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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소멸도시..다 굶어죽을 것 같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22. 01.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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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거 메뉴가 이제 제대로네.” 보행보조기를 밀며 식당에 들어선 김정숙씨(85)였다. 그이는 이 마을의 최연소자다. 내가 “정말 최연소이시냐”고 묻자 김씨는 혀를 찼다. “우리 동네 청년회장이 여든일곱 살인가 그럴거우.”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김씨가 들어선 이 마을 유일한 식당인 ‘노포식당’은 메뉴를 최근 바꾸었다. 죽이 세 개 추가되었고, 반찬 깔아주는 백반은 없앴다. 반찬 만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대여섯 개 있던 식당이 거의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통폐합되었다. 짜장면과 짬뽕, 우동과 돈가스, 비빔밥과 삼겹살을 같이 판다. 3국식당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동네 노인들이 농담을 던졌다. 여기에 죽까지 있으니 메뉴는 완벽해졌다.

필자도 밥을 시켰다.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까지 오는 데 한참 걸렸다. 구순 노인이 서빙을 본다. 서빙용 손수레에는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고 써 있었다.

가게에 손님들이 꽤 들어찼다. 대부분 이 지역 공무원이라고 한다. 마을이며 도시가 노쇠해지면 오히려 나라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 먹고 자고 입고 병 고치는 게 다 나랏일이다. 공무원마저 없었으면 이 식당은 문을 닫았을 것이다. 이 지역 행정기관에서 제일 큰 과(課)가 ‘노인복지과’다. 그 과 아래 ‘장례지원계’ ‘식사수발계’ 등 일곱 개의 세부 계가 있다. 예전부터 있던 병무계, 청년계 등은 진작 폐지됐다. 공무원들은 딱 점심밥만 이 마을에서 먹는다. 저녁엔 열심히 차를 몰아 가족이 사는 도시로 퇴근해야 한다. 한때 지방정부에서 근무처 현지 거주를 의무화하려고 하자 난리가 났다. “마트도 학원도 없는 동네에서 어떻게 애들 데리고 사느냐”는 항의가 중앙정부에까지 올라갔다. 결국 없던 일로 흐지부지되었다.

식당에도 갈 수 없는 거동 불능의 독거노인들도 꽤 많아서 지방정부 일이 늘었다. 요양원 입원을 거절하고 자택에 기거하는 노인들에게 식사 서비스를 한다. 식당 밖 큰길에 마이크로버스 한 대가 섰다. 칠순은 넘은 듯한 노인들이 한 차 내린다.

“저 젊은 양반들이 식사랑 간병 보조인들이라오, 다 도시에서 오지 어디서 오겠소.” 식당 주인의 설명이었다.

소멸지자체, 소멸도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가상으로 써 봤는데, 100% 미래도 아니다. 실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남해의 작은 어촌에서 일하는 어민은 일이 끝나면 ‘갑빠’(물옷)를 벗고 자동차를 몰아 1시간 거리의 중소급 도시로 퇴근한다. 결혼 조건이 어촌마을에서 살지 않는 것이었다. 일터와 생활이 점점 더 멀어진다. 누구도 이 문제를 뭐라 할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소멸지역’이 일꾼을 수혈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무원도 일터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산다. 그들이라고 별수 있겠는가. 외국인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문제는 본격 거론되지도 않는다.

이번 대선 정도에는 공약으로 나와야 하는데, 듣지 못했다. 인구소멸 문제는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실은, 이렇게 인구가 줄어서 나 같은 밥집 하는 사람은 어떻게 사나 고민하다가 나온 상상이었다. 다 굶어죽을 것 같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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