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탈원전 '우상' 내려놓고 합리적 에너지 전환 정책을"

유병권 기자 입력 2022. 1. 10. 11:30 수정 2022. 1. 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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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 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대선 후보 중 세계 10위 경제 규모에 맞는 글로벌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 - ③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인터뷰 = 유병권 정치부장, 정리 = 김유진 기자

국가 발전·성장 한계…국제감각·글로벌 비전 가진 지도자 필요

제왕적 대통령제,후진 정치 원인… 국민통합 차원 개헌 검토를

탄소중립위원회, 대통령 직속 독립적·중립적 기구로 운영해야

한·중관계는 미·중관계 틀속서 정립… 전략적 모호성 유지 위험

종전선언, 북한 비핵화 초점 흐려… 한미 훈련 폐지 빌미만 제공

오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진 신년 인터뷰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 사회에 국제적 감각을 가진 지도자가 없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로했다. 한국이 명실상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음에도 국제사회에서 그에 걸맞은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 전 총장은 한국이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이나 국제기관에 하는 원조)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나 북한 인권과 같이 국제사회가 공감대를 가진 가치문제를 외면하는 행태를 거론하며 “한국이 성장의 한계점에 봉착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 전 총장은 “우리가 유엔 분담금은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이 내는데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은 0.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0.3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꼬집었다.

―2021년 한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그룹A(아시아·아프리카)에서 그룹B(선진국)로 승격됐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떤 수준인가.

“한국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압축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역동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나라라는 점을 국제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우리 국민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UNCTAD가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 승격시킨 일도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최초이자 유일한 일이다. 한국은 2020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경제규모 세계 10위, 무역규모 세계 8위를 기록했다.”

―‘K’ 문화로 상징되는 비경제적 영향력은.

“몇 년 전부터는 기생충·미나리 같은 영화와 BTS의 음악, 오징어게임 등 드라마를 아우르는 K-콘텐츠 열풍 속에 손흥민·김연경 등 운동선수들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문화국가로서의 위상도 상승했다. 이런 국가 위상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초청, 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4G) 개최 등 각종 다자외교무대에서 우리의 역할과 임무가 커지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국이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개발도상국에 대한 ODA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유엔은 GNI 대비 0.7%를 ODA 기준으로 제시하는데 이를 이행하고 있는 나라는 스칸디나비아 3국 등 몇 개 나라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 평균은 GNI 대비 0.35%인데 우리나라는 현재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0.15%를 ODA에 쓰고 있다.”

―기후 위기 등 국제 이슈 분야에서 한국의 역할은.

“2030 유엔 지속가능한개발목표(SDGs)와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이행에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나서서 우리의 위상을 더 높여야 한다. 나는 2020년에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을 통해 ‘SDGs 5년 평가와 향후 10년의 과제’(Redesign Our Future)라는 연구서를 출간하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2025 SDGs Summit’ 개최를 제의했다. 이것이 구테흐스 총장의 업무계획에 ‘2025 Social Summit’으로 포함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와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새 정부는 이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 외교가 중시되는 시점에 한국은 3년 연속 북한 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은 평화, 개발과 함께 유엔의 3대 축을 구성한다. 인권이 존중되지 않고는 평화로운 세상을 기대할 수 없고, 지속 가능한 국가 개발도 실현하기 어렵다. 북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건 유엔 등 국제사회의 공통된 평가다. 우리는 같은 민족인 북한 인권 문제에 각별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문제 개선을 위해 국제사회와 공동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에 3년 연속 불참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문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구상과 관련,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탄소 중립 속도를 높이는 것에 대해 산업계의 우려가 나온다. 이런 불균형 문제는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그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9위의 탄소 배출국임에도 ‘2030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해외 석탄발전소에 금융지원을 하는 것 때문에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란 오명을 쓰고 있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이토록 중요한 국가 대사를 매우 형식적으로 대하는 것에 실망을 느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 첫째, 탄소중립위원회를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고 국민권익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구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둘째, 탈원전이라는 ‘우상(偶像)’을 내려놓고, 합리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의 글로벌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이 미·중 전략 경쟁으로 꼽힌다.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 모두 중요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외교를 해야 하나.

“서로 협의해 나가면서 한·미 관계를 강화하고, 양 국가의 공동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종전선언 등 구체적인 문제들에 접근하는 기본이 돼야 한다. 한·중 관계는 미·중 관계의 틀 속에서 정립해야 한다. 미·중 대결 국면에서 많은 나라가 민감하고 불편한 상황에 처한 게 사실이다. 미·중 간 한쪽 편만 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얘기도 있으나 전략적 모호성은 우리의 위치에서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안미(안보는 미국)와 경중(경제는 중국)이 충돌할 때는 안미가 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기본적 인식 아래 외교를 설계해야 한다.”

―문 정부 5년간 악화한 한·일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우리 국민 정서에 영향을 미치지만 과거는 직시하고 교훈을 얻어야 하는 대상이지 대립하고 충돌하기 위한 게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일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우리 국익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는 일본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 일본 같은 전통우방국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한국은 점점 더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 외교의 큰 주제가 당분간 남북, 동맹, 중국 관계일 것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외교의 신 지평을 신남방국가, 믹타(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터키·호주가 참여하는 중견국 협의체), 개도국 등으로 확대해 나가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 대화의 입구라는 문 정부의 주장처럼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나.

“정부는 종전선언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입구·수단으로 유용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외교 역량의 전부를 쏟아붓고 있는데 종전선언은 하나의 수사적 선언, 정치적 선언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 재개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의 비핵화 초점을 흐리게 하는 역효과만 낼 것이다. 우리 국민의 대북 안보태세를 해이하게 하고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은 자강을 위한 우리의 군사력 강화를 적대시 정책으로 여겨 억지를 부리고 중단·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북한으로 하여금 유엔사는 해체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폐지 등을 주장하는 빌미만 제공할 것이다.”

―차기 정부에 외교·안보 정책 조언을 한다면.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24일 미국의 소리(VOA) 인터뷰에서 “저의 의문은 종전선언을 하면서 무엇을 얻으려는 건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라고 회의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이것은 사실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종전선언에 설령 합의하더라도 지금까지의 북한 태도를 볼 때 그것을 온전히 지킬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없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는 사람이 잘못(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지금은 종전선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도록 끈기 있고 일관성 있게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임기 말에 한·미 동맹에 불협화음을 낼 수 있고, 내용조차 불분명한 종전선언에 소중한 외교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새 정부 출범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지난 2017년 ‘국민대통합’과 ‘정치교체’를 내걸고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2017년 당시 나는 명시적으로 대권 도전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국가 대통합과 정치교체가 국가발전에 절실하다는 신념과 소신으로 국민의 의견을 들은 뒤 나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던 것이다. 지난 5년간 우리 정치는 오히려 후진했다고 생각한다.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국민을 두 진영으로 가르고,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리민복보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지금의 정치는 그 행태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국민분열, 후진 정치의 근본적인 원인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국민통합·정치교체 차원에서 개헌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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