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한번 못해

이용수 기자 2022. 1. 6.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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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갈등 시대의 '한중 수교 30년'] [3] 끊이지않는 對中 사대외교
시진핑 신년회견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1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신년 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양안(중국·대만) 동포들의 공통된 염원”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자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다음 날 “베이징의 군사적 모험주의 확장을 막도록 일깨워 줘야 한다”며 반발했다. /AP 연합뉴스

작년 6월 10일 한국 외교부가 발칵 뒤집혔다. 중국 외교부가 한·중 외교장관 통화 소식을 전하면서 양측이 비공개하기로 한 민감한 내용들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의 중국 견제 구상인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맹비난하며 정의용 장관에게 “(미국의) 편향된 장단(偏節奏)에 휩쓸려선 안 된다” “옳고 그름(是非曲直)을 파악해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라”고 하는 등 훈계조의 발언을 쏟아냈다.

대등한 주권국가 사이에서 오갔다고 믿기 어려운 대화였다. 더구나 상대방이 난처해할 내용을 공개해 뒤통수를 친 것은 외교적으로 금기에 속하는 비신사적 행위였다. 하지만 한국 측이 중국에 항의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30년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 단적인 장면”이란 말이 나왔다.

중국을 상대해 본 전·현직 외교관 상당수는 “중국의 비외교적 행태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많다”고 말한다.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양제츠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2018년과 2020년 방한 당시 ‘서울에서 보자’는 한국 측 제안을 일축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들(정의용·서훈)을 부산으로 불러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의 무례는 정파를 가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2010년 11월) “한국에 갈 테니 서울공항을 비워달라”는 일방 통보와 함께 중국을 출발한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도착과 동시에 대통령 면담을 요구해 한국 외교부가 당황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한국을 말로만 전략적 동반자라 부르고 실제론 속국 대하듯 하는 중국의 안하무인격 태도는 ‘소국은 대국을 따라야 한다’는 중화사상·대국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부터가 2017년 4월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하는 등 중국 관리들의 시대착오적 한반도관(觀)은 뿌리가 깊다.

고구려사를 통째로 훔쳐간 동북공정, 김치·한복·태권도는 물론 민족 시인 윤동주까지 중국 것이란 억지도 비뚤어진 역사관과 궤를 같이한다. 중국 군용기들의 서해상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진입이 일상이 되는 등 서해 전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공정이 갈수록 대담·빈번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2016~17년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에 반발해 융단폭격식 보복 조치를 퍼붓고, 관제 혐한 시위가 봇물을 이룰 때도 이를 조장·두둔하던 중국 관영매체들의 논리는 ‘소국이 대국의 이익을 크게 침해했다’는 것이었다. 2016년 12월 한국의 연기 요청을 무시하고 방한한 천하이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은 한국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중국의 노골적 하대와 부당한 보복에 항의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달래기 위해 2017년 10월 ‘미국 MD(미사일방어) 참여,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겠다’(사드 3불)고 약속해 군사주권 포기 논란을 자초했다. 그 직후 방중한 문 대통령은 베이징대 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작은 나라’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으로 표현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대중 사대외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이 1992년 수교 이래 줄곧 외교부 부국장 또는 국장급의 실무자를 주한대사로 파견하는데도 한국은 꾸준히 장·차관급 인사를 주중대사로 내정했다. 중국이 평양엔 예외없이 부부장(차관)급 대사를 보내면서 대놓고 남북을 차별하는데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이는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통일 국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 최대 교역 상대와의 불편한 관계는 커다란 경제적 손해라는 공포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를 묵인·방조했다. 사드 보복,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한국 경제에 독이 된다는 점도 확인됐다. 외교 원로들을 중심으로 “중국을 과대포장해 온 거품이 걷힌 만큼 수교 30주년이자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는 한·중 간의 비상식적 갑을관계를 정상화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분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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