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엄마 옷' 입고 누군 '명품 플렉스'..20대 옷장 열어보니 [패션, 지구촌 재앙 됐다]

김연주 2022. 1.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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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1995~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패션 소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편에선 이들 덕에 패션이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고 하고, 반대편에선 이들 탓에 환경에 부담이 되는 패스트패션과 울트라패스트패션(초고속 패션)이 계속된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중고 매장에서 산 코트를 입고 패션 잡지 보그의 표지를 촬영한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8)와 방대한 옷장의 소유자로 10대의 패션 우상인 유튜버 엠마 체임벌린(20)이 동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평범한 젠지(GenZ·Generation Z)는 어디에 가까울까. 한국 20대 6명의 옷장을 열어보았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대상자와 패션에 관심이 많은 대상자를 골고루 섭외했다.

보그와 코스모폴리탄에 실린 그레타 툰베리(완쪽)와 엠마 체임벌린. [사진 보그, 코스모폴리탄]

Z의 옷장 기본은 저탄소


이시현(좌) 이채윤(우) 옷장. 이시현 씨는 에코백 등의 친환경 의류를 선호한다. 이채윤 씨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 150벌 넘는 옷을 보유하고 있다.
엄마가 입던 청바지, 200만원대 유명 브랜드 코트, 유행 타지 않는 패딩, 빈티지 체크무늬 코트. 여섯 개의 옷장은 제각각 주장이 강했다. 예상대로 환경에 관심이 많을수록 옷장은 단순했다. 패션을 즐겨 빈틈없이 꽉 찬 옷장도 있었다. 6명 모두 “옷을 사지 않는 게 환경을 위한 최선”이라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옷이 많다고 환경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기후변화청년단체(Green Environment Youth Korea, GEYK)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강다연(24)씨는 “옷이 많으면 필연적으로 세탁 등을 자주 해 환경을 오염하게 된다”고 말했다. 환경 활동가인 이시현(26)씨 역시 “겨울 패딩은 7년째 입고 있다. 옷을 적게 사고 오래 입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6명 중 자칭 ’옷 덕후’인 이채윤(22)씨는 “터질 것 같은 옷장을 갖고 있어 한때 ‘토하는 옷장’이라는 패션인스타그램도 운영했다”고 소개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를 좋아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빈티지 옷도 자주 산다. 하지만 이씨는 "패션은 포기하지 못하지만, 환경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는 구제만 사 입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고 의류 선호, 탄소발자국 줄여


중앙일보는 이들의 옷장과 의류 구매 습관을 조사해 미국 중고 의류 플랫폼 스레드업(thredup)이 제공하는 탄소발자국 계산기를 돌려보았다. 얼마나 자주 어디서 옷을 사는지, 옷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어떻게 버리는지와 같은 습관이 옷장 탄소 배출 정도를 결정한다.

여섯 옷장은 최저 31kg, 최고 263kg으로 모두 스레드업이 제시한 평균 옷장(734kg)보다 적은 탄소발자국을 기록했다. 일상적으로 중고 옷을 사고파는 습관이 평균(151kg)을 크게 낮췄다. 스레드업에 따르면 중고의류는 새 옷보다 탄소발자국을 60~70% 적게 남긴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는 Z세대의 쇼핑 습관 역시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최근 취업한 이시현씨는 지난해 총 18벌을 샀다. 6명 중 두 번째로 많은 옷을 구입했지만, 탄소발자국은 144kg으로 높지 않았다. 비슷한 수량을 산 김희찬(가명·27)씨의 절반 수준이다. 이씨는 “열 벌 중 일곱 벌이 중고 의류인 데다가, 같은 디자인이나 가격이면 되도록 친환경 의류를 산다”고 말했다.

이한울(좌) 김희찬(우)의 옷장. 두 사람다 패션에 관심이 많지만 이한울 씨는 구제의류에, 김희찬씨는 고가의 하이엔드 의류를 주로 산다.

패션과 환경 둘 다에 관심이 많은 이한울(24)씨의 꽉 찬 옷장도 126kg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이씨는 “옷을 많이 사지만, 광장시장에서 구제 의류를 고르는 것을 좋아한다”며 “옷을 아끼는 만큼 잘 관리해 오래 입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강다연(좌) 박나영(우)씨의 옷장. 옷을 적게 사는 두 사람의 옷장이 가장 적은 탄소발자국을 남겼다.

6명 중 강다연씨의 옷장 탄소발자국이 가장 적었다. 정말 필요할 때만 옷을 산다는 강씨는 지난해 8벌을 샀지만 옷장 탄소배출량은 31kg에 그쳤다. 자취방이 좁아 연간 7벌만 산 박나영(22)씨의 옷장은 96kg을 배출했다. 가짓수는 박씨가 한 벌 적지만 새 옷이 포함돼 강씨보다 옷장 탄소발자국이 높았다.

옷장 6개의 공통점은 기성세대보다 중고 제품을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 단체에서 일하거나 활동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옷을 교환해 입거나 의식적으로 중고 의류만 찾았다. 하지만 관련자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중고를 즐긴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중고 의류는 단순히 ‘남이 입던 옷’이나 ‘헌 옷’이 아니었다. 오히려 되팔 만큼 투자 가치 있는 옷, 쉽게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 좋은 소재를 싸게 구매할 기회를 의미했다.

이는 환경에 대한 의식과 함께 경제적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종사자로 패션의 역사에 관한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인 김희찬씨는 “옷을 살 때 원단과 디자인의 품질을 꼼꼼히 살핀다”며 “‘코히어런스(일본 외투 전문 브랜드)’, ‘알든(미국 남성 제화 브랜드)’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원단이 좋은 옷은 새로 사기에 너무 비싸 중고로도 많이 산다”고 말했다.

6인의 Z세대 옷장 열어보니.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SNS, 가치소비 과시소비 동시에 부추겨


인터뷰에 응한 6명은 동년배들이 모두 가치소비(가격이 높아도 우수한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 선호)를 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부모 세대(N86·X세대)와 비교하면 그 경향이 강하다는 데 동의했다. 이시현씨는 “우리 세대는 돈이 없어 못 먹거나 못 사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가치와 개성 취향 등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부모님 세대보다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옷장 지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물론 명품이나 ‘신상’으로 스토리(인스타그램 게시물)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도배하는 Z세대도 많다. 이채윤씨는 “누군가는 SNS에 명품을 소비하면서 ‘능력자’임을 자랑하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명품은 허영이라고 생각하면서 환경 보호 등 가치를 내가 쓰는 물품을 통해 보여주는 게 더 멋지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가 소비하는 걸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많다 보니 친구끼리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답했다.

정반대 성향으로 보이는 가치소비와 과시소비가 소셜미디어 세계 속 동전의 양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병길 한국세대융합연구소 연구원은 “SNS에 명품을 올려 경제력을 자랑하는 행위나 친환경 제품을 올려 자신의 높은 시민 의식을 보여주는 행위 모두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려는 Z세대 고유의 성향의 다른 발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Z세대, 지속가능 소비 주체 될 것"


SNS가 Z세대를 가치소비와 과시소비를 양극단으로 몰고 간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시현씨는 “맞춤 알고리즘으로 인해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와 내 친구들은 환경 콘텐트를 많이 접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계속 반대의 콘텐트만 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면서 비슷한 정보에만 둘러싸이게 되는 ’필터버블‘ 현상이 같은 세대 안에서도 편향성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Z세대에게 희망을 건다. 고은주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교수는 "자기표현(self-expression)에 적극적인 Z세대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표현하기 위한 패션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옷 소비는 과거 세대보다 늘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이들은 단순히 좋아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 아닌 계획, 사용, 처분을 고려한 책임 있는 소비를 하는 만큼 지속가능한 소비의 새로운 주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주연 다시입다 연구소 대표는 “패션 하울(Haul·대량으로 물건을 사 품평하는 행위나 콘텐트)을 즐기는 젊은 친구와 환경을 위한 가치소비를 하는 친구 중 아직 누가 주류인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확실한 건 이들은 자신의 개성과 신념을 표현하는 걸 즐긴다. 그 어느 세대보다 주체적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다는 점도 Z세대와 이들의 부모 세대 간 차이점이다. 공기 중 초미세먼지가 공식적으로 측정되기 시작한 해가 2015년으로, 2000년생이 중학생일 무렵이다. 강다연씨는 “어린 시절 북극곰의 눈물과 아마존의 눈물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그레타 툰베리 역시 8세 때 학교선생님이 보여준 바다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박나영씨도 "대학생이라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 스파(SPA)브랜드에서 주로 구매하지만 직장인이 되면 비싸더라도 환경을 위한 브랜드를 살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Z세대부터 환경에 관한 뉴스나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며 “교실에서의 환경교육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만큼 또 다음 세대는 Z세대보다도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영선·배정원·김연주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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