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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표를 넘어 1인 1원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김찬휘 입력 2022. 01. 1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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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지방선거를 통해 본 선거제도 개혁의 과제] 정치기본소득

2020년 위성정당 사태로 얼룩진 미완의 선거제도 개혁. 선거제도개혁연대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본다. <기자말>

[김찬휘 기자]

지난해 말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등 4개 정당(변혁당은 법외정당이라 미포함)에 정치 후원금을 기부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후원금센터나 중앙당후원회, 정치인후원회 등을 통해 입금된 후원금은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해 주고, 10만 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15%, 3000만 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25% 세액공제 해준다. 이 제도를 활용해 진보정당을 밀어주자는 취지였다.

세액공제라 하면 산출된 세금 액수에서 아예 빼주는 것을 말하므로 10만 원의 정치 후원금을 내면 나중에 세금을 10만 원 깎아주기 때문에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정치 자금을 기부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제도가 있었단 말이야? 올해부터는 꼭 이용해야지,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돈.
ⓒ peakpx
 
하지만 이 제도의 설계가 '세액공제'이며 본인 지출분만 공제 대상이고 배우자와 부양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잠깐만 생각해 보자. 본인 세금에서 깎아준다면 세금을 내지 않는 가사노동자, 학생, 취업준비생, 실업자 그리고 과세 대상 소득이 면세점 이하인 저소득층에게 이 제도는 아무런 혜택이 없는 제도다.

다시 말해 정치자금 세액공제 제도는 '경제활동인구'를 중심에 두고, 그중에서도 특정 액 이상의 세금을 내는 소득자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따라서 이 제도를 주로 활용하는 사람은 중산층 이상, 중장년 이상의 남성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넓게 보면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에 위배된다. 정치 활동에 있어서 정치 자금은 피와도 같은 것인데 이 '정치적 수혈의 권리'가 특정 계층, 특정 성별의 유권자에게 치우치게 주어져 있다면 평등한 참정권은 이미 부정돼 있는 것이다.

'달러로 투표하기'와 '정치기본소득'

그럼 어떻게 하면 선거권이 있는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한 '정치 자금 참여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 국가에서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한 액수의 '정치 자금 쿠폰'을 먼저 발급하여 유권자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기부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 아이디어는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브루스 애커먼(Bruce Ackerman)과 이언 에어스(Ian Ayres)가 공저한 <달러로 투표하기(Voting with Dollars)>(2002)에서 일찍이 제안됐다. 애커먼과 에어스는 선거가 있는 해에 유권자 1인당 50달러(patriot dollar, 애국 달러)를 나눠주고 지지하는 후보에게 후원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미사용분은 국고로 회수되며 후원금은 익명으로 전달된다.
 
투표일에 모든 표를 동등하게 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미국 시민은 정치자금 모금 결정에서도 지금보다 더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투표일에 똑같이 하나의 투표권을 받듯이, 그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정치인에게 자금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특수한 신용카드도 받아야 한다. (<달러로 투표하기>)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2017년 '정치기본소득'을 제창했다. 강 교수는 <기본소득과 정치개혁-모두를 위한 실질적 민주주의>(2019)에서 이 생각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18세 이상의 모든 유권자에게 매년 1인당 10만 원(공직선거가 있는 해에는 5~10만 원 증액)의 정치배당금을 지급하고, 이 돈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나 정당을 후원하게 하자는 것이다. 역시 미사용분은 국고에 귀속된다.

후원금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후원금 사이트에서만 접수받고 후원자는 익명으로 하되 후원자의 수와 후원금만 공개한다. 정치인 1인당 후원금 한도를 설정하고, 배당금의 일정 비율을 정당 후원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할 수 있다.

정치기본소득은 정치후원금을 내고도 세액공제로 전부 혹은 일부를 돌려받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1인 1표를 넘어 1인 1원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기본소득은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평범한 시민의 정치 냉소를 걷어내고 정치 참여 의식을 고취하며, 소수정당과 정치 신인의 정치 활동을 용이하게 하며, 정치인으로 하여금 돈이 아니라 민의에 반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 달러
 
 지난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로 출마해 정치기본소득을 주장한 앤드류 양(Andrew Yang).
ⓒ 앤드류양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로 출마한 앤드류 양(Andrew Yang)이 이 생각을 이어갔다. 앤드류 양은 '민주주의 달러'(Democracy Dollars)라는 이름으로 선거가 있는 해에 모든 미국의 유권자에게 100달러(약 12만 원)를 지급하여 지지하는 후보에게 후원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왜 앤드류 양은 이 돈에 '민주주의'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상위 1%의 초고액 정치 기부자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에 초부유층과 로비 단체들의 목소리만 반영될 뿐 평범한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것은 정치 자금의 왜곡된 흐름에 있다는 것이다.  
 
공직 출마자가 겪는 커다란 문제는 돈을 얻는 것과 지지자를 얻는 것인데, 이 두 개는 완전 별개의 것입니다. 만약에 모든 미국인이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에게 100달러를 기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만 명의 지지자를 얻는다면, 100만 달러도 얻게 됩니다. 이제 부자와 기업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당신이 대변하는 사람들의 이익에 맞게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앤드류 양)
 
모든 미국 유권자에게 100달러를 손에 쥐어주면 총액이 230억 달러(약 27조 원)가 넘게 된다. 2016년에 쓰인 연방 선거 자금의 총액이 65억 달러, 그 중에 검은 돈이 16억 달러(약1조9천억 원)라는 점을 감안할 때, 230억 달러는 이것을 무력화시키게 충분한 돈이라는 것이다. 초부유층과 불법 자금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보통 시민들의 민의와 의지가 피력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100달러의 작은 돈이 가져올 엄청난 위력이라는 것이다.

2020년 21대 총선 기준으로 대한민국 유권자수는 약 4400만 명에 달한다. 모든 유권자에게 10만 원의 정치배당금을 지급한다면 4조4000억 원이 된다. 이것을 정당에게 지급되는 경상보조금과 선거 기탁금 및 선거 비용 보전에 쓰이는 액수와 비교해 보자. 2021년에 정당별 경상보조금은 8개 정당에 총 462억7000만 원이 지급됐다. 2021년 4분기 기준으로 두 거대 정당이 85.47%의 보조금을 독식했다. 원외 정당으로서는 민생당만 수령했을 뿐이다.

선거비용 보전액은 21대 총선 기준으로 총 897억 원이다. 득표율이 15% 이상이 돼서 선거비용을 100% 국고로 보전받은 지역구 후보는 총 515명이었는데,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후보자 비율이 92.2%였다. 한마디로 국가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정치자금을 두 거대정당이 거의 다 나눠먹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상보조금과 비용 보전액을 합쳐봤자 1500억 원이 안 된다. 정치기본소득을 받은 유권자의 50% 정도만 후원금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그 금액은 2조 원이 넘는다. 2조 원이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여러 정당과 참신한 정치신인들, 청년 정치인들에게 골고루 나눠진다고 생각해보자. 이 제도는 썩어빠진 대한민국 정치의 근간을 흔들 것이다.

민주주의 바우처
 
 미국 시애틀의 '민주주의 바우처' 로고
ⓒ 김찬휘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 천만에. 실제로 미국 시애틀 시는 2017년부터 지방선거에 '민주주의 바우처(Democracy voucher)'라는 이름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시애틀 시는 부동산세(주택소유자 평균 연간 8달러 과세)를 재원으로 시민들께 25달러짜리(3만6000원) 바우처를 4장 제공하고 시의회와 시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후원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후보가 이 바우처를 받으려면 250달러 이상(시장 선거는 500달러 이상)을 후원한 바우처 이외의 기부자가 1명도 없어야 하고, 시와 25만 달러(약 3억 원) 이상의 계약을 한 사람이나 기업으로부터는 후원금을 일체 받지 않아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다.

바우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선착순 신청을 해야 하는데 2017년에는 2만727명, 2019년에는 3만8092명으로 참여자가 늘고 있다. 2017년 첫 해에는 기부자의 수가, 이 제도 시행 이전에 비해 3배나 증가했다. 2021년에는 시장 선거에 처음 도입됐는데, 2021년 동시 지방선거 전체에 걸쳐 25달러 바우처 13만5882개가 후원됐고 총액 339만7050 달러(약 40억 원)가 기부됐다. 시애틀시 홈페이지에는 각 후보가 몇 개의 바우처를 받았고 얼마를 기부받았는지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주권자 정치배당은 선거운동 방식을 전혀 다르게 변화시킬 것이다. 미국처럼 유권자 몇 명으로부터 얼마의 정치후원금을 모금했는가가 후보 경선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소수의 부자 지배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앞다투어 개발하게 될 것이다. 부자 지배엘리트의 정치적 영향력은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다. 부자 지배엘리트로부터 받던 금액의 수십 배에 해당되는 금액을 주권자로부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에 대한 진입장벽도 낮아질 것이다. 정치인에게도 해방의 수단이 될 것이다. 정치인은 검은 정치자금이 불필요하게 되므로...검찰이나 집권당의 자의적 권력으로부터도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소득과 정치개혁-모두를 위한 실질적 민주주의>, 강남훈)
 
중요한 것은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먼저 후원금을 내고 뒤에 세액공제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배당금을 먼저 지급하고 뒤에 후원금을 내게 하는 것이다. '후원하고 돌려받는' 현재의 제도를 '지급받고 후원하는' 식으로 순서를 바꾸는 간단한 묘수 하나로 바뀌게 될 정치 환경을 상상해 보라. 꿈은 실현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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