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무더기 미사일 과시로 복잡해진 북한 비핵화 방정식

정용수 입력 2022. 01. 14. 00:32 수정 2022. 01. 14.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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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메시지 대신 미사일 쏘아 올린 김정은


북한이 지난 11일 오전 자강도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661일 만에 미사일 발사현장을 찾았다. [뉴스1]
“기자 선생이라 그러셨습네까? 어제 미국놈들이 그 무슨 요격 미싸일인지를 쐈다는데 성공했답네까?”

“언론에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시험에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공화국(북한) 미싸일은 맞춰 떨구질 못할 겁네다.”

「 2013년 첫 방사포 발사후 단거리→장거리→첨단 미사일 개발
김정은 지시 1년 만에 최첨단 전략 미사일 개발 성공 미스터리
‘최고존엄’ 무오류성 과시하려 선 완성, 후 지시 계획 세운 듯
중국·러시아 등 외부 도움 없이 특수 소재 개발 쉽지 않아
경제난 물타기 … 김정일·김일성 생일 맞아 국방력 과시 가능성

미국이 2007년 1월 26일(현지시간) 하와이 카우아이섬에 위치한 태평양 미사일 시험장(PMRF)에서 처음으로 레이더와 미사일, 시커를 통합해 실시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시험에 성공한 다음날.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만난 고위 탈북자 A씨가 대뜸 미국의 요격미사일 얘기부터 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황당했다.

북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싸일을 요격할라믄 레이다(더)로 추적하고, 발사된 미싸일이 일정한 궤도로 날아가야 한단 말입네다. 그런데 공화국 미싸일은 똑바로 날아가지 않아요. 공화국은 밀링(milling) 기술이 떨어져 분사구(노즐)를 일정하게 다듬지를 못하다 나니까(보니) 미사일이 상하좌우로 9~13m를 왔다갔다 하는데 미국이 아니라 미국 할아버지라도 어떻게 맞추갔습네까?”

손으로 흔들흔들 날아가는 미사일 모양을 흉내내는 A씨는 자못 진지해 웃지도 못했다. 자신이 북한에서 무기 개발에 관여했다는 A씨 말이 이어졌다.

“지금 공화국에서 300㎜ 방사포(다연장 로켓)를 만들고 있는데 아마도 3-4년 뒤면 시험발사를 할 수 있갔(겠)는지. 2001년인가 2002년인가 중국에서 설계도를 가지고 왔는데… 러시아에선 글로나스(러시아GPS) 기술을 가져왔고. 순항미싸일처럼 만드는데 아마 대전까지는 날아갈 겁네다.”

2012년 북한이 300㎜ 방사포의 시험 발사를 준비한다는 사실이 포착됐고〈중앙일보 2012년 2월 22일자 보도〉, 2013년 5월 북한은 300㎜ 방사포를 쐈다. 황당하게 여겼던 A씨의 말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북한은 2015년 이후 방사포 구경을 더욱 늘려 500㎜ 이상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방사포까지 만들었다. 최근에는 수백개의 자탄(子彈)을 살포하는 북한판 에이테큼스나 종말단계에서 상승기동으로 요격을 피하는 이스칸데르 미사일도 개발했다. 15년 만에 ‘비틀비틀 날아가던 미사일’이 요격을 피하는 첨단 전략무기로 발전했다.

의문의 ‘게임체인저’

북한은 지난 11일 오전 자강도에서 동해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1000㎞를 비행해 목표물에 명중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본체에서 분리된 탄두가 대기권에서 최소 음속의 5배(마하 5)보다 빠르게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날아가 요격이 불가능한 ‘창’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AGM-183A ARRW)·중국(둥펑-17)·러시아(아방가르드)만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월 열린 8차 당 대회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지시했다. 그 뒤 지난해 9월 28일 첫 시험발사했고 100일 뒤인 지난 5일 두 번째, 6일 뒤인 지난 11일에 세 번째 시험발사했다. 1차 때 300㎞였던 비행거리가 2차 때 700㎞로, 속도도 음속의 3배에서 5배로 늘었다. 3차 때는 불과 일주일도 안 돼 1000㎞, 음속의 10배가 돼 사실상 개발을 완성했다. 이처럼 개발 지시가 있은 뒤 1년 만에 개발을 마쳤다는 건 미사일 선진국들의 개발 기간을 볼 때 불가능을 가능케한 ‘순간이동’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개발이 먼저 시작되고 난 뒤 김 위원장의 지시가 나왔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지시를 내린 지난해 1월엔 이미 성공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이 자력으로 개발에 성공했는지도 의문이다. 북한이 주력 미사일로 사용하던 스커드 미사일은 러시아의 기술 이전 거부로 이집트에서 들여와 역설계해 만든 것이다. 또 대구경 방사포는 중국 기술을 받았다.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무기를 모방한 뒤 자신들의 수준으로 개량하는 ‘주체형’ 제작 방식이다.

그렇지만 극초음속 미사일은 설계도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마찰열이 발생하는 대기에서 기동을 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의 탄두는 1000~2000℃의 온도를 141초(11일 발사의 경우) 이상 아무런 변형 없이 견뎌야 한다. 탄두 표면을 탄소-탄소(CC) 복합재료와 탈륨(thallium)·하프늄(hafnium) 등의 복합소재를 배합해 만드는 고도의 소재 가공 기술이 필요하다.

북한이 이런 기술을 보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국경을 닫아 걸은 북한이 외부에서 이런 소재들을 들여가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오래 전부터 외부의 지원으로 차근차근 개발해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어떤 식으로든 도와줬을 것이란 의심이 나온다. 미 재무부와 국무부는 12일 중국과 러시아에서 미사일 재료와 기술을 수입한 북한 사람과 러시아인, 회사를 특별제재대상(SDN)에 올렸다.

북한은 지난 1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다사다변한 국제정치 정세와 주변 환경에 대처하여 북남관계와 대외사업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대남·대미 관계에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딱 한 문장이었다. 대신 북한은 연초부터 미사일을 쏘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생일에도 군사 행동?

북한은 11일 발사한 미사일을 “최종 실험”이라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군사 행동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차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하루 뒤인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선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조선에 도발할 목적도 이유도 없으며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최근 발사한 미사일은 한국 전역이 극초음속 미사일 사정거리에 든다는 점을 과시했다.

올해는 북한이 민족 최대의 명절로 꼽고 있는 김일성 주석(4월 15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2월 16일)의 110회, 80회 생일이 있다. 북한은 5주년과 10주년 등 소위 꺾어지는 해인 정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른다. 팬데믹 봉쇄를 이어가는 북한은 이들 ‘경사’에서 주민들에게 신형 무기 말고 보여줄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는 추가 제재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축포 삼아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나설지 모른다.

북한은 2015년 단거리 미사일→2017년 장거리 미사일→2019년 이후 전술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 체계로 무장 중이다. 핵탄두 소형화에도 근접했다는 게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가 크게 늘어난 셈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북한이 여러 차례 위반했지만 더 이상 추가제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 비핵화 방정식이 더욱 고차원으로 변하고 있다.

■ 김정은 가죽코트, 김여정은 ‘야전 솜옷’

지난 11일 가죽코트를 입고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을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야전 솜옷’을 입고 등장했다. 지난 11일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을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수행하면서다. 이 장면은 북한 매체가 12일 공개한 사진에서 드러났다. 솜옷은 북한 주민들의 겨울철 보온용 외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 현지지도 때 즐겨 입어 ‘야전 솜옷’으로도 불린다.

그동안 김여정은 통상 투피스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2018년 4월과 9월 열렸던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내외 행사는 물론이고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수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이 2019년 8월 24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 사격장을 찾았을 때도 검정색 치마정장으로 수행했다. 2014년 12월 30일 여성방사포 부대를 찾았을 때는 바지를 입기는 했지만 검은색으로 추정되는 코트를 입었다. 지난달 17일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10주기 중앙추모대회 때도 소매끝에 털이 달린 검은색 코트를 착용했다.

이에 따라 이날 그의 솜옷 등장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김여정 남매는 개조한 차량 실내에서 미사일 발사 장면을 지켜봤다. 굳이 솜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김 위원장이 검은색 가죽코트를 입었고, 발사 장면 관람 직후 외부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날씨가 추운 자강도에서 방한용이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 매체가 김여정을 카메라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고, 또 그가 미사일 발사 현장에서 처음으로 솜옷을 입었다는 점에서 뭔가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그가 앞으로도 솜옷을 입고 나타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미국과의 협상 부진으로 대북제재 해제가 안 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결의를 보여주기 위한 연출한 장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성 기자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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