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중앙시평] 화장실 슬리퍼의 유전자 검사

입력 2022. 01. 14. 00:36 수정 2022. 01. 14. 06:08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데 가래떡에 가래가 들어있으랴. 썰렁한 이 농담을 건물로 번역해보자. 욕실은 욕하는 곳이 아니고 화장실은 화장하는 곳이 아니다. 지금 한국 주거의 가장 보편적 화장실 모습은 이름과 달리 화장대는 없이 변기·욕조·세면대의 삼총사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보다 특이한 것은 문 열면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다. 익숙하고도 엉뚱한 슬리퍼의 존재 이유를 알아보려면 화장실의 문화적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이전 명칭은 변소였다. 뒷간으로 부르던 적도 있었다. 두 단어에는 모두 멀리 떨어져 후미진 독립공간이라는 흔적이 있다. 농경시대의 뒷간은 인체 노폐물 배설장이며 밭에 뿌릴 거름 제조처였다. 배설물의 생산·처분·이용은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 등장 이후 인간의 배설물은 세계 공통의 골칫거리였다. 배설물의 생산 주체가 너무 많아졌고 쏟아내는 배설물의 처분지는 멀었다.

「 화장실 변모과정 증언하는 슬리퍼
가장 먼 외부에서 아파트 복판으로
화장실 변화에 수반됐던 도시 개조
건강위생 요구로 더욱 바뀔 화장실

한국에서도 20세기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대지가 좁으니 멀리 독립해있던 변소가 건물에 연접배치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배설물을 퍼나가는 수거식 구조였으므로 변소는 도로에 면해야 했다. 건물에 붙어있어도 입구는 별도로 나 있는 경우가 많아 여전히 신발을 신고 가는 곳이었다. 변소의 실내외 정체성 구분이 모호해졌다. 일제 강점기에 실험되던 주택은 대변소·소변소·욕탕이 인접하나 구분되어 있었다. 일본의 문화적 영향이었다.

광복 후 문화 수입처는 미국으로 바뀌었고 선진 주거도 수입 실험되었으니 그건 아파트였다. 변기·욕조·세면대 동반 존재의 미국식 공간이 아파트에 들어왔는데 이걸 여전히 변소라 부를 수는 없었다. 1970년대에 아파트가 주거 우위를 확보해나가면서 덩달아 삼총사 화장실은 화장실의 우세종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주거의 보편적 화장실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화장실 변화는 진행형이다. 1990년대가 되면서 통칭 30평형대를 넘는 모든 신규 아파트에는 화장실이 두 개씩 설치되었다. 둘 중 하나에는 욕조 대신 샤워기가 붙었다. 한 화장실에 세면대가 두 개 설치되던 실험기도 있었다. 사회활동 인구 증가와 가부장 체계 해체의 증빙이겠다.

국화꽃 한 송이 피우려면 소쩍새가 봄부터 울어야 하고 대추 한 알 붉어지는데도 번개 몇 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낱 화장실 변화에도 도시 전체의 환골탈태가 필요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기도·주문·주술이 아니고 도시기반시설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알려진 것은 19세기 유럽이었다. 한반도에서도 화장실이 바뀌려니 대대적인 도시기반시설 정비사업이 동반되어야 했다. 수세식 화장실을 위해서는 북청물장수 대신 상수도가 필요했다. 욕조가 도입되려면 아궁이 대신 온수보일러가 설치되어야 했다. 화장실이 아파트라는 건물 평면의 복판에 들어오려면 기계적 환기 장치가 추가되어야 했다.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오수관에 정화조가 연결되어야 했다. 신도시라면 정화조 대신 종말처리장이 건설되었다. 도시의 순환계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러나 가시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소에서 출발했다는 문화유전자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집안으로 들어왔어도 화장실은 완전히 융합된 내부공간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다른 방들과 달리 화장실 전등 스위치는 밖에 붙는다. 모든 방과 거실에 온수파이프를 깔아도 유독 화장실에는 깔지 않았다. 집안 곳곳은 비로 쓸고 걸레로 닦지만 화장실은 대강 물 끼얹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바닥에 목재 마루널이 아니라 타일이 붙었다. 존재방식으로 실내지만 인식기준으로 실외인 모순 해결을 위해 슬리퍼라는 애매한 신발이 필요해졌다.

한국의 건물 형식 중 서비스 수준으로 볼 때 세계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파트다. 한국인의 주거 내 건강 기대 수준도 세계 최고다. 맑고 깨끗하니 믿고 마시라 아무리 홍보해도 정수기 설치하고 페트병에 담긴 물 주문한다. 아침마다 미세먼지 지수 불평하며 방마다 공기청정기 가동한다. 그러나 지금 화장실은 그런 기대 수준에 못 미치며 심지어 위험한 곳이다. 청소 어려운 타일 줄눈 가득한데 습도도 높으니 세균 최적 번식지다. 주거 내 낙상사고 가장 많은 곳도 화장실이다. 샤워물 닦아낸 수건을 훨씬 더 많은 자원 들여 빨고 다시 말리는 체계도 지구의 건강상 합리적이지 않다.

21세기 들어서 화장실 바닥에 드디어 바닥난방이 시작되었다. 화장실은 더 변모할 것이로되 변화 추동력은 분명 건강과 위생일 것이다. 1990년대에 일본에서 시작된 전자식 비데는 지금은 한국 화장실의 일상이 되었다. 비슷한 시대에 유럽과 미국에서는 변기의 배변분석으로 건강진단을 해준다는 특허도 등장했다. 지금 혈압계·체중계·체지방측정계 등은 모두 병원 밖의 일상 도구다. 미래의 화장실은 더 매끈하고 온갖 계측기 가득하고 환경조정 설비가 들어선 똑똑한 모습일 것이다. 화장실은 무심한 환풍기를 넘어 적극적 건조 장치를 장착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토일렛이라 불러야 할 그것은 거대한 산업이 되고 슬리퍼는 사라질 것이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