연대별 그의 일지를 보면 ‘무얼 했다’ 말하겠지만, 그게 그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각종 매체에 노출된 것도 그에 대한 모든 게 아니었을 것 같다.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죠. 거기서 피자 배달을 했어요. 근데, 주소를 보니 선생님 집인 거에요. 어제까지만 해도 선생님이 저한테 ‘너 요즘 잘 지내고 있냐’고 여쭈셔서 ‘새 작품 들어간다. 오디션 보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드렸는데 하필, 그 대전에 있는 그 피자집을 이용하는 그 수많은 고객 중 하나가 바로 저희 선생님이셨던 거죠.”

그는 각종 핑계를 대서 “배달 못한다”고 말했다 한다. 하지만 다른 배달 선배의 급작스런 부재로 그가 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 그는 피자집 사장님 옷을 걸쳐 입고 피자 헬멧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는 목소리를 바꿔 “맛있게 드세요”라고 전달했다고 했다. 그 선생님도 다행히(?) 그를 못알아 봤는지 “수고하세요”라며 그를 배웅했다고 했다. ‘’

국민가수 본선 출전한 고은성/TV조선

“그때 정말 어린 나이였지만 엄청 울었어요.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선생님이 건네신 ‘수고하세요’라는 말이 떠나질 않는 거에요. 선생님이 그토록 베풀어 주셨는데 제가 아직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며칠을 잠 못 이뤘죠.”

그는 배달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밤새 노래를 듣고,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배달하면서 전 세계 노래를 익혀갔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면 배달할 때 문제가 되기 때문에 입으로 되뇌고 배달하는 도중 엘리베이터에서 노래했다.’

/ 장련성 기자

◇그동안 받은 것 이상으로 긍정적 영향력 주는 사람 되고파

그는 ‘덮머’를 손가락으로 부스스하게 정리하더니 말한다. “어릴적 대전 친구들이 ‘너 성공한 거 보면 정말 기적같다’고 말해요”라며 웃는다. ‘건치미소’는 여전하다. “남들이 보면 너 편한 가정에서 잘 살면서 비싼 돈 주고 노래 배우다 TV나온 줄 알꺼 아니여. 그게 아닌데 말이지 참….” 친구들의 말을 그의 입을 빌려 말한다.

고은성은 노래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했다. 좋아하긴 했지만 그게 천직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했다. 그는 밝았고, 기죽는 법 없었지만 하고픈 게 생기면서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그가 선택한 건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이자 힘이 됐던 노래. 고등학교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나머지 시간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회복탄력성’ 그 자체인 고은성의 단단함은 경연을 치르는 동안에 확실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연관검색어에 나온다는 ‘고은성 볼’ ‘고은성 얼굴’. 당시 기자도 그 현장에 있었다. 준결승 때 이석훈 마스터가 “‘볼거리(이하선염)’ 때문에 얼굴이 부어있는 것”이라 했다. 그는 이하선염은 물론이고, 그에 앞서 갑작스런 형제상(동생상)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낼 때였다.

하지만 이석훈 마스터가 말한 장면은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혹시 그걸 제작진에 편집해달라고 부탁했냐 물었다. 사람에 따라서 개인적인 일이나 알리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선 함구 하도록 부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뇨. 그건 전혀 아니었는데, 제가 ‘초련’ 할때 이미 기관지염으로 고생했다는 게 나왔잖아요. 저는 경연하면서 뮤지컬 ‘헤드윅’ 주인공으로도 관객을 맞았고, 동시에 ‘젠틀맨스 가이드’ 준비도 하고 있었거든요. 어쩌면 다른 참가자 보다 두배 세배 더 힘든 일정이었 수도 있어요.

근데, 그게 제 일인 걸요. 만약 제가 기관지염에 볼거리 이런 식으로 계속 나왔다면, 저를 모르시는 분들께선 ‘쟤는 뭔데 계속 아파”’이러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제작진의 판단이 옳았다고 봐요.” 그는 경연 중에 형제상을 당했는데도 티를 내지 않았다. 팬들만 알고 고통을 함께 나눌 뿐이었다

TV조선

-그동안 어떤 말이 기억에 남았나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되나요?(웃음) 낭중지추요. 하하. 어느 선배님께서 해주신 말씀인데, 그 말이 되게 강하게 남은 건, 제가 그 말씀 덕에 제 삶의 태도와 향방이 정말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누군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남의 인생을 바꿀 수 있겠구나. 저도 삶을 조심하고 바르게 가꾸며 살면서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저를 찾아주신 많은 팬분들 덕분이고, 그만큼 저에게 손내밀어 주고 일으켜 주신 분들이 계셨다는 거잖아요.

뮤지컬 데뷔하고 ‘페임’(2011) ‘그리스’(2012) 등을 시작으로 많은 기회를 주신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님을 비롯해 뮤지컬 배우로 커나가는 데 많은 애정을 쏟아주신 김수로 대표님, 또 ‘헤드윅’을 비롯해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인 ‘젠틀맨스 가이드’ 등 다양한 작품을 기획 제작하신 ‘쇼노트’ 대표님 등 정말 감사한 사람이 많아요.”

고은성은 이번 국민가수 경연 마무리하면서 대전 내려가 최현규 선생님을 찾아 감사 인사드렸다고 밝혔다. “가시밭길 투성이 같던 제 인생에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난 덕분에 건널 수 있는 돌다리가 생겨난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말하자면 그 소중한 돌다리들이 모여 오늘의 고은성이란 ‘성’을 완성하게 된 거네요.

“하하. 그렇게 되는 건가요. 제가 예전엔 ‘언변에 능하다’ 이런 말씀을 듣긴 했거든요. 근데 나이가 들 수록 사람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게 듣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가치도 깊이 깨닫게 되죠. 진심 어린 충고도 중요하지만 때론 그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거든요. 말을 잘 듣다 보면 ‘귀를 열어라’하는 순간들이 온다고 하시던데, 요즘엔 듣고 판단하는 쪽으로 많이 옮겨진 것 같아요.”

-라이브 방송 등을 보니 톱7들 과도 빠르게 친구가 된 것 같은 모습이던데요.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울 때가 많아요. 톱 7, 톱 10 모두 동료가 됐으니까, 아니 동료도 아니고 반가족처럼 지내는데 응원을 더 많이 해줄 수 밖에 없죠. 마지막엔 이런 생각도 했다니까요. 비슷한 사람 성향 보고 뽑아주신건가 할 정도에요. 요즘엔 너무 애틋해 질까봐 미리부터 걱정되기도 해요. 하하. 나중에 헤어질 때가 되면 어떻게 이걸 견뎌낼까, 물론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다 만나겠지만 우린 가족 같은데 헤어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요.”

고은성은 뮤지컬 계 여러 대표님, 선후배를 통해 배우면서, 또 국민가수 경연에서 마스터분, 제작진, 출연진 등 다양한 분들과 조언을 듣고 나누면서 다른 이들에게 ‘귀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사람 인생이 바뀌는 걸 경험했잖아요. 저도 올곧게 살다 보면,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국민가수를 통해 이를 실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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