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유럽의 '反中 파트너' 국가에 반도체·부품 투자 몰아준다

이슬기 기자 2022. 1. 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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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대사관에 '타이베이' 대신 '대만' 표기
발끈한 中, 기술 교류 중단하고 고강도 경제 보복
'TSMC 보유국' 대만, 반도체·레이저에 2억弗 투자
美, 獨도 측면 지원 "리투아니아 편에 함께 설 것"
지난해 11월 18일(현지 시각)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공식 개관한 대만의 외교공관 '대만대표부' 앞에 명판이 설치돼 있다. /AFP 연합뉴스

대만이 중국과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동유럽 국가 리투아니아에 반도체 등 핵심산업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2억 달러(약 24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최근 리투아니아가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대만대사관 명칭으로 ‘타이베이(대만 수도)’ 대신 ‘대만대표부’를 사용해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하자 대만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선 것이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주재 대만대표부의 에릭 황 대표는 5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고 리투아니아산 상품 수입 및 산업 투자 용도로 2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재원은 대만국가발전기금에서 마련키로 했다. 황 대표는 “새로운 투자 펀드는 양국관계와 대만, 리투아니아 모두의 발전에 기여할 전략 산업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가장 먼저 반도체를 비롯해 레이저, 생명공학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를 보유한 ‘반도체 강국’ 대만이 리투아니아에 반도체와 관련 부품 관련 투자를 적극 몰아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계속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이 올해에도 여전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대만은 세계 반도체 위탁생산 점유율 53%에 달하는 영향력을 외교적으로도 발휘하려는 전략이다.

지난해 11월 29일 마타스 말데이키스 리투아니아 국회의원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나 경제적·정치적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선물을 건네고 있다. /EPA 연합뉴스

특히 중국이 지난달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교류를 중단한 리투아니아의 레이저 기술은 반도체 산업에도 활용된다. 레이저는 리투아니아 산업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경쟁력을 분야로 꼽힌다. 피코초(10⁻¹²초) 단위 레이저의 경우 리투아니아가 글로벌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IBM, 도요타 등이 주요 고객이다. 이 기술을 앞세워 반도체 강국인 대만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매년 레이저 생산량의 80%를 수출해 약 2000만 유로(약 270억원)를 벌어 들인다. 정부는 국가 차원의 투자를 늘려 오는 2025년까지 레이저 관련 매출을 GDP의 1%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대중국 수출 규모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기준 리투아니아의 대중국 교역 비중은 1%대에 불과하지만, 레이저 관련 비중만 따지면 적지 않다. 대만은 이 분야에 지원금을 집중 투자해 반중(反中) 파트너인 리투아니아의 경제적 충격 완화를 계획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지난해 11월 개설된 ‘대만대표부’ 현판 앞에서 대표부 직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만 외교부 홈페이지

대만대표부가 문을 연 건 지난해 11월이다. 다른 나라들이 대사관 명칭으로 타이베이를 쓰는 것과 대조적으로 리투아니아는 자국의 대만대사관 명칭을 대만대표부로 허용했다. 여기에는 40년 간 소련의 압제를 경험한 리투아니아 특유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과 반중국 여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올라프 숄츠 독일 내각의 외교적인 측면 지원도 한 몫을 했다.

리투아니아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반러시아 정서가 강해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반체제 인사들이 망명하는 경우가 잦다. 2004년에는 미국이 이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다. 러시아와 함께 반미 연합 전선을 구축한 중국과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홍콩 시민들은 리투아니아의 과거 독립운동(일명 발트의 길)을 모방해 60km 인간 띠를 만들며 중국에 대항했다. 이에 리투아니아 국민들도 중국의 홍콩 탄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며 반중 시위에 동참한 바 있다.

중국은 대사관 사태 직후 리투아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급으로 낮추며 즉각 항의했다. 이후 리투아니아 제품의 수입을 돌연 제한해 선박이 중국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거부되는 등 경제적 보복 조치도 잇따랐다. 또 독일의 차량 부품회사 콘티넨탈에 리투아니아산 부품을 쓰지 말라고 압박했다. 다만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리투아니아에 대한 보복 조치를 부인하고 있다.

중국의 고강도 보복에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대표부 이름에 타이베이 대신 대만을 쓰도록 한 것은 실수”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리투아니아가 곤경에 처하자 대만은 최근 리투아니아산 럼주 2만400병을 구매했다. 당초 중국으로 수출될 예정이었지만 대표부 사태 이후 중국의 보복에 따라 통관이 막힌 상황이었다. 이에 대만 정부는 수출이 막힌 럼주 전량을 수입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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