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소두증 부르는 지카 바이러스, 뇌종양 치료할 수 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2. 1. 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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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카페]
이집트 숲모기(왼쪽)가 옮기는 지카 바이러스(오른족)는 뇌세포를 공격해 신생아의 뇌발달을 막는다.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의 뇌 공격력을 뇌종양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CDC, SPL

신생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뇌종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적군이 다른 적군과 싸우게 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브라질 상파울루대의 마야나 자츠 교수 연구진은 “뇌종양에 걸린 생쥐에게 지카 바이러스를 주사해 부작용 없이 암세포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고 11일(현지 시각)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바이러스’에 실렸다.

◇면역단백질 유도해 암세포 파괴

지카 바이러스는 이집트 숲모기가 옮긴다. 2015~2016년 브라질과 인근 국가로 퍼졌다. 임신부가 모기를 통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중에 태어난 아기는 두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소두증(小頭症)에 걸린다. 지카 바이러스는 다른 병원체와 달리 뇌를 보호하고 있는 내피세포를 뚫고 들어가 신경줄기세포를 공격한다.

과학자들은 지카 바이러스가 뇌를 공격하는 능력을 뇌종양 치료에 활용하려고 시도했다. 상파울루대 연구진은 지카 바이러스가 생쥐의 뇌에서 암세포만 공격하고 다른 장기에는 손상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생쥐의 생존율도 크게 증가했다. 연구진은 또 사람 뇌 줄기세포를 공 모양으로 배양한 오가노이드(미니 뇌)에서도 지카 바이러스가 암세포 성장을 막고 크기를 감소시켰고 밝혔다.

지카 바이러스는 인체의 면역력을 강화시켜 암세포와 싸우게 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생쥐와 오가노이드 모두 지카 바이러스 주사를 맞으면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인 사이토카인이 나와 암세포 성장을 차단하고 암세포가 뇌의 다른 영역으로 전이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임신부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중에 태어난 아기의 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소두증이 발생한다. 정상 아기(왼쪽)에 비해 소두증 중등증(가운데)와 중증(오른쪽) 아기의 뇌가 훨씬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뇌에 직접 투여보다 복막 주사가 효과

지카 바이러스가 뇌종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전 연구에서 잇따라 확인됐다. 2017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의대와 워싱턴대 의대 공동연구진은 인체 세포와 생쥐 실험을 통해 지카 바이러스가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세포를 죽이는 것을 확인했다. 자츠 교수 연구진도 2018년 지카 바이러스가 생쥐의 중추 신경계에 발생한 암세포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2020년에는 개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번 연구는 지카 바이러스를 이용한 암 치료를 임상에 적용하기 위해 적절한 투여 방법과 투여량을 결정하기 위해 진행됐다. 연구진은 이번에 7일 간격으로 세 차례 2000 플라크 형성 단위(PFU)의 바이러스 입자를 생쥐의 복막에 주사하면 암세포 소멸 효과가 가장 좋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PFU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감염돼 파괴된 영역의 수를 의미한다. 복막에 지카 바이러스 주사를 맞은 생쥐는 먹이를 잘먹고 체중 감소도 없이 건강을 유지했다.

반면 바이러스를 뇌종양 부위에 직접 주사하면 처음엔 효과가 있지만 21일 뒤 다시 종양이 자라기 시작했다. 뇌안의 빈 공간인 뇌실에 바이러스를 주사하면 바이러스 독성으로 생쥐의 몸무게가 크게 감소하면서 4주밖에 살지 못했다.

복막에 투여한 지카 바이러스는 뇌로 이동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쥐의 옆구리에 암세포를 주사해도 지카 바이러스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암세포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지카 바이러스가 중추신경계에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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