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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7년간 출근하며 일했더니 이제 와서 프리랜서니까 해고한다고요? [그래도 출근]

맹하경 입력 2022. 01. 0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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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5년부터 한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했어요. 작가는 PD를 따라 움직여요. '꼭지'라고 해서 PD가 맡은 프로그램에 어떤 작가를 데려가느냐로 일이 시작되죠. 저도 라디오와 TV를 오가며 7년간 일했어요. 물론 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죠. 작가 바닥에선 "이거 나랑 같이 할래?"라는 PD 말이 말 그대로 구두 계약서거든요. 프로그램이 휴방을 하거나 종방하면 같이 쉬게 되고, 그 PD가 새 프로를 시작할 때 데려가거나 다른 PD에게 추천이 되는 식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그런 구조가 관행이었죠.

그러다 2020년 방송국에서 계약서를 한 장 내밀더라고요. 아마 그때쯤 방송작가와 방송국 사이 부당해고 관련 소송이 있었나 봐요. 그걸 의식했던 건지, 업계 전반적으로 표준 계약서를 쓰기 시작한 거 같아요. 방송국 다니면서 처음 보는 계약서에 솔직히 기분이 좋았어요.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찾아오는 개편 때마다 마음 졸일 필요 없고 나도 이제 어딘가에 소속되는구나….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땐 꿈에도 몰랐죠. 그 계약서가 1년짜리 프리랜서 계약서였고, 이게 해고의 빌미가 될 줄은. 계약서에 써 있는 만료일 한 달 전에 회사는 일방적으로 계약 만료니까 나가야 한다고, 그것도 말로 전달하더군요.


전혀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게티이미지뱅크

제가 지금까지 일한 시간을 돌아보면, 프리랜서랑은 정말 거리가 멀었어요. 저는 일주일에 한 편씩 나가는 프로그램의 '1인 담당 작가'였어요. 유명한 대형 프로에는 작가만 메인 작가, 서브 작가 등 여러 명이 붙거든요. 전 혼자 다 해야 돼서 1주일 단위로 업무 스케줄이 빡빡하게 차 있었어요. 또 방송이라는 게 다른 부서 직원들과 계속 수시로 소통해야 만들어지거든요. 매일 출퇴근 시간이며 장소도 항상 고정돼 있었어요.

방송작가 본연의 일인 '원고 집필 및 구성 활동'만 한 것도 아니에요. 정말 프리랜서라면 계약서에 나와 있는, 작가가 해야 하는 일만 딱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방송국 정규직 스태프들이 해야 하는 일들도 다 제 몫이었습니다. 패널 섭외는 물론이고 물티슈 심부름 같은 비품 구매부터 행정 업무, 녹화 테이프 관리까지 제가 했어요. 원고를 보내라든가 수정하라는 PD의 지시는 밤 12시건, 새벽 6시건 가리지 않고 받았고요.

분명 저는 정직원과 다를 바 없이 근무를 했습니다. 그것도 7년이란 시간을 한결같이 함께 일한 동료인데, 1년짜리 프리랜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쉽게 자를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계속 작가 일을 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A씨(27세 여성·방송작가)


'프리랜서≠근로자' 맞는 공식일까?

열악한 방송작가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가 2017년 출범했다. 김한별 부지부장 제공

A씨처럼 방송작가의 90% 이상이 프리랜서 위탁계약서라는 걸 작성합니다. 일을 시킬 땐 정직원처럼 부려먹고, 해고할 땐 프리랜서라며 휴짓조각 버리듯 정리하려 하죠. 계약서에 프리랜서라고 적혀 있고,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근로자)가 아니므로, 계약만료 통보라는 이름의 부당해고를 당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다행히도 우리 대법원 판례는 계약서 같은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계약의 실질', '근로의 실질'을 더 중요하게 보는 추세입니다. 실질적으로 지휘명령이나 감독을 받으면서 일을 했는지, 아니면 진짜 프리랜서로 독립적 업무를 수행했는지를 들여다본다는 뜻입니다.


첫걸음, '근로자성 인정받기'

A씨의 경우, 지방노동위원회를 통해 먼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실질적으로 수행한 업무를 보니→근로자로 인정이 되고→그러므로 부당해고가 맞다'는 판단을 이끌어내야 하죠. 그다음 A씨가 원하는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게 전체적인 흐름입니다.

근로자성을 가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지 여부입니다. 자신이 제공한 근로의 실질이 사용자의 지시와 감독 아래에 있고,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했다는 점이 명확하다면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근무 시간과 장소가 지정돼 있었는지, 근로 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이 인정되는지, 개인 물품이 아닌 회사 비품을 사용했는지 등도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특히 방송 프로그램 제작은 작가가 PD 등 다른 근로자들과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하는 필요성이 큰 업무이죠. A씨도 방송사라는 조직에 편입되어 7년간 근로를 제공했기 때문에 이런 근로의 실질을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업무 지시나 출퇴근 등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서 증거로 제출하면 됩니다.


프리랜서 위탁계약, '근로자로 인정' 추세

김한별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이 찍은 다큐멘터리 '일하는 여자들'의 한 장면. 김 지부장 제공

프리랜서가 노동관계법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문제 제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고용노동부가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에 대해 지난해 4월 27일부터 장장 8개월의 근로감독을 실시한 것도 방송작가 근로자성을 살펴보고 적절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어요.

같은 해 12월 30일 발표된 결과를 살펴보면,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에 대해 근로자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근로자로 인정된 작가들은 위탁계약에 따른 원고 집필 업무 외에도 사측 요청으로 자료 조사, 출연자 섭외 지원, 행정비용 처리 등 다른 업무도 함께 수행했고, 방송 소재를 고르거나 원고를 수정하는 등 업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지휘와 감독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된 이들은 원고 집필에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고, 일방적 지휘·감독을 받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상당한 책임과 권한을 갖는 경우였어요.

고용노동부는 근로자로 판단된 작가에 대해 근로계약서 체결 등 노동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각 방송사에 개선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지상파 3사뿐 아니라 다른 방송 제작 종사자로도 고용구조 점검과 개선을 확대하기로 했고요. 방송 작가뿐 아니라 정수기 수리기사 등 특수고용직들도 최근 들어 근로자로 인정되는 추세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낸 '2020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 결과

"계약 만료" 구두 통보도 엄연한 '부당해고'

이런 추세를 고려하면 A씨도 노동위에서 근로자로 판단될 것입니다. 게다가 해고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5인 이상 사업장은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해고 통지서를 서면으로 근로자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구두로 통보한 A씨 방송국은 그 형식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부당해고를 행한 게 됩니다. 근로자성과 부당해고를 최종적으로 인정받으면, 원직복직과 함께 계약 만료를 이유로 받지 못했던 밀린 월급도 정산받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다만 빨리 끝나지 않는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방노동위가 열리면 당일 결론은 나오지만, 이 결론이 나오게 된 이유를 담은 판결문은 보통 30일 정도 뒤에 노동자와 회사 양쪽에 발송합니다. 판결문 발송 10일 이내에 한쪽이 이의를 제기하면 중앙노동위원회로 넘어가게 됩니다. 지방노동위가 1심이라면 중앙노동위는 2심인 격이죠. 여기에서도 불복하면 3심 행정심판까지 싸움이 길어질 수도 있어요.

보통은 회사 쪽에서 최대한 시간을 벌려고 하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을 다 채우려 합니다. 행정절차를 감안하면 3, 4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이 노동자들에겐 힘들고 지치는 일일 수 있지만, 한국여성노동자회를 포함해 다양한 지원 단체들의 지원과 지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노동자회(대표번호 1670-1611)는 전국 11개 지부(서울·인천·부천·전북·광주·안산·부산·마산창원·대구·수원·경주)에서 '평등의전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차별과 성희롱을 비롯해 임금체불, 부당해고, 출산이나 육아를 이유로 하는 불리한 대우, 폭언·폭행 등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겪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도와줍니다.

정리=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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