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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야기 아닌가요?" 아이슬란드 할머니가 울었다

독립편집부 입력 2022. 01. 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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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변한다 ⑧] 한국 여성이 묻고, 아이슬란드 여성이 답하다

20대 한국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허들이 있습니까?' 164명이 357개의 허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품고, 오마이뉴스 X 시사인 X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여성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아이슬란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사람 33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가 다다른 결론은 하나입니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변한다.' <편집자말>

[독립편집부 기자]

'오마이뉴스 X 시사인 X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아이슬란드에서 함께 취재를 진행했다. 어떻게 아이슬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게 됐는지, 현재 성평등 시스템과 그들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 등을 현지 취재를 통해 담아냈다. 원정대에 동행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동갑내기 순나 해적당 의원과의 대담과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왕복 40여 시간을 오갔던 엽서를 돌려 받은 여성들의 소감도 실었다. ⓒ 독립편집부

아이슬란드 할머니가 울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또박또박 한글로 적힌 엽서 한 장을 건넸을 뿐이었다. 엽서엔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꿈을 꾸기 어렵다"고 적혀있었다. '시선', 두 글자에는 밑줄과 함께 별표시도 있었다.

이 내용을 전해들은 헬가 기슬라도티르(Helga Gisladottir, 64세, 이하 헬가)는 말을 잇지 못했다. "후... 우후..." 숨을 골랐다. "감정이 올라와 말을 꺼내기 어렵다"고 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5분 정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함께 걸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더니 우리에게 물었다.

"이게 한국 이야기란 말이에요? 북한 이야기 아니에요?"

믿기 어렵다는 듯 그는 우리에게 또 물었다. 

"그래도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지 않나요?"

우리는 "그렇긴 하지만 그 숫자가 매우 적다"고 답했다. 그는 "정말 마음이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꿈을 꿔야 한다, 당신의 꿈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그와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겼다. '페미니스트 워크' 행사 참가자들이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그 날은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가 일어난 지 꼭 46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2021년 10월 24일,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를 기념하는 '페미니스트 워크' 행사가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렸다. 행사 참가자들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 선재
 
1975년 10월 24일, 광장에 모인 여성들은 의회로 이동하며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크다고 외쳤다. 취업 지원자 개인 역량보다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주장했다. 주요 단체에 여성대표가 왜 없는 거냐고도 소리쳤다. 그러면서 모든 일을 손에서 놓았다. 전체 여성의 90%가 '데이 오프'에 참여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아이슬란드는 세계적인 성평등 모범국가가 됐다. 46년 전 그 날, 헬가는 수많은 여성과 함께 광장에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다시 말했다.

"할 수 있어요, 정말."

헬가는 우리에게 "감정이 올라와서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꿈을 꾸기 어렵다"는 한국 여성의 말에 마음이 크게 동요했다고 전했다. 그 엽서를 헬가에게 건넸다. 헬가는 또박 또박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흉상

우리는 아이슬란드로 떠나기 전에 20대 여성들에게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허들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144명이 구글독스를 통해 답했다. 20명과는 직접 만나 자신이 생각하는 허들을 엽서에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엽서들을 품고 아이슬란드에 갔다. 국회의원, 교수,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 앰네스티 아이슬란드 지부 등에도 엽서를 건넸다. 한국 여성이 적은 엽서 내용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답장'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모두 인터뷰를 마치고 정성스럽게 엽서에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자신이 직접 기획한 '레이캬비크 페미니스트 워킹 투어'를 운영하고 있는 틴나 에이크 라켈다르도띠르(Tinna Eik Rakelardottir, 이하 틴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틴나는 아이슬란드 대학에 있는 한 흉상 앞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비요르그 카리타스 소랄락슨(Bjorg Caritas Þorlaksson, 1874년~1934년)의 흉상이에요. 아이슬란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첫 번째 여성이었죠. 결혼하고 그는 남편과 함께 20년 동안 아이슬란드-덴마크 사전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이혼 후 남편이 사전을 출판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사전 발간 후 남편은 아이슬란드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그녀는 조명되지 않았죠. 비요르그에 대해 다른 여성이 책을 쓰면서 이 사실이 드러났어요. 그제야 그녀를 기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고, 2000년 모금 운동으로 흉상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흉상이 있는 거죠."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 있는 노르딕 하우스 도서관에서 취재팀과 마주한 틴나 에이크 라켈다르도띠르(Tinna Eik Rakelardottir). 그는 자신이 직접 기획한 '페미니스트 워킹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 선재
 
흉상은 아이슬란드 대학 외곽에 있었다. 공터에 세 그루의 나무가 서 있고, 흉상은 그중 첫 번째 나무 뒤에 있었다. 나뭇가지에 가려 흉상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무심코 지나가는 이들에게 흉상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비요르그는 아주 전형적으로, 여성이 배제된 존중받지 못한 이야기죠. 그런데 그 흉상조차 여기 서 있어요. 아이슬란드 대학에서 자리를 (여기로) 지정한 걸로 아는데요. 이 흉상은 여성을 향한,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제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이죠."

틴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 한마디로 차별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이기 때문에 자신이 한 일조차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차별. 그의 말대로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경우 더 암담하다는 것이 20대 여성들의 문제의식이다. 구글독스를 통해 한 여성은 이렇게 되물었다. 

- 어떤 허들이 있냐고요? 2박 3일을 말해도 끝이 없을 겁니다. 걸리는 것은 하나지요. 이걸 누가 듣냐는 겁니다... (중략) 20대 여성 투표권은 세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사람들이 아닌 걸까요? 필요 없는 건가요? 신경 안 써도 세상이 굴러가는 걸까요? 안 들으면 들을 때까지 소리치고 싶습니다... (중략) 암담합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있나요? 허들만 있는 것 같아요. (hy********@님)

이 내용을 전하자 틴나는 답했다.

"성 불평등 문제를 인식하는 것조차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그 첫 발을 떼야 합니다. 당신이 그 다음 사람이 되길 응원합니다. 계속 목소리를 내세요. 당신이 얻을 자격이 있는 걸 위해 계속 싸우세요."

이정표

오래 걸리는 싸움이다. 엽서에 정성스럽게 답을 적고 있는 헬가 역시 누군가의 "그 다음 사람"이다. 2021년 10월 24일, 1975년 '데이 오프'를 기념해 열린 '페미니스트 워크'에 그는 자신의 엄마 포라 엘파 비곤슨(Pora Elfa Bjionsson, 83세)과 함께 참여했다. 그의 딸, 루트 에이나스도띠르 (Rut Einarsdottir, 29세)도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걷고 있었다. 

"계속 꿈을 꾸세요, 절대 희망을 잃지 마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 -헬가-" (Keep dreaming, Never loose hope! You can do it ♡ Helga)

헬가의 딸 루트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싸워 온 여성들이 이룬 걸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어디까지 왔고 어디까지 가야 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다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이정표다. 루트의 엄마 헬가는 "그래서 롤모델이 중요하다"면서 "롤모델이 있으면 그 롤모델을 보고 갈 수 있다"고 했다. 
 
 아이슬란드로 떠나기 전에 20대 여성들에게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허들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중 한 응답자가 쓴 엽서를 본 헬가 기슬라도티르(Helga Gisladottir, 64세, 사진 가운데)는 "마음이 안타깝다"면서 눈물을 보였다. 그는 1975년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 참가자로 이날 행사에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딸과 함께 참석했다.
ⓒ 선재
 
 헬가가 엽서에 쓴 답글.
ⓒ 이정환
 
우리는 다른 행사 참가자들에게도 엽서를 내밀었다. 

우리의 요청에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엽서를 쓴 솔에이 뱃치(Soley Batsch)의 롤모델은 엄마였다. 그는 "엄마가 집에 있는 것도 너무 좋았지만 엄마가 자신의 꿈을 좇아가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다"면서 엽서에 "당신 아이의 롤모델이 되는 것에 집중하세요. 특히 딸에게요"라고 적었다. 3개월 된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행사에 참가한 아르헤이두르 스테인토스도띠르(Aruheitur Steintorsdottir)는 "당신은 자신에게만 스스로를 증명하면 됩니다"라고 엽서에 적었다. 비르나 스테파운스도띠르(Birna Stefausdottir)는 "당신의 롤모델을 찾고 당신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세요"라고 적었다.

그들은 답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말라고. 싸워 내라고. 그래서 증명하고, 스스로 이정표가 되라고. 

"한국 정부! 당신의 문제입니다. 고치세요!"

-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도 '내가 전문성을 남자보다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당신만이 아닙니다. 아이슬란드에서도 같은 압박을 받아요. 우리는 뭉쳐야 합니다. 당신 자신에게 집중하고 당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우리 기억해요. 집안 일은 조금 멀리해도 괜찮습니다. 사랑을 담아, 아이슬란드에서." (루트 에이나스도띠르, Rut Einarsdottir)
 
 루트 에이나스도띠르 (Rut Einarsdottir, 29세)가 엽서에 답글을 쓰고 있다.
ⓒ 선재
 
- 한국 사회가 규정한 '이상적인 가족'을 꾸릴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이 됩니다. 
"삶의 행복과 평등을 위해 싸워 가는 당신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당신 삶에서 사랑과 일 모두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 하고요. 포기하지 마세요, 모든 여성들을 위해 정의를 위해 싸우세요. 누군가는 언제가 '처음'이 되어야 합니다." (토르힐두르 순나 아이바르도띠르 해적당 의원, Þorhildur Sunna Ævarsdottir)
 
 토르힐두르 순나 아이바르도띠르 (Þorhildur Sunna Ævarsdottir) 해적당 의원이 엽서에 답글을 쓰고 있다.
ⓒ 선재
 
- 나에게 허들은 '색안경'입니다.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잣대와 시선이 있어요. 
"우리는 모두 같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조언은 하나입니다. 당신 스스로 시작할 수 있다고, 계속 큰 소리로 당신을 둘러싼 세상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락큰헤이두르 크리스탸운스도띠르 아이슬란드 대학 교수, Ragnheitur Kristjansdottir)
 
 에를라 훌다 할도스도띠르(Erla Hulda Halldorsdottir, 사진 왼쪽)와 락큰헤이두르 크리스탸운스도띠르(Ragnheitur Kristjansdottir)가 서로 마주보며 웃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아이슬란드 대학교수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결정해 온 역사'를 담은 <선거하는 여인들>(Konur sem kjosa: Aldarsaga)이란 제목의 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들 역시 한국 여성들의 엽서에 각각 답글을 작성했다.
ⓒ 선재
 
- 오빠에 비해 가족들의 지지를 못 받는다는 소외감을 느낍니다. 나의 허들은, 가족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다른 나라 여성의 상황과 성평등이 사회에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계속 보세요.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당신의 지식을 전해주세요. 행운을 빕니다." (마그레트, Margret)
 
 '페미니스트 워크' 행사 참가자가 엽서에 답글을 쓰고 있다.
ⓒ 선재
 
- 한국 여성들이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건 '여성은 힘이 약하다. 남성보다 낮은 존재다, 일을 못한다'등의 시선, 편견인 것 같아요.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마세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키워가세요. ♡" (브린디스 뱌르나도티르 국제앰네스티 아이슬란드 지부 직원, Bryndis Bjarnadottir)
 
 '페미니스트 워크' 행사 참가자가 엽서에 답글을 쓰고 있다.
ⓒ 선재
 
그리고, 우리는 이날 행사를 주최한 여성권리협회의 브린힐두르 헤이다르(rynhildur Heiðar) 사무총장에게도 엽서를 전달했다. 먼저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동료 여성들과 함께 행동을 취하라"고 조언하던 그는 "더 중요한 말을 한국 정부에 하고 싶다"고 했다. 브린힐두르 사무총장은 "정부가 성평등 관련해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면서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고,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엽서에도 이렇게 썼다.

- 취업 후 내 꿈을 펼칠 상상에 부푸는 게 아니라 '과연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를 걱정합니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 이건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문제입니다. 고치세요!" (브린힐두르 헤이다르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 Brynhildur Heiðar) 
 
 2021년 10월 24일 열린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 기념행사는 아이슬란드 여성권리협회 주최로 열렸다. 브린힐두르 헤이다르(rynhildur Heiðar) 사무총장은 앞서 인터뷰에서 "여성이 의사 결정의 위치에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성평등 의제화는 여성이 권력을 가질 때 시작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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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이주연·장일호·정창·이정환
영상 : 김민수 | 사진 : 선재 | 제작 : 이종호 | 개발 : 황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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