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AI인간의 진화, 앵커·은행원·상담원도 척척

최준호 입력 2022. 01. 14. 00:28 수정 2022. 01. 14.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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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패러독스 극복하자 ⑮ 마인즈랩 유태준 대표


유태준 마인즈랩 대표가 10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마인즈랩 사무실에서 인공지능(AI) 기반 가상 인간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은 유승민 기상 캐스터를 모델로, 오른쪽은 유 대표를 모델로 제작됐다. 김성룡 기자
제러미 리프킨이 설파한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이 다가오는 걸까. 날이 갈수록 인공지능과 로봇의 진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는 인공지능(GPT-3), 뛰고 구르고 춤추는 모습이 사람 못지않은 로봇(보스턴 다이내믹스)이 이미 현실로 등장했다. 이런 기술이 단순 시연이 아닌 기업 상용 제품으로 등장할 즈음이면, ‘노동의 종말’이든 ‘노동의 변화’든 세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국내 기업 중에도 벌써부터 이런 변혁의 선두에 선 곳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10일 찾은 경기도 판교 삼평동 다산타워 5층. 가로 68㎝, 세로 1m20㎝의 55인치 디스플레이 속에 청바지를 입은 중년 남자 모습의 인공지능(AI) 인간이 등장했다. 한국어·영어·중국어·일어 4개 국어로 말을 하고, 업무와 관련한 대화도 무리 없이 이끌어간다. 말을 할 때 얼굴 표정과 손짓도 실제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살아있다.

「 음성·시각·언어 등 관련기술 집적
사람 얼굴·표정·손짓 그대로 재연
증강현실·홀로그램에 접목 나서
올해 미국 CES에서도 주목받아
창업 7년 만에 코스닥 상장기업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 구사

이 인공지능 인간의 이름은 ‘준’. 벤처기업 마인즈랩의 유태준(57) 대표가 모델이다. 아직은 개발이 완료된 게 아니지만, ‘준’에는 유 대표의 공적 업무와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집어넣었다. 실제 유 대표의 표정과 목소리·동작을 구현하는 일종의 아바타, 즉 또 다른 유 대표다. 외국어 등 상당수 능력은 실제 유 대표를 훌쩍 뛰어넘는다. 심지어는 대화하는 상대방의 체온까지 알려줄 수 있다. 아바타 위에 달린 카메라에 열화상 센서가 장착된 덕분이다. ‘준 아바타’ 프로젝트는 외부 공개용이 아니다. 마인즈랩의 모든 인공지능 기술을 집대성해 어떤 게 가능한지를 테스트해보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마인즈랩은 201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인공지능 전문 벤처기업이다. 업력이 길지 않고, 스타트업을 갓 벗어난 중소기업지만, 존재감은 만만치 않다. 지난해 11월 코스닥에 상장됐다. 마인즈랩의 대표 상품은 ‘AI휴먼’, 즉 인공지능 인간이다.

지난해 3월 출시한 인공지능 인간 ‘M1’은 음성·시각·언어·아바타 등 여러 분야 인공지능 기술을 한데 모은 존재다. 사용자의 음성을 95% 이상 이해하고, 0.5초 이내에 분석한 뒤 응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유 대표는 “그동안 개별적으로 개발되는 AI 음성지능과 시각지능·언어·사고지능 기술을 하나로 종합한 것이 AI 휴먼 M1”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체 매출의 3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고, 직원 150명 중 75%가 연구개발 인력”이라며 “회사의 시작은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빅데이터를 분석해 고객 기업의 광고 업무 등에 도움을 주는 것이 주 업무였지만, 이제는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대신하여 인간에겐 더 인간다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공인간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스타강사 ‘김미경 AI’ 선보여

마인즈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간 M1은 다양한 형태로 시장에 등장했다. KBS와 MBC의 기상 캐스터와 뉴스앵커로 활약을 시작했고, 신한은행의 인공인간 은행원으로 전국 각 지점에 깔리기 시작했다. 현대해상의 콜센터에서 인공인간 고객상담원 역할도 하고 있다. 이외에도 개인용 AI 휴먼 서비스도 시작했다. 스타 강사로 알려진 김미경씨의 경우도 마인즈랩의 M1을 바탕으로 ‘김미경 AI’를 만들었다. 김씨는 “강의에 매달리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 지식이 바닥나고, 공부하다 보면 강의할 시간이 없다”며 “AI휴먼을 이용하면 또 다른 나가 나 대신 1인 2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김씨의 AI휴먼이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강의하고, 심지어는 유창한 영어로 발표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마인즈랩은 새해 벽두인 지난 5~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에 참가했다. 신한은행과 공동으로 부스를 차리고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공지능 여행원 ‘신하니’와 남행원 ‘신하늘’을 공개했다. 신하니는 디지털 데스크 역할을 맡았다. 입출금 통장 조회와 고객 정보 변경, 금융상품 및 대출 상담 등 실제 은행원 업무를 주도했다. 고객이 원할 경우 실제 상담사를 화상으로 연결해주는 기능까지 갖췄다. 남행원 신하늘의 역할은 인공지능 컨시어지였다. 은행을 찾은 손님에게 어떤 업무를 보러왔는지 물어보고, 해당 창구를 알려줬다. 이외에도 환율과 날씨 등 기타 일반정보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CES에 다녀온 천정우 전무는 “외국항공사 직원들이 찾아와서 디스플레이 속이지만 인간의 얼굴과 몸을 가진 인공지능 은행원의 자연스러운 시연을 보더니 항공사 업무에도 적용해보고 싶다고 문의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강의나 안내의 경우는 주어진 텍스트를 소리내어 읽는 TTS(Text to Speech) 기능으로 구현되고,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공인간의 대화는 현재 AI챗봇 기술력의 한계로 제한적이지만, 은행 등 특정 업무에 한정되어 구현되기에 실 서비스에 큰 어려움은 없다”며 “앞으로 3~4년 더 진화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대화와 동시통역에 기반을 둔 외국어까지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 5월께 3차원 휴먼AI 공개

마인즈랩은 올 5월 보다 진화한 AI휴먼 ‘M2’를 공개할 예정이다. M2는 2차원(2D) 영상뿐 아니라 3D 방식으로 보여질 수 있도록 가상·증강현실(VR·AR), 홀로그램 등 기술과도 연계될 예정이다.

마인즈랩은 왜 굳이 실제 사람 얼굴을 한 인공지능을 지향할까. 유 대표는 “얼굴이 없는 상대에게 얘기하다 보면 어색하고 우스울 때가 많다”며 “실제 사람들이 대화할 때를 분석해보면 시각 의존도가 70%라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마인즈랩의 인공인간은 실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말을 할 때 입술 모양이 단순히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실제 인간이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고 소개했다.

마인즈랩은 인공지능 전문 글로벌 기업을 꿈꾼다. 하지만, 국내에는 삼성전자나 SK텔레콤·네이버 등 대기업이, 해외에서는 구글·IBM 등 글로벌 IT공룡들이 인공지능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유 대표는 “우리는 ‘공룡’들과 경쟁하지 않고 공존할 것”이라며 “해외든 국내든 인공지능의 한 분야 기술을 가진 기업은 있지만, 이런 요소기술들을 모아 인공지능 인간을 만드는 곳은 마인즈랩을 제외하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마인즈랩은 지금도 인공지능 기술 하나만으로 100억원이 넘는 연매출을 올리는 국내 유일의 기업이기도 하다. 유 대표는 “지난해 11월 상장 때 ‘인공지능으로 향후 2년 안에 기업가치 1조원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건 달성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라고 자신했다.

유 대표의 경력은 독특하다.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해 공부했지만,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해 삼일회계법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회계 업무를 맡은 건 잠시, 자회사 PwC컨설팅에서 주로 일하면서 기업의 전사적자원관리(ERP) 구축을 도맡았다. ERP는 경영 정보 시스템의 한 종류이다. 회사의 모든 정보뿐만 아니라, 공급 사슬관리, 고객의 주문정보까지 포함하여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삼일회계법인은 ERP가 회계법인의 미래 먹거리라 판단했다. 융합형 인재였던 유 대표를 ERP에 투입했고,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자 유 대표에게 다시 관련 창업을 맡겼다. 미학과 학부 출신의 공인회계사가 마인즈랩의 대표가 된 연유다.

정부연구소와 민간자본의 만남

손병희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학부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 인공지능 관련 상장기업을 보면 빅데이터 중심 기업, 안면 인식 기업, 의료 분야 등 특정 기술을 하나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마인즈랩은 벤처기업이지만 음성지능과 시각지능·언어지능 등 인공지능 관련 토탈 솔루션을 보유한 국내 유일의 인공지능 전문기업이라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마인즈랩은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기술과 민간자본이 만난 사례다. 빅데이터 시장 대응을 목적으로 삼일회계법인 등이 자본을 출자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연구·개발(R&D)해온 소셜웹 이슈색인·저장·검색기술과 음성인식 기술을 현물 출자해 2014년 창업했다. 당시 마인즈랩의 ETRI 지분은 20%였다. ETRI는 지난해 11월 마인즈랩 코스닥 상장 때 지분 3.77%를 68억원에 회수하고, 현재 3.7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마인즈랩의 시가총액(약 2000억원)으로 보면 74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박호영 ETRI 기술사업화부장은 “마인즈랩은 ETRI가 연구·개발한 기술을 민간기업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기술사업화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며 “연구원 전체로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기술사업화로 인한 총 기술료 수입이 5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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